아버지의 마지막 문장, 물! 물 좀 줘

일상의 고찰 14: 아버지의 임종 일기 (2)

by 게을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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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직접적 사인이 대개 폐렴이라는 말은 내게 그저 통계상의 문구였다.

지인들의 부고 소식 속에서 '흡인성 폐렴'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도, 그것이 기도로 잘못 들어간 이물질 하나 밀어낼 근육조차 남지 않은 노년의 무력한 종착지임을 머리로만 이해했을 뿐이다.

젊은 이에겐 가벼운 질환이 기력이 다한 노인에겐 삶의 끈을 놓게 하는 치명적인 칼날이 된다는 사실을, 나의 아버지를 통해 목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파킨슨병을 십 년 동안 앓던 아버지가 한 달 넘게 폐렴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요양원과 응급실, 중환자실을 거쳐 다시 일반 병실로 돌아왔을 때, 우리 형제들은 가혹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퇴원 후 아버지는 다시 돌봄이 위주인 요양원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제 아버지는 돌봄이 아닌 치료가 주가 되어야 했기에 결국 신경과가 있는 요양병원으로 모시기로 했다. 꼼꼼하게 장단점을 비교한 표를 들고 동생들과 의논하며 내린 최선의 결정이었지만, 아버지를 옮길 때마다 당신의 세계는 눈에 띄게 허물어져 갔다.


주간보호센터에 다닐 적엔 당신의 두 발로 당당히 걸으셨다. 낙상 후에는 지팡이에 의지하셨고, 독감과 패혈증으로 입원했다 요양원으로 향할 때는 휠체어에 몸을 실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허리를 곧추세우고 소리를 지를 만큼 기운이 있으셨고 정신도 맑았다.

그러나 요양원에서 다시 폐렴이 재발해 종합병원으로 실려 가던 날, 아버지의 휠체어 인생은 마침표를 찍었다. 요양병원으로 전원 할 때 아버지는 유동식을 넣는 콧줄을 끼운 채 양손에는 '보호대'라는 이름의 수갑을 차고 침대에 누운 채였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앉아보지 못하셨다. 이 긴 서사는 불과 3개월도 안되는 기간안에 이루어진 잔혹사이다.


몇 번의 임종 고비를 넘기면서 아버지는 불사조처럼 생의 줄을 놓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 끈질긴 생명력이 가족들에게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고비를 넘길 때마다 아버지의 상태는 처참하게 부서졌고, 그 고통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자식들에게 양가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재앙이었다. 아버지는 이제 자신의 의견을 오직 눈빛으로만 전달하였다. 아버지가 내놓은 말은 그저 웅얼거림으로 언어의 역할을 못했다.

그래도 초점 없는 눈동자가 생기를 찾고 자식을 알아보는 날에는 우리 형제들의 단체 대화방은 좀 더 따뜻한 온기가 흘렀다. '눈으로 말한다'는 것은 유행가 가사만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정말 간절하게 눈으로 소통하고 계셨다.


오늘 아버지의 면회는 잔인했다.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나지 못하시기에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순간, 아버지가 눈을 뜨셨다. 평소보다 훨씬 웅얼거림이 심했고 무언가 갈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십여 분의 웅얼거림 끝에, 아버지는 생의 마지막 힘을 쥐어짜듯 또렷하게 외치셨다.


"물! 물 좀 줘!"


침대 난간을 흔들며 울부짖는 그 목소리는 너무나 명료해서 오히려 비극적이었다. 양쪽 폐의 4분의 3이 망가져 열흘 넘게 금식 명령이 내려진 상태였고, 수액과 약물로 간신히 이어가는 목숨이었다.

간호사가 다가와 물에 적신 거즈를 입술에 대어주었지만, 아버지의 타는 듯한 갈증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아버지는 다시 한번 온 힘을 다해 물을 찾으셨다.

야박하게 거즈의 물기를 꽉 짜서 건네는 간호사를 뒤로하고, 차마 그 애절함을 외면할 수 없어 거즈에 물을 듬뿍 적셔 드려 보았다. 하지만 이내 터져 나오는 아버지의 격한 사레에 나는 손을 떨며 멈출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까지 드리운 이에게 한 잔의 물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이 의학적 최선일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갈증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삶에 어떤 존엄이 남아 있을까....

회생 가능성이 없다면, 차라리 물이라도 마음껏 마시고 떠나시는 게 더 자연 순리에 맞는 것이 아닐까....


간절했던 간청이 무위로 돌아가자 아버지는 기력이 다한 듯 이내 잠드셨다. 그 뒷모습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와, 나는 500ml 캔맥주를 들이켜며 아버지의 갈증을 대신 삼켰다.

그렇게 유언처럼 많은 말을 했지만, 그 말은 모두 웅얼거림으로 언어의 효능을 하지 못했고, 오직 이 세 글자만이 그가 사력을 다해 남긴 마지막 말이 되었다. 차갑고 쌉싸름한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갈 때마다, 아버지가 외친 "물 좀 줘"라는 세 글자는 아버지처럼 사래를 일으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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