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칠천 원으로 남은 사내

일상의 고찰 13 : 아버지의 임종 일기(1)

by 게을러영


요양원에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 ( Generated by chat GPT)


“따님, 어르신 지갑은 가져가세요. 분실 위험도 있고,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하거든요.”

요양보호사의 권유에 망설임이 앞섰다.

아버지는 요사이 부쩍 돈에 집착하셨다.

집을 나설 때부터 지갑만은 절대 놓고 갈 수 없다며 호통을 치시던 모습이 선했다.

그러나 십 년 넘은 베테랑 요양보호사는 노련했다.

그의 부드러운 말 한마디에 아버지는 길든 양처럼 고집스레 움켜쥐고 있던 지갑을 순순히 내어놓았다.


사무실장, 간호 실장, 요양 실장이 번갈아 들어오며 한 뭉텅이의 서류를 내밀었다.

긴 설명의 끝은 늘 나의 서명으로 종결되었다.

그중 백미는 아무 양식도 없는 백지에 자필로 써 내려가야 했던 문장이었다. 입소자의 과실로 인한 부상에 대해 요양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 삐뚤거리는 손 글씨로 그 문장을 채워 넣으며, 나는 백기 투항하는 패잔병의 심정이 되었다.


절차가 끝나고 3층 병실로 향했다.

아버지는 어느새 낯선 요양 원복으로 갈아입은 채 침대에 얌전히 누워 계셨다.

핑 도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며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불과 세 시간 전, 집에서 나오기 직전까지 퍼부어지던 아버지의 악다구니와 욕설은 이미 기억 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처참한 현실도 핏줄의 연민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 법이다.


치매의 파도가 잠시 잦아든 것일까?

아버지는 점심이 맛있었냐는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꼭 잡으셨다.

처음 유치원에 발을 들인 아이처럼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나는 그 눈을 마주 보며 애써 미소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거는 순간,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왜 이토록 서럽게 우는지, 그 정확한 이유조차 모른 채 핸들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꺼이꺼이 울었다.


석 달 전, 아버지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것은 출국을 고작 사흘 앞둔 날이었다.

미국에 사는 두 아들이 부모의 환갑을 축하하겠다며 석 달 전부터 공들여 준비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달려간 집에서 마주한 아버지의 상태는 위중했다.

독감과 폐렴, 그리고 패혈증. 중환자실 입원이 결정되었을 때, 내 머릿속을 가장 먼저 스친 생각은 ‘예정대로 출국할 수 있을까?’ 하는 지독한 이기심이었다.


천행으로 아버지는 고비를 넘기셨고, 남동생의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기다린 듯이 수용하고, 그 후 모든 절차를 맡긴 채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 내내 마음은 살얼음판 위를 걸었지만, 아버지는 내가 귀국할 때까지 잘 버텨주셨다.

퇴원 후, 어머니는 당신이 직접 돌보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이셨다.

그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잔인한 선택인지 우리 자식들은 판단할 겨를이 없었다.

등급 판정도 나오기 전이었고 요양원 대기도 기약이 없었기에,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에 기대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신체적 회복과는 반비례로 치매의 늪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밤낮 없는 섬망은 어머니를 갉아먹었고, 결국 열흘 만에 어머니는 ‘더 이상은 못 하겠다.’며 우셨다.

다행히 도보 거리의 요양원에 빈자리가 났다.

상담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씁쓸했다.

요양원의 남녀 성비는 2대 8, 혹은 1대 9에 달한다고 했다. 그래서 남자의 남은 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 정도로 귀했다.

그런데 속내를 살펴보면, 그 비율이 단순히 수명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픈 남편은 아내가 끝까지 품지만, 아픈 아내는 남편이 돌보지 못해서 결국 요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는 서글픈 통계였다.


입소 직전까지 아버지는 어머니와 격렬하게 싸우셨다. 치매 환자와 싸우는 어머니도, 감정의 거름망 없이 독설을 뱉는 아버지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나 자신이었다.

합리성과 방어 기제라는 두꺼운 갑옷을 입고 이 상황을 빠져나가려는 나의 이기심.

평소 철학서를 필사하며 나의 이성이 단단하다고 믿어왔건만, 내 이성의 크기는 간장 종지만도 못했다.

한 방울의 습기에도 맥없이 찢어지는 습자지 같은, 참으로 볼품없었다.


귀가 후, 휘몰아치듯 서명했던 문서들을 정리하다 아버지의 얇은 지갑을 발견했다. 낡은 가죽 안에는 복지 카드와 체크카드, 그리고 만 원권 한 장, 오천 원권 한 장, 천 원권 두 장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전화로 오만 원권을 미리 빼두길 잘했다며 당신의 판단을 자찬하셨다.

지갑 하나를 두고 얼마나 처절한 실랑이가 있었는지는 이미 봤고, 아버지의 돈에 대한 집착을 능히 알고 있었던지라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가 아닌, 나의 아버지는 오만 원권이 빠져나간 ‘만 칠천 원’으로 남은 사내가 되었다. 그 얇은 지갑이 내 손 안에서 무겁게 가라앉았다.



지난 근 석 달을 한 줄도 못 썼습니다.

아버지가 병세는 계단식으로 내려가는 게 아니고 낭떠러지에서 그냥 자유낙하를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처음 겪는 그 경험은 내게 많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을 차례대로 주었고,

그 생각을 정리하려고 글을 쓴다는 것은 제 이기심으로 치부할 만큼 힘들었습니다.

제가 항상 위로받았던 글쓰기로 오늘은 작정하고 나를 위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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