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까짓 거 해보자!

글도 어중간 그림도 어중간을 연재하게 된 동기

by 게을러영

어중간한 재능 1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사생대회에 나가면 대상도, 장려상도 아닌 중간쯤의 상을 받았다. 그 애매한 재능은 중학교 때까지 지속되어 미대를 가겠다는 꿈을 가진 여중생을 헷갈리게 했다. 당시 아버지는 시청 공무원이셔서 빠듯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리 넉넉지 않은 살림 형편에 미대를 가겠다는 나의 꿈을 부모님은 적극 지지해주지 않으셨다.

그러다 중 2때 학교 대표로 대회에 나갈 학생을 뽑기 위해 미술반 학생들의 그림을 품평한 적이 있었다. 나는 뽑히지 않았고, 미술선생님은 한술 더 떠 미대를 목표할만한 실력은 아니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당시는 충격이었으나 그 팩폭은 차라리 깔끔한 포기를 낳게 했고 오랫동안 헷갈리지 않게 해 줘서 후에 오히려 감사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크게 스크레치를 입은 중2 여중생의 자존감은 며칠간 식음을 전폐하게 했지만, 그 사정을 모르는 엄마에게는 끝까지 진실을 함구한 것은 자존심의 마지막 표현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헤매고 탁탁 털고 일어나서 공부에 매진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의 성적은 전교 10등을 벗어나지 않았기에 그 명분과 실리가 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설득력과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어중간한 재능 2


나는 초등학교 때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모든 상이란 상은 다 휩쓸었다. 동시, 산문 장르를 가리지 않고 나갔다 하면 상을 탔다. 그 재능은 대학까지 지속되어 '모 문학상'에서 2~3등 정도의 성과를 올렸다. 30년도 훨씬 넘은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한 등수는 긴가민가 하지만 확실히 1등은 아니었다.

'그러나'를 쓸 지 '그리고'를 쓸 지 고민했던 그 어중간한 재능 2는 거기서 멈췄다.


육아와 직장 생활에 치인 워킹맘은 그렇게 38년을 글도 그림도 '그게 뭡니까?'로 잊고 살았다.

교사인 관계로 가끔 재직하는 학교에서 문예집을 편찬할 때 '교사란'에 글을 써달라는 청탁에 못 이기는 척 써서 그나마 그 재능이 간신히 숨만 붙어있음을 확인할 뿐이었다.



어중간한 재능 1의 부활


그러다 그 어중간한 재능 1이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자식들이 다 독립하고 나서 빈 둥지 증후군과 갱년기 증상을 한꺼번에 겪을 때였다.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며 수면제 처방을 받기 위해 간 병원에서 평소 좋아하던 취미생활을 한번 해보라는 충고로부터 시작되었다.


바로 실행으로 옮겨 화실을 등록하고 퇴근 후 일주일에 한두 번씩 6개월을 다녔다. 한번 빠지면 훅 집중하는 나의 성격에 보답하듯 그림 실력은 날로 좋아졌다. 그러나 요번에도 신은 또 한 번의 좌절을 안겨주었다.

중2 때와는 달리 이제는 그 어중간함을 사랑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즐기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건강에 태클이 걸렸다. 왼쪽 팔과 다리의 방사통이 너무 심하여 MRI를 찍은 결과 목과 허리의 중복 디스크 판정을 받고 결국 그림을 중단해야만 했다.


몇 년을 그림과 절교하고 지내다가 다시 그림에 대한 욕구가 드러난 것은 디스크가 많이 호전된 즈음이었다. '어반스케치'라는 분야를 알게 되었다. '어반스케치'란 단어 그대로 주변의 도시 정경을 빠르고 간략하게 스케치하는 것을 말한다. 집중하지 않아도 되고 자세히 그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녀의 건강 상태와도 잘 부합되었다.



어중간한 재능 1과 어중간한 재능 2의 결합


코로나가 시작되던 2019년부터 닥치는 대로 그리기 시작했다. 다시 화실을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냥 유튜브나 어반스케치와 관련된 책을 구입하여 참고하면서 되는대로 그렸다.

'그리움을 그린다.'라는 허세와 자만이 뿜뿜 드러나는 제목을 가진 나만의 아트북 1권이 그렇게 완성되고 있었다. 차곡차곡 그림을 쌓아 나갔는데 어느덧 칠십여 장이 넘었다.

대부분의 어반스케치는 그림이 위주이고 글은 거의 없다.

그러나 나는 항상 그림 한 귀퉁이에 소회를 곁들여서 나만의 그림일기를 완성하고 있다.


이제 나는 어중간한 재능 1 <그리기>와 어중간한 재능 2 <글쓰기>를 결합하여 4배로 증폭된 어중간한 글과 그림을 연재하기로 한다. 배수가 아닌 곱수인 것은 어중간함을 이해해 달라는 비겁한 변명임을 뻔뻔하게 밝힌다.

아무 때나 내 맘대로 쓰고 올리는 글이 아닌 연재를 통하여 나 스스로에게 좀 더 책임감과 강제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감히 '자기탁마'라고 치부한다.('자기탁마'와 '자기고행' 중 어느 단어를 쓸까 고민하다가 고행은 인도의 수양자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그것까지는 아니다 싶어 탁마로 절충한다.)


둘째는, 정말 하루씩 달라져 가는 나의 기억력의 소실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은 욕망과 노력의 발로이다.

그냥 백기투항할 수는 없다.

버틸 때까지 버틸 것이다.

떠오르지 않는 단어와 반복되는 어휘의 회피는 얼마든지 검색을 통하여 찾으면 된다.

다행히 나의 부족함을 조용히 해결할 수 있는 많은 도움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고, 웬만한 정보는 무료로 활용할 수 있다.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건강만 관리하다면 내 욕망과 자존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으로 매일을 만족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 글쓰기는 일상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좋은 길이며, 글쓰기 습관에 충분한 시간을 부여하는 것이 최고의 자기 배려'라고 말한 셰퍼드 코미나스의 말을 찰떡같이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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