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구용 교수의 '애도와 멜랑꼴리'에 공부하면서
이 그림을 그릴 때는 22대 총선을 곧 앞둔 시점이었다.
벚꽃이 화사하게 피다 못해 바람에 꽃비가 흩날릴 때, 남편과 나는 함께 상당산성 둘레길을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자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나는 '월말 김어준'을 들으며 그 향연을 즐기고 있었다.
'월말 김어준'은 귀로 듣는 '월간 잡지'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를 모시고 그 찬란한 전문적 지식을 향유하는 것은 나와 같은 전문성과 보편타당성을 갈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만족감이 높은 프로그램이다.
그 중 내가 최애하는 코너는 박구용 교수님과 박문호 교수님의 강연이다.
'[월말 김어준] 흑담즙, 뒤러, 프로이트, 안티고네, 주이상스, 라캉
https://youtu.be/k7qOwkW4Pbs?si=P0ZZUT3I3FRwuQpg
이 편은 애도와 멜랑꼴리에 관한 얘기였다.
애도와 멜랑꼴리 각각 따로 알고 있는 단어였다. 애도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고, 멜랑꼴리는 낭만과 연결되는 단어이다. 그런데 이 둘을 연결한 제목이라니? 당연히 흥미로웠다.
우리에게는 국가가 나서서 애도를 하지 말라고 했던 무서운 시대가 있었다.
159명의 희생자가 났던 이태원 참사때 국가는 '근조'라는 글자를 뺀 리본을 달게 했고, 위패도 모시지 않은 영결식장을 차렸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보편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분노했다.
박구용 교수님의 말을 빌려 보면....
"사람들은 애도를 범죄로 모른 그 기세가 무서워서 기억에서 지워진 척 해야했다. 그러나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지워지지 않는다. 애도의 기회를 빼앗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그들은 영혼이 벌거 벗겨진 사람들 후안무치의 잔인한 사람들이다.
멜랑꼴리 하면 떠오르는 것은 음악이 흐르는 찻집을 연상하거나 재즈를 떠올리는 낭만이다. 우울하고 나이브한 것이다. 맬랑꼴리는 병과 연관된 것이고 로맨틱은 사조이니 다른 것이지만 '낭만적'이란 것에서 공통점이 있다.
'멜랑꼴리'란 말을 제일 처음 쓴 사람은 히포크라테스였다.
'4체액성'이란 것이 있는데 이것은 '건조하다, 습하다, 뜨겁다, 차갑다' 의 4가지 성질로 4가지 체액을 의미하고 그 종류로는 피, 점액, 황담즙과 흑담즙이다. 이 4체액성이 인체를 이루는 체액이다. 이 중 흑담즙이 멜랑꼴리이다. 멜랑은 검은 색이고 꼴리가 담즙이란 뜻이다.
사람은 이 4가지 체액이 균형을 이룰 때 건강하다. 그 중 검은 담즙이 과다 분비되는 현상도 멜랑꼴리이다. 다시 말해 검은 담즙이 멜랑꼴리이지만 그것이 과대 분비되는 병적 현상도 멜랑꼴리라고 부르고 이것은 걱정과 슬픔을 오랫동안 지속하게 하는 병이다. 멜랑꼴리는 인간의 본성이자 원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특별히 이 병을 잘 앓는 사람군이 있는데 예술가, 철학자 지식인들이고 우둔한 자는 걸리지 않는 병이다. 그것을 연구한 자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인간이 슬픔을 처리하는 방식은 슬픔과 분노를 처리하면서 그것을 잊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애도와 멜랑꼴리'라는 아주 유명한 논문이 있는데 그것을 쓴 사람이 바로 프로이드이다.
사람은 살아있는 생명체에 리비도를 집중하는 게 정상이다. 리비도란 인간의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성적 욕구 또는 생명 에너지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닌 다른 부분에 리비도가 집중하는 것은 병이다. 그런 리비도 집중현상은 보상이 되돌아오지 않을 때 나타내는 병적현상으로 그 살아있는 대상이 사라졌을 때 그 리비도를 회수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 회수하는 과정과 기간이 바로 애도이다. (예를 들어 상가집에는 슬픔도 있지만 웃을수도 있다. 이것이 둘 다 있어야 건강하고 정상적인 상황이다.)
리비도의 회수는 원망과 그리움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그것이 자연스럽게 해소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죽은 사람을 잊게 된다. 그것이 애도의 바른 방법이다.
그 과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멜랑꼴리가 나타난다.
가장 억울한 죽음은 자기가 왜 죽었는지 모르는 죽음이다. 즉 동양에서 귀신이 구천을 떠도는 이유가 바로 이예이다. 그러므로 모든 억울한 죽음은 원인이 낱낱히 밝혀져야 하고 애도를 충분히 해야 멜랑꼴리는 해소될 수 있다. 애도를 인위적으로 막으면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는 폭발하게 된다."
이 편을 들으면서 멜랑꼴리와 애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알게 되었다.
감동이 있고 그래서 그리고 싶어졌다.
당시의 나의 충만함을 표현한 아주 직관적인 그림이다.
철학자가 풀어주는 지식은 참으로 섹시하다.
배움은 이래서 늘 신선하고 자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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