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필사하는 수양에 나를 투영하다

윌리엄진서 <글쓰기 생각쓰기> 필사의 장점과 연재를 마치는 소감

by 게을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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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는 기술이지 예술이 아니다. 영감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기능을 연마하는 일에서 손을 떼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며 빈털터리가 되고 말 것이다.

- 글은 써야 는다. 글쓰기를 배우는 유일한 방법은 강제로 일정한 양을 정기적으로 쓰는 것이다. 종이 위에 언어를 펼쳐 놓는 힘과 자신감이 생기고 일반적인 문제를 알게 될 것이다.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는 필사하면서 많은 위로와 가르침을 받은 책이다.

필사의 효용성을 크게 깨닫게 해 준 이 책에 감사하다.




글이 지겹게도 안 써지는 날이 있다.

왜 연재는 시작해서 스스로 옭아매는지 후회한 날도 적지 않다.

안 써지는 날은 한 줄도 억지다.

그 억지를 붙잡고 계속 징징거려 봤자 소용없다.

온종일 비문들만 쭉 나열해 놓고 결국 포기하고 노트북을 닫았다.


그런데 다음날 기가 막힌 기적이 펼쳐진다.

아귀가 맞지 않던 문구들이 번쩍 날아가서 알아서 자리를 바꾸고 제 자리로 찾아간다.

딱 맞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주춤하고 있던 자리에 맞춤 정장 같은 단어가 턱 들어와 앉는다.

안 떠올랐던 문구들이 확확 지나가며 나한테 선택해 달라고 손짓한다.

쓸까 말까를 고민하며 여러 번 상처 났던 부사들이 알아서 밴딩하고 문장 사이로 기가 막히게 안착한다.


이건 나의 상상이다.

절대 이렇게 매끄럽지 않다.

요술 막대를 '뾰로롱'하며 두어 바퀴쯤 돌리면 나타나는 기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나는 치트 키를 사용할 결심을 한다.


첫 번째는 노트북을 닫고 운동화를 신는 것이다.

슬로 조깅으로 땀을 낸 후 샤워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바로 노트북을 열면 안 된다. 그 상쾌함이 뇌도 리프레시 된 것처럼 속이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이다. 다른 책을 보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글쓰기와 좀 텀을 둔 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두 번째는 필사하는 것이다.

남들이 그렇게 필사의 장점을 떠들어대도 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우연히 윌리엄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를 접하고 그 하나하나 소중한 문장들이 그냥 머리 옆으로 지나가는 것이 아까워서 내 필요와 맞는 문장을 필사하다 보니 문장뿐만 아니라 단어와 맞춤법, 띄어쓰기까지도 보였다. 생각지 못한 보너스이다. 공감각적 도구의 확장으로 저자의 의도와 맥락이 직접적으로 가슴에 닿는 그 순간의 쾌감은 경험한 자만이 느끼는 카타르시스이다.

생각해 보면 필사는 문화유산의 가장 앞선 방법이었다.

인쇄술 이전의 방법이었고 인쇄술 이후에도 평민들에게 가장 가깝고 손쉬웠다.

성경 필사는 꽤 대중화된 기도로써 치유와 위로가 된다는 간증들이 많다.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이번 필사를 통해 공감하게 되었다.


<글쓰기 생각쓰기>를 일주일 넘게 아껴서 읽으면서 이십 쪽에 달하는 필사를 마쳤다.

필사한 내용들을 재독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약점과 보완점으로 귀결된다.


나에게 죽비가 되는 문장이 있다.

글쓰기는 누가 빨리 쓰느냐가 아니라 누가 독창적으로 쓰느냐의 싸움이다.
최근의 글뿐 아니라 과거의 뛰어난 작가들이 쓴 글을 읽는 습관을 들이자. 글쓰기는 모방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여기서 전제는 반드시 좋은 글을 골라야 한다. 사전을 찾는 습관을 들이자. 유의어 사전을 찾다 보면 유쾌해진다.
또 명심할 것은, 단어를 고르고 그것을 이어 붙일 때 소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문장의 어순을 바꿔보거나, 참신하고 특이한 단어로 바꿔보거나, 문장의 길이를 바꿔서 전부 같은 기계에서 뽑아낸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해보자. 여러분이 가진 연장은 단어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것을 독창적이고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법을 배우자.


장삼이사인 내게 쓰는 것의 두려움을 없애 주는 구절도 있다.

자기 관심사에 관하여 쓰자.
쓰면 안 되는 주제란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파고들면 글도 잘 써지고 독자의 관심도 끌 수 있다. 자기가 아는 대로 정직하게 쓸 수만 있다면 지나치게 특별하거나 별난 주제란 없다.


대가도 나랑 똑같구나. 그도 한 줄을 쓰기 위해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구나. 용기와 공감을 주는 문장이다.

작가는 글을 쓰는 순간 스스로에게 시동을 걸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고 해도 자리에 앉기만 해도 글이 술술 써지는 사람은 없다.
아무도 매일 아침 그들이 시동을 걸기 위해 쏟는 노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분도 시동을 걸어야 한다. 누구도 그 일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속이 뻥 뚫리는 부분도 발견하였다. 명퇴 후 글을 쓰는 나에게 이런 말은 하는 사람이 꽤 된다.

"진짜 좋겠어요. 도서관에서 책 읽고 글을 쓰는 거.... 여유가 부러워요."

'하면 되잖아요?'라는 말은 마음속에 넣고 그냥 웃는다. 그들이 막상 시간이 주어진다고 과연 글을 쓸까? 글 쓰기가 그렇게 만만한가?

작가는 언젠가는 글을 써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불쾌할 때가 많다. 언젠가는 쓸 수 있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는 '글쎄올시다.'다.


이렇게 단언과 보증을 할 수 있을 만큼 윌리엄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는 강추이다.

혹시 예전의 나처럼 여전히 필사에 대하여 주저하는 분들께 수줍게 권한다.


필사는 사람이 아니에요.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고 배신하지도 않습니다.



에필로그.

연재의 끝이 30회인걸, 마지막 원고를 예약 발행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여행 때문에 미리 글을 예약하려는 나에게, '연재를 마쳤다. 더 쓰고 싶으면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라'는 고지가 떴고, 그제야 부랴부랴 이 에필로그를 첨부하여 마지막 페이지를 채웁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이 마지막 연재 글의 첫머리에 연재의 무거움에 눌린 내 일상을 솔직히 고백했는데, 예상치 못한 진짜 '종료'가 되었습니다. 영리하게 잘 배분하여 연출했으면 좋았을 텐데, 불행히도 저는 그런 재주가 없습니다.

작품명처럼 제 글은 '글도 어중간, 그림도 어중간'이었습니다. 정보의 깊이도, 감동의 폭발력도 없는 평범한 에세이는 수많은 브런치 작품 속에서 쉽사리 눈에 띄지 않습니다. 우뚝 선 작품 앞에서 빛나기를 바라는 것은 아직 언감생심입니다.


자주 소식을 주고받는 대학 스승님께서 제게 힘을 주는 말을 주셨습니다.


망천자 작태수(望天子 作太守)


'천자(황제)를 바라보면 태수(지방의 최고 행정관)가 된다. '는 뜻입니다. 가장 원대한 목표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그 목표를 향한 간절한 노력이 차선의, 그러나 상당한 성과를 보장한다는 권면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묵묵히 쓰고 있습니다.

곧 새로 연재할 내용을 구상하면서 말입니다.

어중간한 거북이가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제 연재를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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