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앞에서만 길어지는 시간

기다릴 수 없는 순간의 십 분

by Helia

십 분은 원래 참을 만한 시간이다. 화장실만 아니면. 커피를 주문해 놓고 기다릴 때도, 신호등 앞에서도, 십 분쯤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보면 금세 지나간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말한다. 조금만 기다려. 십 분밖에 안 되잖아.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대부분의 시간 속에서 십 분은 여유의 단위에 가깝다.
하지만 생리적인 현상이 발생하는 순간, 십 분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그때의 십 분은 기다림이 아니라 버팀이 된다. 오 분도 길고, 삼 분은 한없이 멀다. 마음은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데 몸은 줄의 끝에 서 있다. 줄은 이상하리만큼 줄어들 기미가 없고, 앞사람의 작은 동작 하나하나가 크게 느껴진다. 가방을 여는 손길, 굳이 지금 시작하는 통화, 신발을 고쳐 신는 모습까지.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았을 장면들이 그 순간에는 전부 시간을 붙잡아 늘어뜨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 십 분 동안 마음과 몸은 따로 움직인다. 이성은 애써 상황을 설명한다. 순서가 있으니까, 금방이니까, 참아야 하니까. 하지만 몸은 설명을 듣지 않는다. 몸은 지금을 요구하고, 즉각적인 해결을 원한다. 다리를 꼬았다 풀었다 반복하고, 괜히 체중을 옮기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시선은 바닥만 향하고, 초침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린다. 시계는 분명 제 역할을 하고 있는데, 분침은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순간에야 깨닫게 된다. 시간은 숫자가 아니라 감각이라는 걸.
줄을 서 있는 동안 주변은 놀랄 만큼 평온하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서 있고, 대화를 나누거나 화면을 넘긴다. 그 평온함이 오히려 더 초조하게 만든다. 나만 혼자 다른 속도로 흐르는 시간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 나만 지금을 견디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고립감. 그때의 생각은 단순하다. 빨리, 제발 빨리. 그 외의 말은 머릿속에서 힘을 잃는다.
이런 순간을 겪고 나면 십 분이라는 말을 쉽게 쓰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조금만 기다려’라는 말속에는,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의 기준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기다릴 수 있음과 기다릴 수 없음은 성격이나 인내심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그저 상태의 문제다. 어떤 순간에는 누구나 여유롭고, 어떤 순간에는 누구나 절박해진다. 몸이 보내는 신호 앞에서는 의지도 설명도 큰 힘을 쓰지 못한다.
그래서 십 분은 단순한 시간 단위가 아니다. 십 분은 상황의 밀도다. 여유로운 십 분은 흘러가지만, 절박한 십 분은 들러붙는다. 같은 길이의 시간인데도 체감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종종 이 차이를 잊은 채 산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십 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계에 가까운 시간일 수 있다는 사실을. 겉으로 보이는 표정만으로는 그 십 분의 무게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생리적인 현상 앞에서 인간은 솔직해진다. 체면도, 계획도, 여유도 잠시 뒤로 밀린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 비슷해진다. 조급해지고, 예민해지고, 세상이 조금 불친절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상황이 해결되고 나면, 방금 전의 절박함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왜 그렇게 급했을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때의 급함은 분명 진짜였다. 그 십 분은 실제로 길었고, 몸은 그 시간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이 사소한 경험은 생각보다 많은 걸 남긴다. 타인의 시간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태도, 누군가의 ‘잠깐’이 지금 어떤 상태에서 나온 말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마음. 그래서 나는 이제 십 분이라는 말을 들으면 잠시 멈춘다. 이 십 분은 지금 누구에게는 여유일지, 누구에게는 벼랑일지 알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십 분은 짧다. 동시에 길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기도 하고, 유난히 버거운 시간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매일 시간을 견디고, 줄을 서고, 결국은 지나간다. 방금 전까지는 도저히 못 기다릴 것 같던 십 분도 결국은 지나간다. 다만 그 십 분을 통과하는 동안의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십 분. 화장실 앞에서만큼은 인간이 얼마나 상황에 좌우되는 존재인지 또렷하게 드러나는 시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줄을 서며 생각한다. 이 십 분이 빨리 끝나길 바라면서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조금만 기다려’라고 말하게 될 때, 그 말의 무게를 잊지 않겠다고. 십 분은 지나가지만, 그 십 분을 대하는 태도는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