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장|듣고 싶은 말

그 말을 가장 늦게 건네는 사람은 언제나 나였다

by Helia

추천 클래식

Voices from the Morning of the Earth
— George Crumb, amplified piano & percussion


사람은 누구나 듣고 싶은 말을 품고 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은 늘 가장 늦게, 혹은 끝내 오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 곁을 스쳐 간다. 괜찮다는 말, 충분하다는 말, 지금 이대로도 잘 살아내고 있다는 말. 그 문장들은 늘 마음속 어딘가에 떠다니지만, 정작 필요할 때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숨을 쉬듯 자연스러워야 할 말들이 왜 이렇게 무거워졌을까. 나는 그 이유를 한참을 지나서야 깨달았다. 우리는 듣고 싶은 말을 기다리는 데 익숙해졌을 뿐, 그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는 법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밤,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끝나고 불을 끄기 직전이었다. 잘한 일도 없고, 그렇다고 크게 잘못한 일도 없는 날이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이 이유 없이 무거웠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가 말았고, 괜히 메시지를 쓰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루를 접으려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를 통과해 온 나에게, 나는 어떤 말도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늘 타인의 입을 빌려야만 들을 수 있다고 믿어왔다는 것을.

어릴 적에는 다르지 않았다. 잘했다는 한마디에 하루가 달라졌고, 괜찮다는 말에 눈물이 멈췄다. 그 말들은 작은 부적처럼 마음속에 간직되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 말들은 점점 사라졌다. 어른이 되면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 감정은 조절해야 하고 약함은 숨겨야 한다는 사회적인 합의 속에서 우리는 점점 말을 아끼는 법부터 배웠다. 그러다 보니 듣고 싶은 말은 사치처럼 느껴졌고, 위로를 바라는 마음마저 스스로 검열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세상은 원래 냉정하다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세상이 특별히 더 차가웠던 적은 없다. 오히려 내가 나 자신에게 유난히 엄격했다. 남에게는 쉽게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에게는 왜 그 한마디를 허락하지 않았을까. 실패한 날에는 반성부터 했고, 잘 해낸 날에도 부족한 점을 먼저 떠올렸다. 그렇게 쌓인 말들은 위로가 아니라 채찍이 되었고, 나는 그 채찍을 쥔 채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듣고 싶은 말은 늘 거창하지 않았다. 인생을 바꾸는 조언도,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정답도 아니었다. 다만 지금의 나를 부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 하나면 충분했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인정받고 싶었고, 애쓴 시간을 애썼다고 불러주길 바랐다. 그런데 그 단순한 바람을 왜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우리는 너무 오래 참고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 견디는 것이 미덕이 되면서, 다독이는 일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났다.
사람마다 듣고 싶은 말의 모양은 다르다. 어떤 이는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에 오래 머문다. 어떤 이는 “그래도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라는 문장 하나에 마음이 무너진다. 또 어떤 이는 굳이 말이 필요 없을 때도 있다. 묻지 않고 곁에 있어주는 태도, 판단하지 않는 침묵,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눈빛. 그래서 듣고 싶은 말은 반드시 소리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은 여전히 중요하다. 말은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말을 붙이느냐에 따라 하루의 결이 달라진다. “왜 이것밖에 못 했을까”와 “그래도 여기까지 해냈다”는 전혀 다른 하루를 만든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아니,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듣고 싶은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는 순간, 그동안 쌓아온 기준과 기대를 내려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나에게 말을 건넸을 때, 솔직히 어색했다. 위로라는 이름으로 나를 속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은 반복될수록 힘을 가졌다. 잘하지 못한 날에도 “그래도 오늘을 포기하지는 않았어”라고 말해보았고, 아무 성과가 없는 날에도 “살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해”라고 중얼거렸다. 그 말들은 처음에는 공허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음에 닿기 시작했다. 말이 마음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말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듣고 싶은 말은 결국 살아가겠다는 선언과 닮아 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내일로 건너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문장. 그래서 그 말은 과거를 평가하지도, 미래를 약속하지도 않는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붙잡아 준다. 삶이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말을 필요로 하는 것 같지만, 실은 단 하나의 문장으로도 충분할 때가 많다. 괜찮아. 충분해.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해. 그 말들이야말로 오늘을 버티게 하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이유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말을 기다리기만 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여전히 듣고 싶은 말은 있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는 따뜻한 한마디는 여전히 마음을 밝힌다. 하지만 그 말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하루가 무너지게 두지는 않으려 한다. 대신 내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건넨다. 오늘의 나에게, 흔들리는 나에게, 아직 확신 없는 나에게. 그 말은 작고 조용하지만 분명하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그리고 아마도, 우리가 정말로 듣고 싶은 말은 늘 그렇게 우리 안에서 먼저 시작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