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내 꿈에 가끔만 놀러 와.

아직 깨어 있는 꿈의 사람에게

by Helia

잠을 미루던 밤이었다. 이미 끝난 대화를 다시 읽다 휴대폰을 덮고, 아무 의미 없는 알림을 지우며 시간을 흘려보내던 때였다. 그날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먼저 보았다. 내 꿈에 가끔만 놀러 와. 읽기도 전에 이미 마음 한쪽이 들켜버린 기분이 들었다. 자주 말고, 가끔만. 그 말은 부탁이었고, 동시에 절제였다. 아직 완전히 보내지 못한 무언가를 품고 사는 사람만이 고를 수 있는 표현이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여러 번 페이지를 넘기다 멈췄다. 문장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너무 정확해서였다. 이 책은 꿈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만, 실은 꿈이 시작되기 전의 시간, 그리고 깨어난 이후의 시간을 더 오래 붙잡는다. 꿈은 여기서 도피처가 아니다. 하루를 버텨낸 마음이 겨우 허락한 작은 숨구멍에 가깝다. 현실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오히려 꿈을 조금만 허용하는 태도. 그래서 이 책의 꿈은 달콤하지 않고, 오히려 절제되어 있다.

‘내 꿈에 가끔만 놀러 와’라는 제목에는 묘한 윤리가 있다. 매일 오면 안 될 것 같고, 아예 오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마음. 그 중간을 스스로 정해보려는 시도다. 이 책은 그 시도를 미화하지 않는다.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으며, 여전히 잠에서 깨면 허전하다. 다만 그 상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별 이후의 감정이 꼭 극복이나 성장으로 정리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이 책은 아주 조용히 인정한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너’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너’를 끝내 특정하지 않는다. 떠난 연인일 수도 있고, 멀어진 친구일 수도 있으며, 이미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과거의 나일 수도 있다. 혹은 끝내 말하지 못한 문장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대상이 고정되지 않기에, 독자는 자신의 기억을 끼워 넣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사람마다 다른 얼굴을 불러낸다. 그리고 그 점이 이 책을 더 아프게, 동시에 더 안전하게 만든다.

문장은 과잉되지 않는다. 감정을 설명하려 들지 않고, 감정이 머물 자리를 남긴다. 어떤 슬픔은 설명되는 순간 납작해지고, 어떤 그리움은 정의되는 순간 진실을 잃는다. 이 책은 그 위험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말은 줄이고 여백을 남긴다. 덕분에 독자는 문장을 읽는 동시에 자신의 시간을 불러오게 된다.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던 관계, 다 정리했다고 믿었던 감정들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하지만 이 호출은 폭력적이지 않다. 억지로 꺼내 보여주지 않고, 스스로 떠올릴 만큼만 남겨둔다.

특히 인상 깊었던 지점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다루는 방식이다. 우리는 흔히 꿈을 비현실로 밀어낸다. 그러나 이 책에서 꿈은 가장 솔직한 감정의 언어다. 낮에는 애써 접어두었던 마음이 밤에야 제 모양을 찾는다. 그렇다고 해서 꿈이 위로만 남기지는 않는다. 다시 만나게 해 주지만, 다시 잃게 만든다. 이 책의 꿈은 위안이자 처벌이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꿈에서조차 완전한 만남은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닮아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자주 질문하게 되었다. 우리가 누군가를 꿈에 불러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련이라 부르기엔 너무 조용하고, 사랑이라 부르기엔 이미 늦은 감정들. 내 꿈에 가끔만 놀러 와는 그 미완을 억지로 완성하려 하지 않는다. 다 끝내야만 앞으로 갈 수 있다는 강박 대신, 끝내지 못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 태도가 이 책을 더욱 믿게 만든다.

요즘은 이별조차 빨리 의미를 가져야 하는 시대다. 무엇을 배웠는지, 어떻게 더 단단해졌는지를 말하지 않으면 미성숙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은 묻는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그냥 아직 아픈 채로 남아 있어도 되는 시간은 없는가. 이 질문은 단정하지 않아서 더 오래 남는다. 회복이라는 단어를 쉽게 쓰지 않고, 성장이라는 말로 상처를 덮지 않는 태도. 그 태도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책의 정서는 분명 쓸쓸하다. 그러나 비관적이지는 않다. 슬픔을 오래 바라보되, 그 슬픔을 삶의 전부로 만들지 않는다. 오늘도 살아냈다는 사실, 그 사실 하나만을 조용히 인정한다. 어제보다 나아지지 않았어도 괜찮고, 여전히 같은 꿈을 꿔도 괜찮다는 듯이. 이 책은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 이 상태로도 혼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나 역시 누군가의 꿈에 가끔만 등장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매일 찾아가 마음을 어지럽히는 존재가 아니라, 가끔 나타나 안부만 남기고 사라지는 사람. 기억 속에서도 과하지 않은 존재. 이 책은 떠난 이후에도 지켜야 할 거리, 사랑 이후에도 남겨야 할 예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거리감이 이 책을 더 성숙하게 만든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즈음, 이 책은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상태를 남긴다. 여전히 그리운 채로 살아가는 상태, 그러나 그 그리움에 전부를 내주지 않는 상태. 현실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꿈을 완전히 추방하지 않는 균형. 그 균형이 얼마나 어렵고 동시에 얼마나 인간적인지, 이 책은 끝까지 설득한다.

이 책은 위로를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혼자만 이런 마음을 가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준다. 밤이 길어질수록 괜히 잠을 미루게 되는 사람, 이미 끝난 이름을 마음속으로 다시 불러보는 사람에게 이 책은 적당한 불빛이 된다. 밝아서 눈을 아프게 하지 않고, 어둡다고 길을 잃게 하지도 않는 불빛.

내 꿈에 가끔만 놀러 와는 이별을 잘 견디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이별 이후의 시간을 존중하는 법을 보여준다. 말로는 안녕이라고 했지만, 마음으로는 아직 안녕하지 못한 우리에게 이 책은 말한다. 그 마음은 틀리지 않았다고. 언젠가 정말로 괜찮아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금 이 감정 역시 삶의 한 장면이라고. 그래서 이 책을 덮고 나서야 나는 이런 인사를 속으로 건넬 수 있었다. 안녕이라 그랬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그리고 그 말이 부끄럽지 않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