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은, 조용한 그리움
눈이 내리는 날이면, 세상이 조용해진다.
소음은 흡수되고, 움직임은 느려진다.
사람들의 말도 줄어들고, 발걸음조차 조심스러워진다.
모든 게 잠시 멈춘 듯한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문득 내 마음 안에 묻어둔 어떤 감정을 떠올리곤 한다.
눈은 모든 것을 덮는다.
지저분했던 땅도, 낡은 자국도,
지워지지 않던 흔적들마저 하얗게 가리고 지나간다.
그래서인지, 눈을 보면 ‘숨기고 싶었던 마음’이 떠오른다.
미처 말하지 못한 고백, 끝내 꺼내지 못한 진심,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 감정의 조각들.
그 모든 것들이 내 안 어딘가에서 여전히 녹지 않은 채
조용히 눈 속에 묻혀 있다.
나는 한때 누군가를 깊이 좋아했다.
그러나 그 마음은 끝내 전해지지 못했고,
어느 겨울, 눈이 내리던 날
나는 그 마음을 혼자 삼키듯 묻었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고,
말 한마디 없이 끝난 그 마음은
그날의 눈처럼 내 안에 조용히 쌓여갔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줄 알았다.
계절이 바뀌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건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특히 말하지 못했던 마음은 더 깊숙이 스며든다.
그건 미련이 아니라,
제대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나 자신의 흔적이기도 하다.
눈 속에 묻힌 마음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 않아 보이고,
조용히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여전히 그 감정을 품고 있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그 마음도 점점 얼어붙는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 속에 녹아든다.
하지만 그 마음은 어느 날,
다시금 눈이 내리는 날이면 조용히 고개를 든다.
그 풍경, 그 기온, 그 공기 속에
내가 묻었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건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도, 다시 바라보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시절,
그 순간의 나를 떠올리는 일에 가까웠다.
눈 속에 묻힌 마음은 결국, 나 자신에게 건네지 못한 위로였다.
그땐 괜찮지 않았다고,
충분히 외롭고 아팠다고,
그 마음은 진짜였다고
조용히 인정하는 시간.
그렇게 오래된 감정의 무게를
다시 한번 손끝으로 짚어보는 일.
나는 이제 그 마음을 꺼내며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때의 나는,
사랑했고, 두려웠고, 다정했으며,
끝내 말하지 못했지만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걸 인정하는 순간,
그 마음은 더 이상 얼어붙은 채 있지 않았다.
천천히 녹기 시작했고,
내 안의 어떤 부분이 조용히 풀렸다.
눈은 결국 녹는다.
지금은 모든 것을 덮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아래 무엇이 있었는지를
천천히 드러내게 될 것이다.
눈 속에 묻은 마음도 그렇다.
지금은 조용히 감춰져 있지만,
언젠가는 그 마음도 말이 될 날이 올 것이다.
혹은 말로 꺼내지 않아도,
내가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다시 눈이 내리는 날,
나는 또 한 번 그 마음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이번엔 조금 더 부드럽게 안아볼 것이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애써 외면하지도 않고,
그저 그 시절의 내가 견뎌낸 마음 하나를
따뜻한 숨처럼 품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