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라는 감정
숫자 5는 내게 숫자이기 전에 하나의 계절이다.
따뜻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아직 이르지 않은 초여름의 기운이 나뭇잎을 반짝이게 하는 계절. 그 사이에 오월이 있고, 오월엔 나의 생일이 있다. 그래서 5라는 숫자는 내가 태어난 시간, 내가 자란 계절,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순간을 닮았다.
5는 중간의 숫자다. 1과 10 사이, 정확히 그 반. 어릴 때는 그저 시험지의 5번 문제를 의미했고, 학창 시절엔 반마다 정해진 조 번호, 혹은 줄 번호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나는 이 숫자에 자꾸 마음을 얹게 되었다. 균형을 잡고 있는 숫자, 치우치지 않은 숫자, 그리고 뭔가 결정적인 순간에 도달한 숫자.
오월의 하늘은 이상하리만치 높다.
가벼운 재킷을 입고 걷기에 딱 좋은 기온,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욕망, 그리고 생일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들뜸이 뒤섞인 날들. 나에게 5는 그런 기분이다. 설렘과 서늘함이 공존하고, 어제와 오늘 사이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는 온기. 그래서일까, 오월에 태어났다는 건 늘 나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한 줄이 되었다.
“오월에 태어났어요.”
그 말 한마디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감정과 계절을 좋아하는지, 어쩌면 이미 다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5는 손가락의 수이기도 하다.
한 손 가득 쥘 수 있는 위로의 무게.
누군가의 등을 다독이기에 알맞은 따뜻함.
혼자 있을 때 손을 펴면, 마치 나를 향해 위로를 건네는 모양새가 되어준다.
“괜찮아, 너는 잘하고 있어.”
왼손 다섯 손가락이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다섯은 고요한 위로의 모양이다.
또한 5는 불완전함의 수이기도 하다. 10이 아니라서, 딱 떨어지지 않아서.
그런데 나는 그런 불완전함이 좋다.
적당히 느슨하고, 약간은 모자라고, 그래서 계속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숫자.
5는 “아직”을 품고 있는 숫자다.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아직 멀었으며,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는 상태.
그러니까 5는 희망이다.
5월 25일.
햇살이 따가울 듯 부드럽고, 바람은 포근하게 살결을 스치는 날.
내가 세상에 인사한 그날, 시간은 5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를 지켜봐 주었다.
세상의 많은 생일 중 하나일 뿐인데, 왠지 모르게 그날은 특별한 기운이 감돈다.
하늘도 조금 더 맑은 것 같고, 거리에 핀 꽃들도 더 눈에 들어온다.
나는 내가 태어난 오월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계절을 품은 숫자 5도.
어릴 적 나는 숫자들에 성격이 있다고 믿었다.
1은 고집스럽고, 2는 부드러우며, 3은 쾌활하고, 4는 조용했다.
그렇다면 5는?
나는 5를 이렇게 설명하곤 했다.
“5는 온화한 성격인데, 자기만의 확고한 기준이 있어.
잘 웃고, 잘 참지만, 가끔은 감정을 꾹꾹 쌓아두는 성격이야.”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건 숫자 5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숫자 5.
평범한 숫자일 뿐인데, 나는 거기에 나를 담는다.
나의 계절, 나의 속도, 나의 균형, 그리고 나의 마음.
누군가는 그냥 지나치는 숫자지만, 내게는 살아온 시간을 꾹 눌러 적은 기호.
그러니까 언젠가 나를 상징하는 무언가를 남긴다면, 조용히 5를 새겨 넣고 싶다.
숫자가 아니라, 기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