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고 부르지 못한 마음
가끔 라디오에서 윤건의 ‘갈색머리’가 흘러나오면
나는 무심코 숨을 고르게 된다.
마치 잊고 있던 누군가가
불쑥 내 마음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처럼.
그 노래에는 특별한 코드가 있다.
눈이 부실 만큼 맑던 어느 날,
갈색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웃던 너의 모습이
그 선율 위에 겹쳐진다.
우리는 늘 애매했다.
연인이라 하기엔 너무 조심스럽고,
친구라 하기엔 너무 자주 서로를 의식했다.
그래서였을까.
함께했던 날보다
그저 스쳐 지나간 날들의 기억이 더 또렷하다.
너는 웃을 때마다 고개를 살짝 숙였고,
햇빛을 등지고 서 있을 땐 머릿결이 반짝였다.
나는 그때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예쁘다”라는 감탄만 마음속에 가두곤 했지.
지금 생각하면,
그건 이미 마음을 준 상태였는데 말이야.
사람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감정을 선명하게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내가 왜 너의 말투에 흔들렸고,
왜 너의 뒷모습이 그렇게 오래 남았는지.
우리는 결국 아무 말 없이 멀어졌다.
연락을 하지 않은 것도,
붙잡지 않은 것도,
서로가 잘못한 게 아니었다.
그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달랐고,
그 계절이 우리를 끝까지 데려가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도 너는 내 기억 속에서
늘 햇살을 안고 있다.
카페 창가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웃던 너,
길 건너편에서 손을 흔들던 너,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하지 않은 채 돌아섰던 너.
모두 갈색머리로 기억된다.
그 머릿결이 내 기억을 감싸고 있어서일까.
어느 날 무심코 지나치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잠시 너로 보일 때면,
나는 걸음을 멈춘다.
말도 걸지 않고, 이름도 부르지 못하면서도
그 순간 너에게 다가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건 네가 아니라,
내가 아직도 놓지 못한 장면이라는 걸.
음악은 그렇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어도,
마음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윤건의 ‘갈색머리’는
내게 그랬다.
첫사랑이 무엇인지 몰랐던 내가,
그 시절을 애써 외면했던 내가
처음으로 내 감정을 인정하게 만든 노래.
나는 이제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아프지도 않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지만,
그래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그런 감정.
갈색머리, 그날의 너는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웃고 있다.
그리고 그 웃음은
아직도 내 마음 한 구석을 따뜻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