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읽다.

말 없는 다정함을 해석하는 법

by Helia

우리는 흔히,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을 나는 ‘마음을 읽는다’고 부른다.

말이 오가지 않아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의 걸음이 평소보다 느리다는 것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것을. 손끝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그건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이었고, 내가 한동안 묻어두었던 감정의 촉이 다시 살아났다는 증거였다.

마음을 읽는다는 건, 상대의 생각을 꿰뚫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훨씬 조용하고, 섬세하고, 감각적인 일이다. 나무 사이로 흘러드는 빛을 보는 것처럼, 어깨에 내려앉은 바람을 느끼는 것처럼. 차가운 커피잔을 쥔 손에서 전해지는 떨림을 가만히 받아들이는 일. 침묵이라는 이름의 언어를 해독하는 일이다.

나는 한동안, 마음을 읽는 법을 잊고 살았다. 아니, 애써 외면하며 살았다. 타인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면 끝내 자신이 무너진다는 것을 알게 된 뒤였다. 그래서 조심했다. 모르는 척했다. 바보인 척 웃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난 후, 나는 다시 마음을 읽게 되었다. 아니, 읽고 싶어졌다. 처음엔 불안정한 감정의 파동이 느껴졌다. 말없이 쌓아둔 피로, 오래 눌러둔 슬픔, 말끝마다 삐져나오는 쓸쓸함.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아주 조심스럽게 감추고 있었지만, 그 감정들은 조용한 틈을 타 꾸준히 새어 나왔다. 나는 그 틈을 외면할 수 없었다.

마음을 읽는다는 건, 결국 내 마음도 함께 열리는 일이다. 타인의 고요함 속에 나의 흔들림이 비친다. 그래서인지 마음을 읽는 순간은 항상 쓸쓸하면서도 따뜻했다. 누군가의 무너진 마음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고, 그 무게를 함께 나누는 기분이었다.

어느 여름 저녁, 우리는 공원을 걸었다. 붉게 물든 하늘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그녀의 실루엣이 있었다. 그녀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걷다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누군가 내 마음을 좀 알아줬으면 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어떤 응답도 필요 없는 고백이었다. 말이 짧을수록 진심은 또렷했다. 그녀는 더 이상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나의 눈빛과 발걸음에서 무언가를 읽어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예민한 촉을 꺼냈다. 누군가의 말투, 표정, 눈동자, 심지어 타이핑 속도까지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그것은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마음을 읽는 일은 늘 위험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다는 건, 그 사람의 삶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그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날들이 있다. 그런 날에는, 말 대신 그 사람의 고요함을 귀 기울여야 한다. 그 고요함 안에 수많은 말들이 숨어 있으니까.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왜 어떤 사람들은 쉽게 웃고, 어떤 사람들은 침묵으로 대답하는지. 왜 어떤 말은 겉보기에 아무렇지도 않지만 마음을 찌르고, 어떤 침묵은 오히려 더 깊은 위로가 되는지.

어쩌면 사랑은,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저 ‘알아주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용기가 되기도 하니까. 꼭 옳은 해석이 아니어도 괜찮다. 누군가 나의 마음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따뜻한 사랑의 표현이다.

마음을 읽는다는 건, 결국 나도 누군가에게 읽히는 것을 허락하는 일이다. 내 마음의 문을 조금은 열어두는 일. 무장하지 않은 채, 감정을 건네는 일. 그래서 더욱 두렵고, 그래서 더욱 소중한 일.

그녀는 내게, 마음을 읽는 법을 다시 가르쳐준 사람이었다. 나는 여전히 서툴고 실수도 많지만, 이제는 안다. 누군가의 조용한 한숨, 의미 없는 말반복, 괜히 내게 묻는 질문 안에 얼마나 많은 마음이 담겨 있는지를.

마음은 결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그 마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귀 기울이고, 시선 머물며, 손끝을 머문다. 그것이 마음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천천히 읽어내고 싶다. 틀릴지언정 진심으로. 어긋날지언정 따뜻하게. 그 마음에 오래 머물고, 흔적처럼 남고 싶다. 마치, 그 사람이 언젠가 “나의 마음을 기억해 준 사람”으로 내 이름을 불러줄 수 있도록.

그리고 언젠가, 나의 마음 역시 누군가에게 그렇게 읽히기를 바란다. 조용히, 다정하게, 말없이도 닿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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