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없이 흘러가지 않기 위해, 나를 다시 호명하는 일
막스 리히터 – "The Departure" (from The Leftovers OST)
“네 주제를 알라.”
한때는 그 말이 꽤 거칠게 들렸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얕잡아보며 던지는 냉소 같았고,
내 가능성의 스펙트럼에 선을 긋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그 말은 다르게 들려야 했다.
그건 나에게 스스로 묻는 물음이어야 했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내가 쓰는 모든 문장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또한 한 인간이기도 하다.
그 두 정체성은 하루에도 몇 번씩 충돌했고,
삶의 겹 위에서 흔들리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수많은 흔들림 끝에 나는 조금씩 깨닫는다.
사람이 자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선
‘자신의 주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남이 정해준 목적과 형식에 자신을 끼워 맞추며 살아가는가.
누가 보기에 멋진 목표,
평균적인 행복,
불문율처럼 내려온 타인의 기준.
그 안에서 나는 얼마나 자주,
진짜 나의 문장을 지우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주제를 안다는 것은
목소리를 안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말하고,
무엇을 위해 멈추는지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아무 말이나 잘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자기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후자가 되고 싶다.
언젠가부터 나에게는 ‘서사’가 필요했다.
감정의 뒷배경,
말의 구조,
행동의 맥락.
삶을 의미 있게 살고 싶다는 말은 결국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는 갈망이었고,
그건 결국
**“나의 주제는 무엇인가?”**를 묻는 일이었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자주 멈췄다.
답을 못 해서가 아니다.
너무 많은 답이 동시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이기도 하고,
엄마이기도 하고,
딸이기도 하고,
한때는 연인이었고,
지금은 홀로 선 개인이다.
그 많은 이름들 중,
어떤 것이 진짜 나인가.
그중 무엇이 나의 ‘주제’인가.
그럴 때마다 나는
가장 말 없는 공간으로 걸어 들어갔다.
음악을 틀고,
하얀 종이를 열어두고,
세상이 아닌 나 자신과 마주 앉는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어떤 감정과 이야기를 살고 있는가?”
그게 내 주제다.
타인의 평가나 기대가 아니라,
내가 지금 가장 간절하게 다루고 싶은 이야기.
그것이 바로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주제를 안다’는 건,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용히, 확실히
스스로에게 책임지는 문장을 쓰는 일이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살아갈 것이며,
나의 리듬으로 문장을 이어갈 것이다.
그 주제를 알고 있는 한,
나는 세상의 속도나 방향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주제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건 계속해서 쓰이고, 다듬어지고, 발견되는 것이다.
어제의 나는
상실이 나의 주제라고 생각했지만,
오늘의 나는
회복이 주제라고 믿는다.
내일은 또 다를 것이다.
사랑, 혹은 기억, 혹은 용서.
그 변화 속에서도 중요한 건
나는 내가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는 사람인지
늘 다시 묻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내게
“네가 쓰는 글들은 어떤 글이야?”라고 물으면
나는 단정 짓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는 지금 내가 겪는 감정을
가능한 가장 솔직한 언어로 옮기려는 중이에요.”
“그게 내 주제입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지금의 당신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