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장| 아니, 그게 아니라요

책임은 끝까지 밀어내고, 말만 앞세우는 사람들에 대하여 --- “아

by Helia

추천곡 막스 리히터 – “The Tartu Piano”

“아니, 그게 아니라요…”

누군가 이 말을 꺼내는 순간, 나는 얼핏 알 수 있다.
아, 이건 해명이 아니라 회피겠구나.
이건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든 나만 빠져나가겠다는 계산이겠구나.

사과처럼 시작되는 그 말은
어느새 책임을 비켜가는 가벼운 방패막이가 된다.

이 말을 듣고 있자면
그 사람의 말보다 숨기고 있는 마음이 먼저 보인다.
겉으론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라고 말하지만,
속으론 “이 정도 말하면 내 잘못은 줄어들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그 사람들이 진심으로 미안한 게 아니라는 것을.

어떤 사람은 잘못을 저질러도
끝까지 인정을 하지 않는다.
사실이 드러나도, 정황이 명백해도,
“내가 그런 의도로 한 게 아니라서…”라는 말로
모든 책임을 ‘오해’의 영역으로 돌려버린다.

어떤 사람은 사과를 하면서도
그 사과 뒤에 긴 변명을 단다.
“그날 내가 기분이 안 좋아서…”
“사실 나도 그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어.”
“다들 그럴 줄 몰랐잖아.”
“그 사람이 먼저 그렇게 나왔잖아.”

사과는 그 순간부터 변명으로 오염되고,
책임은 다시 누군가의 몫으로 전가된다.

그리고 그들이 자주 꺼내는 말,
바로 이것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문득
내가 얼마나 많이 그런 태도에 상처받았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명백한 잘못이 있었지만
상대는 그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나는 상처받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감정을 위로해줘야 했고,
내가 너무 예민한 사람처럼 느껴져야만 했다.

책임은 내게로,
상황은 그 사람에게 유리하게,
감정의 무게는 온통 나에게 쏟아졌다.

그러다 보니,
상대의 **“아니, 그게 아니라요”**는
나의 **“그럼 그건 뭐였는데요?”**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 질문에 명확히 대답해 주는 사람은 드물다.

그들은 대답을 피해 간다.
오히려 내가 너무 따지듯 보인다고,
지나간 일인데 왜 이렇게 집요하냐고 묻는다.

결국 피해자는 또 한 번 침묵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그 말이 떠오른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진심처럼 들리지 않는
가장 흔한 책임 회피의 서두.

사과는 단순한 ‘미안합니다’라는 말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과는 책임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진짜 책임감은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걸 반복하는 데 있지 않고,
‘그렇게 받아들여졌다면 내가 잘못한 거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니, 그게 아니라요”**라는 말로
모든 상황을 얼버무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말한다.
“상황이 그랬어.”
“난 그냥 휘말린 거야.”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나 원래 그런 사람 아냐.”

그 말들 뒤에는 늘
진짜 주체는 사라지고,
사건과 타인, 그리고 운이 남는다.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말하는 ‘그게 아니었던’ 것은 대체 무엇이었습니까?”
당신이 말하는 ‘의도’란 정확히 어떤 것이었으며,
그 의도와 결과 사이에 생긴 균열은 누구의 몫이었습니까?

의도는 당신의 것이지만,
상처는 나의 몫이었습니다.

당신은 해명하고 사라졌고,
나는 해석하고 남았습니다.

세상엔
입으로는 사과하면서
몸으로는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겉으로는 고개를 숙이면서도
속으로는 “이걸로 끝났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는 점점
그런 ‘가짜 사과’에 무뎌지고,
‘책임 없는 설명’에 익숙해진다.

하지만 익숙해진다고 해서
그게 옳아지는 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사과 뒤에 남은 말의 무게를 기억하고 있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그 말로 시작된 수많은 변명들.

그 말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이
얼마나 자주 ‘예민한 사람’으로 몰렸는지,
얼마나 자주 ‘상대의 감정까지 배려해야 했는지’,
그리고 결국 얼마나 많이
스스로 침묵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나는 이제 그런 말을 경계한다.
그리고 내 입에서도 그 말이 튀어나오려 할 때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혹시 지금, 네가 책임을 피하고 있지는 않니?”

진짜 사과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과에는
변명도, 회피도, 남 탓도 없다.

오직
“내가 그랬다”라는 한 문장만이
진심으로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