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장| 어쩔 수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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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 피아노 소나타 D.960 2악장(Andante sostenuto)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오래된 주문 같다.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를 때, 사람들은 이 네 글자를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달랜다. 그러나 그 속엔 체념만 있는 건 아니다. 바람에 밀려 흘러가는 연처럼, 잠시 손을 놓아야만 하는 순간에 우리는 이 말을 꺼내든다.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끝내 붙들려다 손마디가 부러지느니, 차라리 가볍게 흘려보내려는 선택.

나는 자라면서 수없이 이 말을 배웠다. 어린 시절, 부모의 다툼을 막을 수 없던 순간에도, 원치 않는 전학 앞에서도, 성적표의 숫자들이 내 바람을 배신할 때도. 입술을 깨물다가도 끝내 내뱉은 건 늘 “어쩔 수 없지”였다.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엔 수많은 감정이 겹겹이 깔려 있었다. 억울함, 분노, 슬픔, 그리고 희미한 위안.

봄비가 내리던 날, 나는 만개한 벚꽃길을 걸었다. 바람 한 번에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꽃잎들을 보며 사람들은 탄식을 흘렸지만, 나는 그저 조용히 웃었다. 꽃이 져야 열매가 맺히는 법. 그 이치를 안다고 해서 덜 아쉬운 건 아니지만, 피어남이 곧 지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구나.” 그 말은 꽃잎의 죽음을 애도하는 대신, 계절의 순환을 끌어안는 방식이었다.

사랑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다. 끝내 붙잡을 수 없는 사람을 향해 내밀었던 손길, 이미 식어버린 마음 위에 얹혀 있던 미련은, 어느 날 갑자기 한 마디로 정리됐다. “어쩔 수 없지.” 그 말 뒤에는 아직 남아 있던 눈물의 온기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그리움이 길게 꼬리를 물고 있었다. 이별은 결국 그렇게 찾아왔다. 마치 계절이 바뀌듯, 방 안에 스며드는 공기의 결이 변하듯. 그리고 나는 뒤늦게 알았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시간 앞에서 인간은 언제나 무력하다. 시곗바늘은 가차 없이 앞으로만 나아가고, 뒤돌아가는 법이 없다. 지나간 날에 두고 온 후회와 미련은 강물 위에 띄운 종이배처럼 떠내려간다. 우리는 간혹 그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어 몸부림치지만, 발끝에 감긴 파도는 차갑게 우리를 밀어낸다. 결국 남는 건 ‘어쩔 수 없음’이라는 허망한 고백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백이야말로 사람을 다시 앞으로 걷게 만든다. 돌이킬 수 없음을 인정한 순간, 비로소 남은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이 방패이자 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마음을 지켜내는 방패처럼 쓰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열망을 베어내는 칼날이 되기도 한다. 부당한 일조차 ‘어쩔 수 없다’며 눈감는 순간, 세상은 조금씩 무너진다. 약자의 신음이 외면되고, 불의가 관성처럼 굳어진다. 그럴 때 이 말은 더 이상 위로가 아니라 변명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모든 자리에 이 말을 허락하지는 말자고. 부당한 권력, 잔인한 차별, 뿌리 깊은 편견 앞에서는 결코 꺼내지 말자고. ‘어쩔 수 없는’이라는 말은 맞서 싸운 끝에, 더는 방법이 없을 때 마지막에 꺼내야 할 언어다. 그저 편리한 도피처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살다 보면 정말이지 어찌할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예고 없이 닥친 병, 예기치 못한 이별, 끝내 오지 않는 연락, 이미 떠나간 계절. 그런 순간에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는 건 체념이 아니라, 삶을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호흡이다. 뜨겁게 끓던 마음을 식히고, 손아귀에 남은 모래 한 줌을 바라보게 만드는 힘.

밤은 누구도 막지 못한다. 그러나 어둠이 짙어질수록 새벽은 가까워진다. 어쩔 수 없는 어둠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동시에 새로운 빛을 준비한다. 나는 매번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래, 어쩔 수 없지.”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반드시 이어서 속삭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