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장|놓았거나, 놓쳤거나

붙잡을 수 없었던 것들, 흘려보낸 것들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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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 K.467, 2악장 Andante


누구나 한 번쯤은 붙잡지 못해 후회한 순간이 있다. 어린 시절 문방구 앞에서 산 풍선을 하늘로 흘려보냈던 기억이 그렇다. 바람이 스치듯 지나가자 손아귀가 허술해졌고, 풍선은 구름 쪽으로 떠올랐다. 나는 울음을 터뜨리며 허공에 손을 뻗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때 처음 배운 건 ‘놓친다’는 감각이었다. 사소한 일이었음에도 가슴 한구석이 텅 비는 경험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각은 다른 얼굴로 다시 찾아왔다. 손에서 빠져나간 것은 풍선만이 아니었다. 떠나간 사람, 놓쳐버린 기회, 망설이다 흘려보낸 시간, 말하지 못한 고백까지. 살아온 길목마다 나는 놓치며 배워왔다.

놓는다는 건 조금 다르다. 놓침이 우연한 상실이라면, 놓음은 의지의 결단이다. 손에서 내려놓는다는 건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는 일이다. 나는 몇 번이나 그 경계 앞에 섰다. 잡고 있으면 상처가 깊어지는 관계, 애써 이어가려 할수록 무너지는 꿈, 돌처럼 무겁게 가슴을 누르던 기대. 붙들수록 나를 갉아먹는 것들을 결국 놓아야 했다. 처음엔 두려웠다. 놓으면 빈손이 될까 봐, 공허만 남을까 봐. 그러나 막상 내려놓자 비워진 손바닥이 새로운 시작의 공간이 되어 있었다. 움켜쥔 돌멩이를 놓아야 꽃 한 송이를 담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종종 묻는다. 나는 과연 놓은 걸까, 놓쳐버린 걸까. 스스로 관계를 정리했다고 믿었지만 뒤돌아보면 붙잡을 힘이 없었던 건 아닐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놓쳤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것이 내 선택이었음을 깨닫는 순간도 있었다. 두 단어는 서로를 비춘다. 놓침이 있었기에 놓음을 배웠고, 놓음을 통해 놓침의 아픔을 견딜 수 있었다. 인생은 결국 이 둘의 교차로 이어진다.

놓침은 늘 더 큰 미련을 남긴다. 당장 떠나야 했는데 망설이며 포기했던 여행, 끝내 전하지 못하고 삼켜버린 말, 두려움에 뒤로 물러서며 잃어버린 기회들. 그 순간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때 그랬더라면 하는 가정법은 소용없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이 있었기에 오늘만큼은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놓침의 흔적은 후회지만, 동시에 새로운 용기의 밑거름이 된다.

한편 놓음은 자유를 가르쳐주었다. 끝내 붙들려했던 사람을 놓았을 때,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되었다. 기대를 내려놓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잃었다고 생각한 순간이 사실은 나를 지켜낸 시간이기도 했다. 놓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옭아매인 채 숨 막혀했을 것이다. 놓음이란 결국 스스로를 살리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놓음과 놓침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어느 쪽이든 마음에는 상처의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바람 부는 날 하늘로 사라진 연, 망설이다 놓쳐버린 기차의 뒷모습, 끝내 전하지 못한 말 한마디. 그 잔상들은 여전히 내 안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그 기억들이 있었기에 나는 더 이상 붙잡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놓칠까 두려운 순간엔 조금 더 용기를 내게 되었고, 놓아야 할 것 앞에서는 더 단호해졌다.

비워진 손은 언제나 다시 채워졌다. 떠나간 사람의 빈자리에 다른 인연이 찾아왔고, 놓친 꿈 대신 새로운 길이 열렸다. 빈손은 결핍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놓았건 놓쳤건 결국 내 안에 남는 건 그때의 경험과 배움이었다. 손아귀에서 흘러간 것들이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놓는 것도, 놓치는 것도 다 삶의 일부라는 걸 안다.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통해 더 깊어지고 단단해졌는가, 그뿐이다. 결국 인생은 정답을 찾는 시험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덧대고 지워가는 미완의 노트다. 때로는 지워진 흔적이 새로운 문장을 써 내려가는 바탕이 된다.

나는 오늘도 묻는다. 내가 놓은 것일까, 놓쳐버린 것일까.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답한다. 놓았건, 놓쳤건, 그 모든 순간이 나를 살아 있게 했다. 흐르는 강물처럼 손아귀를 벗어난 것들이 내 강줄기에 합쳐져 물결이 되고, 그 물결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 그러니 더 이상 후회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이 놓은 것도, 놓쳐버린 것도 결국은 당신을 이루는 힘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