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장|이번 생은 글렀네

체념 끝에서 시작되는 또 다른 자유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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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바버 – 「Adagio for Strings」


이번 생은 글렀네. 이 말만큼 솔직한 자기 고백이 또 있을까. 입술 사이로 무심히 흘러나오지만, 사실은 수많은 무너짐과 버팀 끝에 터져 나오는 체념의 언어다. 나는 이 문장을 여러 번 되뇌었다. 시험에서 낙방했을 때, 손에 쥔 연애가 산산이 부서졌을 때, 회사 책상 위 사직서를 올려놓던 순간에도. 말끝마다 달라붙는 씁쓸한 웃음은 “다 틀렸다”는 선언이면서도, 역설적으로 “그래도 버틴다”는 증거였다.

어느 해 겨울, 마지막 희망처럼 치른 시험에서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합격자 명단은 눈부신 흰 눈처럼 차갑게 반짝였고, 내 이름은 끝내 그 속에 없었다. 두꺼운 코트를 걸친 채 집으로 돌아와 라면을 끓였다. 국물이 끓어오르는 소리를 듣다가도 “이번 생은 글렀네”라는 말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말이 나오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마치 끝을 선언했으니 더 이상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사람들은 늘 말한다. “아직 늦지 않았어. 다시 도전하면 돼.” 하지만 그 말은 때때로 칼처럼 느껴졌다. 다시 도전할 힘이 바닥난 사람에게는, 위로가 아니라 부담이 된다. 출발선을 또다시 바라보아야 한다는 압박. 그래서 나는 도망치듯 중얼거렸다. 이번 생은 글렀네. 그 말은 패배의 도장이 아니라, 지친 어깨에 얹는 따뜻한 담요였다.

사랑에서도 그 말을 했다. 오래도록 믿었던 사람이 떠나던 날, 흩날리던 은행잎이 발밑에 차곡차곡 쌓였다. 눈물이 나오지 않아 더 서러웠다. 집에 돌아와 휴대폰을 꺼내 들었지만, 위로의 메시지를 보낼 이조차 없었다. 그때 나는 거울 앞에 앉아 웃었다. “그래, 이번 생은 글렀네.” 그 웃음은 파괴적이었지만, 동시에 생존의 주문 같았다. 아무렇지 않게 말해야 덜 아픈 것처럼.

우리는 모두 달리기를 강요당한다. 끊임없이 성취하고, 더 나은 무언가를 이루라고. 그러나 모든 사람이 결승선을 통과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반쯤 달리다 멈추고, 누군가는 중간에 길을 잃는다. 인생은 단 한 번 뿐이라 말하지만, 그 단 한 번 안에서 반드시 모든 걸 완주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래서 나는 체념 대신 농담처럼 말한다. 이번 생은 글렀네.

이 말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다시 살아가게 하는 비밀스러운 힘이다. “다 망했다”라고 선언하면서도 다음 날 눈을 뜨는 힘, 밥을 먹고 길을 걷는 힘. 이번 생은 글렀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살아내고 있다는 역설.

때로는 이 말이 주는 자유에 놀란다. 더 이상 기대하지 않으니, 실패가 두렵지 않다. 다 내려놓았으니, 이제는 하고 싶은 걸 해도 된다. 나는 언젠가 작은 가방 하나 메고 낯선 도시로 떠난 적이 있다. 주머니 사정은 넉넉지 않았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어차피 이번 생은 글렀으니, 어디든 괜찮다.” 그날 찍은 흐릿한 사진들은 지금도 내 삶의 작은 증거다. 체념 끝에서 찾아온 용기였다.

물론 이런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왜 그렇게 비관적으로 살아?”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말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언어라는 것을. 완벽하지 못한 존재의 고백, 실패와 단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진실. 신이 아닌 우리에게 이 문장은 필연적이다.

이번 생은 글렀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나는 다시 살아간다. 다 끝났다고 중얼거리면서도, 그 말이 나를 또 하루 버티게 한다. 체념은 때때로 해방이고, 포기는 때로는 생존이다.

결국 중요한 건 말의 뉘앙스다. 패배의 깃발처럼 휘날리는 게 아니라, 생존의 주문처럼 읊조릴 때, 이 말은 새로운 힘을 준다. 웃으면서 말할수록 좋다. “이번 생은 글렀네, 그래도 난 여전히 살아간다.”

어쩌면 진짜 글러버린 건 이번 생이 아니라, 끝까지 살아보려는 용기를 잃어버린 마음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체념과 희망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또다시 하루를 산다. 이번 생은 글렀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