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녀와 한 남자의 기적 같은 순간
영화 <노팅 힐>을 처음 본 건, 이미 개봉하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1999년 작품이라는 걸 감안하면, 나는 극장에서 그 시대의 공기를 느끼지 못한 채 뒤늦게 따라간 관객이었다. 그런데도 놀라운 건, 수십 년이 흘러도 이 영화가 낡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지금 다시 보니 더 아련하고 특별하게 다가온다. 휴 그랜트가 연기한 ‘윌리엄 태커’의 어딘지 모르게 우물쭈물하고 어색한 미소, 줄리아 로버츠가 보여준 세계적인 배우의 화려함과 동시에 인간적인 고독, 그 대비가 만들어내는 긴장과 매력이 여전히 생생하다. 세월이 흘러도 사랑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이 영화는 증명하듯 보여준다.
나는 늘 로맨틱 코미디를 볼 때 두 가지 태도를 오간다. 한편으로는 "저건 영화니까 가능한 일이지"라는 냉소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 저런 기적 같은 순간이 인생에 한 번쯤은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희망이 고개를 든다. <노팅 힐>은 그 두 감정 사이에서 나를 오랫동안 흔들리게 했다. 세계적인 슈퍼스타와 평범한 서점 주인의 사랑. 이 설정 자체가 동화처럼 비현실적이다. 현실에서라면 파파라치에게 쫓기고, 언론의 폭로가 난무하며, 두 사람이 온전히 사랑만을 지켜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영화는 우리를 설득한다. 일상 속의 기적, 우연히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 때문에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을 믿고 싶게 만든다. 그게 <노팅 힐>의 가장 큰 힘이다.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 ‘안나 스콧’은 당시 할리우드에서 실제로 줄리아 로버츠 자신이 지니고 있던 위상을 그대로 투영한 듯하다. 스크린 속 안나는 유명세로 인해 늘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사생활은 철저히 파헤쳐지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지만 기대지 못하는 고독에 잠겨 있다. 반면 윌리엄은 영국 런던 노팅 힐의 작은 동네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평범하고 따분할 정도의 남자다. 그러나 바로 그 평범함이 안나에게는 해방감을 준다. 늘 번쩍이는 조명 속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햇살이 스며드는 작은 골목길과 소박한 집밥 같은 일상으로 들어왔을 때 느끼는 안도. 나는 이 장면들을 보며 오히려 안나보다 윌리엄이 부럽게 느껴졌다. 어떤 특별한 재능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없지만, 누군가에게 ‘안전한 세계’가 되어줄 수 있는 존재라니.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가.
영화 속 명장면을 꼽으라면 역시 안나가 윌리엄의 집을 찾아와 말하는 순간일 것이다. “I’m just a girl, standing in front of a boy, asking him to love her.” 이 대사는 시간이 지나도 결코 촌스럽지 않다. 오히려 단순하고 진솔해서 더욱 마음에 깊게 파고든다. 나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묘하게 울컥한다. 세계적인 배우, 수많은 스포트라이트와 돈, 명예를 지닌 여자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단지 한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고백을 하는 모습. 그것은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원초적으로 바라는 것이 아닐까. “그 어떤 조건이나 배경도 중요하지 않아. 나는 그저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다.” 이 마음만큼 절실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또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대사를 들을 때 조금의 의문도 함께 느꼈다. 정말 저런 고백이 가능할까? 세상의 무게를 한 몸에 짊어진 사람이 순수한 소녀처럼 한 남자 앞에 서서 “나를 사랑해 달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게 영화의 힘이다. 영화는 현실이 아니라, 현실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순간을 잠시나마 가능하게 보여주며 우리를 위로한다. <노팅 힐>은 그 점에서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을 보여준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 관객이 ‘나도 저런 사랑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다시 떠올릴 때마다 가장 먼저 스치는 건 노팅 힐이라는 동네의 풍경이다. 런던의 작은 골목, 컬러풀한 문들, 일요일 벼룩시장의 북적거림, 그리고 윌리엄의 서점 같은 공간. 사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까지 노팅 힐이라는 지명을 몰랐다. 영화가 끝난 뒤 지도에서 찾아보고,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고 다짐했다. 몇 해 전 런던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노팅 힐에는 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이곳이 낭만의 상징처럼 남아 있다. 언젠가 그 거리를 걷다 보면,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우연히 인생을 바꿀 만한 만남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상상을 하게 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불가능을 꿈꾸게 만드는 장소. 그래서 노팅 힐은 단순히 지명이 아니라 내게 하나의 ‘판타지’가 되었다.
영화를 보며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주변 인물들의 존재다. 윌리엄의 친구들, 가족 같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유머와 따뜻함. 사실 이 영화가 단순히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만으로 채워졌다면 다소 밋밋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 인물들의 개성과 위트가 영화에 온기를 더한다. 특히 푸근하고 조금은 엉뚱한 스파이크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만약 현실에서라면 조금 민폐스러운 룸메이트겠지만, 영화에서는 그 과장된 캐릭터 덕분에 긴장이 풀리고 웃음이 터진다.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에서 웃음을 놓치지 않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노팅 힐>은 그 균형을 영리하게 잡아냈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해피엔딩이면서도 마냥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점이다. 윌리엄과 안나가 결국 다시 만나 사랑을 이어가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상처와 오해, 불안을 겪었는지를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즉, 결말은 달콤하지만 그 속에는 현실적인 쓴맛도 녹아 있다. 그래서 더 설득력 있다. 사랑은 늘 아름답지만은 않다. 때로는 불안과 의심, 상처와 좌절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감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사랑이 된다. <노팅 힐>은 바로 그 진실을, 잔잔한 유머와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냈다.
지금 다시 <노팅 힐>을 떠올리면, 나는 단순히 로맨스 영화의 감동을 넘어 내 삶의 어떤 시기를 함께 환기한다. 20대 초반에 처음 봤을 때는, 영화 속 사랑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저건 나랑은 상관없는 세상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사랑과 이별을 겪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일의 무게를 조금씩 배워가면서 다시 보니, 영화의 의미가 달라졌다. 사랑은 결국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 겉으로는 화려해도, 속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면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 안 나와 윌리엄의 이야기는 이제 내게 그런 교훈으로 다가온다.
영화 <노팅 힐>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이다. 그러나 단순히 고전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누군가의 인생 한 장면을 바꿔놓을 만큼 강렬한 ‘감정의 기억’을 남긴다. 내게도 그렇다. 때로는 냉소하고, 때로는 눈물겹게 몰입하고, 또 때로는 부러워하며 이 영화를 반복해서 떠올린다. 어쩌면 내가 여전히 <노팅 힐>을 사랑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내게 불가능한 꿈을 허락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기적 같은 만남, 누군가가 내 서점 문을 열고 들어와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을지도 모른다는 그 달콤한 기대.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내 인생의 소중한 영화로 자리 잡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