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도의 기다림, 마음이 익어가는 시간
추천 클래식
Max Richter – “On The Nature of Daylight (Entropy Variation)”
김말이, 감자튀김 먹을 때나 쓰이던 에어프라이어를 이렇게 쓰게 될 줄 몰랐더이다. 이거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치킨만 데우던 기계가 오늘은 나의 첫 케이크를 굽고 있다. 인생이란 게 참 묘하다. 늘 하던 일에 익숙해 있다가도, 어느 날 문득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일 때가 있다. 평범했던 것들이 새로운 의미를 얻는 순간, 삶은 조금은 달콤해진다.
처음 바스크 치즈 케이크를 본 순간이 그랬다. 카페 진열장 속에 놓인 한 조각의 케이크. 겉은 탄 듯 검게 그을려 있었고, 속은 부드럽게 꺼져 있었다. 완벽하지 않은 모양이 이상하게 예뻤다. 그을림조차도 그 케이크의 일부처럼 자연스러웠다. 실패 같지만 실패가 아닌, 상처 같지만 아름다운 흔적. 그 모습이 오래 남았다.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나도 만들어볼까.’ 오븐은 없었지만, 에어프라이어는 있었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묘하게 진지했다. 어떤 일은 그저 시작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달래준다. 완벽을 위한 게 아니라, 단지 지금의 나를 위로하기 위한 시도.
크림치즈를 실온에 두었다. 딱딱하던 덩어리가 서서히 풀리며 부드러워졌다. 마음도 그랬다. 꽁꽁 얼어붙은 감정이 조금씩 녹는 느낌이었다. 설탕을 넣고 천천히 섞었다. 달걀을 하나씩 깨 넣고, 생크림을 부었다. 손목의 리듬이 점점 일정해졌다. 거품기가 반죽을 휘저을 때마다 내 안의 잡음이 사라졌다. 인생도 이럴까. 너무 세게 저으면 금방 질어지고, 너무 느리면 덩어리가 남는다. 결국은 자신에게 맞는 속도를 찾아야 하는 일.
전분을 체에 걸러 넣자 하얀 가루가 공기 중에 가볍게 흩날렸다. 작은 먼지들이 반짝이며 떨어졌다. 흩어지는 그 모습이 예뻤다. 인생의 실수도 저렇게 흩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 사라지는 대신 스며들어, 결국 하나의 맛이 되는 식으로.
포일을 구겨 에어프라이어 전용 틀에 끼워 넣었다. 모양이 엉성했지만 오히려 그게 바스크 케이크에 어울렸다. 반죽을 부으며 손끝으로 표면을 살짝 쓸었다. “잘 부탁해.” 케이크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사실은 내게 하는 인사였다.
예열을 마친 에어프라이어 안으로 반죽을 넣었다. 180도, 25분.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방 안에 잔잔히 울렸다. 뜨거운 바람이 돌며 케이크를 감쌌다. 불빛이 반죽 위를 어루만지듯 스며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표면이 갈색으로 변했고, 가장자리가 서서히 올라왔다. 달콤한 냄새가 공기를 타고 퍼졌다. 김말이 튀기던 냄새 대신, 따뜻한 구움 향이 방 안을 채웠다. 그 향 하나만으로도 오늘이 달라졌다.
타이머가 끝나기 전 몇 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기다림은 늘 그렇다. 곧 완성될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자꾸 앞질러 달린다. 나는 그 마음을 억누르며 조용히 기다렸다. 기다림에도 온도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180도였을 것이다. 뜨겁지만 견딜 수 있는 정도.
삐 소리가 울리고, 문을 열었다. 겉은 짙게 타 있었고, 중심은 살짝 흔들렸다. 그 흔들림이 좋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오히려 그 불안정함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케이크를 꺼내 식힘망 위에 올려두었다. 열기가 천천히 빠져나갔다. 그 온기가 손끝에 닿았다. 마치 내 하루가 식어가는 느낌이었다.
식히는 동안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표면이 서서히 가라앉고, 향이 방 안을 돌았다. 눈앞에 있는 건 그저 케이크 한 판이지만, 마음속에서는 다른 무언가가 익어가고 있었다. 실패와 후회와 다짐이 한데 섞여 새로운 결이 만들어지는 시간. 인생도 어쩌면 이렇게 식히고 굳혀야 비로소 모양을 갖추는 걸지도 모른다.
냉장고에 넣어 식히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엄마가 보면 뭐라고 할까.’ 아마도 “이게 케이크야? 탔잖아.” 하며 웃겠지. 하지만 아직 엄마는 안 먹어봤거든. 그래서 괜찮았다. 그 말 뒤에 따라올 한마디가 이미 들리는 듯했다. “근데 이상하게 맛있네.” 그 웃음 섞인 말이 벌써부터 기다려졌다. 그 한마디면 충분히 보상받을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네일아트를 배울 게 아니라 제과제빵을 배웠을 텐데. 반짝이는 손톱보다 에어프라이어 불빛 아래에서 마음을 굽는 법을 먼저 익혔을 텐데. 예쁜 손끝은 잠깐 반짝이지만, 구워진 향은 오래 남는다. 그 향이 지금 내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식은 케이크를 한 조각 잘랐다. 포크 끝이 부드럽게 들어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입안에 넣자 탄 향과 달콤함이 동시에 퍼졌다. 너무 달지 않아서 좋았다. 살짝 남은 쌉싸래함이 오히려 진했다. 인생의 맛이 꼭 이런 게 아닐까. 조금 타야 향이 나고, 기다림이 있어야 달콤하다.
며칠 후에도 이 케이크를 다시 만들 것 같다. 이번엔 덜 굽거나 조금 더 태우거나. 결과는 매번 다를 테지만 상관없다. 완벽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건 굽는 동안의 마음이다. 팬이 도는 소리, 향이 퍼지는 순간, 기다림의 시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 있다고 느껴졌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구워지는 일이다. 타이머를 맞추고, 기다림을 견디고, 타버린 자국을 향기로 바꾸는 일. 너무 뜨거우면 타고, 너무 식으면 굳는다. 그 미묘한 온도를 찾아야 한다. 조금 덜 익은 인생,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하루를 버틴다.
케이크가 완전히 식은 뒤, 손끝으로 표면을 살짝 눌렀다. 단단한 껍질 아래 여전히 부드러움이 남아 있었다. 사람의 마음도 그랬으면 좋겠다. 상처로 굳지 않고, 불안으로 무너지지 않게. 겉은 단단하되 속은 따뜻하게 남는 사람. 그런 온도로 살고 싶다.
창문을 열자 달콤한 냄새가 바람에 섞여 나갔다. 저녁빛이 방 안을 비췄다. 에어프라이어의 불빛은 이미 꺼졌지만, 향은 여전히 남았다. 나는 그 앞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내일이면 엄마가 이 케이크를 보겠지. 그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누군가 인생의 레시피를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조금 타도 괜찮아요. 불완전함이 당신을 더 깊게 만들어줍니다.”
오늘도 나는 그 불빛 앞에서 나를 굽는다. 겉은 조금 타도, 속은 여전히 따뜻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