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장| 시행착오

넘어짐의 미학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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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한 번에 해내는 일을, 나는 꼭 두세 번씩 틀리고 나서야 배운다. 삶은 늘 내게 친절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불친절이 나를 자라게 했다. 넘어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나며 배우는 일.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성장의 방식이었다.

나는 오래도록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살았다. 틀림없이 해내야 했다. 남들보다 빨리, 더 정확하게. 하지만 세상은 내 속도에 맞춰 돌아가지 않았다. 정교하게 맞춰둔 계획은 늘 어딘가에서 삐걱거렸다. 면접장에서는 준비한 대답이 머릿속에서 흩어지고, 첫 출근 날엔 프린터 용지도 제대로 못 끼워 허둥댔다. 그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실패는 나를 꾸짖는 교사처럼 서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자주 작아졌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단지 배우는 중이었다.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 타인의 시선과 내 마음의 간극, 완벽과 현실의 온도 차를. 시행착오는 나를 부끄럽게 했지만, 동시에 길을 열어주었다. 틀린 길로 돌아가야 비로소 ‘맞는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요리를 처음 배웠을 때가 그랬다. 파스타를 만든다며 냄비에 물을 붓고, 소금과 올리브유를 넣는 순간까지는 그럴듯했다. 문제는 면이었다. 익히는 시간을 잘못 계산해 국물이 자작한 괴물이 완성되었다. 그걸 보고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다음엔 덜 삶으면 되겠네.” 그 한마디가 묘하게 가슴을 쳤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방향을 수정하라는 신호 같았다. 그날 이후 요리할 때마다 나는 ‘다음엔 덜, 혹은 더’라는 생각으로 움직였다. 시행착오는 그렇게, 나를 조금씩 성장시켰다.

사람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믿었던 친구에게 실망하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상처받으며, 나는 수없이 자신을 탓했다.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았다. 시행착오는 인간관계에서도 필수라는 걸. 상처가 없으면 다정함의 깊이를 모른다. 불편함이 없으면 경계의 필요를 알 수 없다. 실망이야말로 관계의 교과서다. 그것을 통과해야 진짜 ‘나에게 맞는 사람’을 알아본다.

삶은 늘 그런 식으로 나를 단련시켰다. 완벽한 타이밍은 존재하지 않았고, 실패는 늘 예고 없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상하게도,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깨진 조각처럼 흩어졌던 마음이 어느새 제자리를 찾아가고, 서툰 손끝이 익숙하게 움직이는 걸 느낄 때마다, 나는 알았다. 시행착오는 내 편이었다.

세상은 ‘성공한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대부분 시행착오 속에서 피어난다. 이름을 알리기 전의 무수한 실패들, 누군가에게 웃음을 보이기 전의 수많은 눈물들. 빛나는 결과는 언제나 그림자 같은 시행착오를 품고 있다. 꽃이 피기 전엔 반드시 흙 속을 견뎌야 하는 것처럼.

나는 언젠가 이런 말을 들었다. “시행착오란 인생의 실험실이다.” 그 말이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았다. 맞다, 인생은 실험이다. 우리는 매일 다른 비율로 자신을 섞는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대신, 조금은 용감해지는 약을 섞고, 후회를 덜어내는 물을 붓고, 다시 희망의 가루를 뿌리며 살아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오늘이 어제보다 조금 낫다면, 그건 이미 성공이다.

글을 쓸 때도 그렇다. 첫 문장은 늘 삐걱거린다.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너무 설명적이거나. 하지만 지우고 다시 쓰는 과정에서 문장이 단단해진다. 문장이 고쳐질 때마다 내 마음도 조금씩 교정된다. 글쓰기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잘못된 문장을 버려야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찾게 된다. 시행착오는 결국 진심을 가리키는 나침반이었다.

가끔은 과거의 나를 떠올린다. 무모하고, 겁 많고, 자주 울던 나. 그 시절엔 실패가 세상의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신호였다. 잘못 들어선 길 끝에서도 새로운 풍경은 피어난다. 아무리 돌아가도 결국 도착하게 되어 있다. 시행착오의 길 위에서 나는 수없이 멈췄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날엔 모든 게 잘 풀릴 때보다 실수투성이의 하루가 더 진짜 같다. 커피를 쏟고, 약속에 늦고, 말실수로 누군가의 눈빛이 식는 날. 그런 날들이 쌓여 나를 인간답게 만든다. 완벽한 날엔 배움이 없지만, 엉망인 날엔 깨달음이 있다. 그게 시행착오의 미학이다.

이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행착오가 없는 삶이 더 두렵다. 모든 게 매끄럽게 흘러간다는 건, 더 이상 배우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나는 여전히 자주 틀린다. 하지만 틀린 덕분에 새로운 길을 찾는다. 넘어져 본 사람만이 균형을 알고, 잃어본 사람만이 소중함을 안다. 시행착오야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문법이다.

가끔 누군가 내게 묻는다. “그렇게 실패가 많았는데, 후회는 안 해요?”
나는 웃으며 답한다. “후회는 잠깐, 배움은 평생이에요.”
실패를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받아들이면, 실패조차 나를 성장시키는 재료가 된다.

삶은 정답을 맞히는 시험지가 아니라, 오답을 통해 자신을 완성하는 노트다. 지우고, 다시 쓰고, 또 덧그리며 우리는 자기만의 문장을 만들어간다. 그 문장은 누가 대신 써줄 수도, 베껴올 수도 없다. 시행착오라는 이름의 잉크로만 완성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실수한다. 조금 틀리게, 조금 더 인간답게.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서럽지만, 그 모든 시행착오가 나를 어디로든 데려간다.
그리고 그 끝에서 늘 깨닫는다. 넘어짐은 실패가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예행연습이었다는 걸.

수없이 넘어졌지만, 그때마다 길이 생겼다.
시행착오의 끝엔 언제나, 변함없이 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