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부지런함과 번아웃 사이의 굴레
처음 번아웃이 왔을 때가 기억났다. 정확한 시기를 콕 집어서 말할 수 없지만 아마 아기를 낳고 15개월쯤이었을 거다. 그 알 수 없는 무기력함은 정말 겪어봐야 알 것이다. 아프지 않은데 아프고 힘들지 않은데 죽을 것처럼 힘들었다. 물론 나 말고 내 주변도 그랬거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나 때문에.
임신 과정에 너무도 흔하게 주변에서 그랬다. “뱃속에 있는 게 편해~”, “낳으면 다시 뱃속에 집어넣고 싶어 질걸?” 이건 충고의 말인지 악담을 퍼붓는 건지 모르겠는 그런 말들이었다. 희망적인 말들을 듣고 싶던 나에게 이런 현실적인 농담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고 그럴 때마다 희미한 미소만 지으며 넘어갔다. 그리고 난 아기를 낳고 나서 육아와 재택근무를 병행하며 정신없이 지내온 탓에 그 말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친정과 시댁에서 도움을 주실 수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누구의 도움 없이 남편과 둘이서 육아전투를 시작했다. 그 과정은 지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몸은 너무 힘든데 막상 정신은 또렷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낯설고 어려운 육아를 해내기 위해 짬이라도 나면 정보란 정보는 다 찾아보고 해 볼 수 있는 건 또 해가면서 극도로 긴장했던 탓이 아닌가 싶다. 일종의 각성상태..? 누가 알려주는 게 아니니까 오로지 혼자서 찾아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한테도 알려주어야 하니 부담이 컸다.
그래서일까 그 시기쯤 지인들은 어쩜 이리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지친 구석이 하나도 없어 보이냐며 말했고, 나는 마치 육아를 너무 ’ 편하게 잘‘하는 것처럼 보였었나 보다.
내 평생치 에너지를 그때 다 써버린 것도 모르고.
아기가 아무리 울어대도 그저 웃으면서 넘어가던 나였는데 어느샌가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지고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다.
평소 화를 낼 줄 몰라 오히려 부당함 당하기 일쑤인 내가 아기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기를 뱃속에 넣고 싶었고 자유로웠던 내 삶이 그리워졌다. 육아 우울증이었고 번아웃이었다.
그 당시엔 내 몸이 힘드니까, 아프니까 라는 말로 내 폭력적임을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다. 그렇게 점점 나는 게을러지고 작은 움직임도 힘들어졌다.
그런 어느 날 내가 변해가는 과정에서 아기가 혼자 뛰다가 책장에 부딪혀 크게 다친 일이 있었다. 하필 혼자 아기를 볼 때고 남편이 바로 와줄 수 없어서 처음으로 119를 불렀는데 손발이 덜덜덜 떨렸다. 너무 무서웠고 당황스럽고 머리가 하얘졌다. 그날 이후였을거다. 내 마음에 여유가 모두 소진된 게.
끊어질 듯 말 듯 한 줄처럼 간신히 부여잡은 멘털은 그때 끊어졌다. 짜증과 화냄은 더 심해졌고 그 부정적인 마음은 그대로 아기와 남편에게 향했다.
그리고 하루는 아기를 재우고 난 뒤 소파에 멍하니 누워 펑펑 울었다. 아기를 키우면서 신생아 때 처음 울어보고 난 후 두 번째 흘린 눈물이었다. 내가 고장 난 느낌이 들었다. 그때 내 감정을 메모장에 표현해 보았는데 온통 부정과 우울밖에 없었다. 한참을 울고 난 뒤에 내가 사는 지역 정신과를 찾아 예약을 했다.
번아웃은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이 점점 하나둘 뜯어지고 결국 실 한올이 버티고 버티다 끊어지는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갓생을 살기 위해 완벽한 육아를 하기 위해, 나는 너무 나 자신을 소모시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로 돌아가 똑같이 하라 하면 그 당시처럼 할 수 없었다. 그 시기를 후회는 안 하지만(아기에게 화낸 거 빼고) 그때 내가 좀 더 나를 돌아보고 쉼표를 중간중간 줬다면 어땠을까 싶다.
나를 돌아보기 위해 또 앞으로의 삶을 위해 퇴사를 결정하고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이제야 그때 내가 너무 무리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주변에서 대단하다고 칭찬해 줄 때 그게 갓생이 아니라 번아웃으로 가는 중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어봤어야 했다. 물론 갓생 사는 게 뿌듯하기도 하고 성취감도 있지만 그런 시간이 무기한 지나다 보면 어느 누구나 어느새 지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요즘 큰 질문이다. 퇴사와 아기의 등원으로 삶에 조금 여유가 생겼지만 번아웃을 한번 겪어본 나로선 조급해지지 않기로 했다. 뜨개 사업이든, 미용기술 배우는 것이든, 아님 이직이든, 육아와 집안일이든 천천히 해야지.
살짝 조바심이 들지만 나는 나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번아웃을 세게 한번 겪은 나는 이제 부지런함과 번아웃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해보려 한다.
차근차근 아주 작은 일부터 하나씩 해봐야지.
그래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