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알맹이 꽉꽉 채우기
솔직하게 고백한다.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건데 나는 "이것 하나 만큼은 내가 최고야"라고 주저없이 말할 수 있을 만한 특출난 재능, speciality가 없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 한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고 성적도 전체 평균에서는 상위권을 유지하는 편이었지만 1등을 해본 적은 없다. 꽤 오랫동안 해왔던 미술도 주변의 비전공자들에게 비해 나은 편이었지, 미술에 재능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번에 피사체의 형태를 정확하고 빠르게 잡는다든지, 오묘한 색감을 잘 사용한다든지, 또는 엄청난 창의력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할 아이디어를 빵빵 터트리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언어 능력도, 암기력도, 요리 재주까지, 기본 능력치는 나쁘지 않은데 그렇다고 완벽하지도 않다. 이렇게 어중간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 이유를 최근에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해보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다섯 살이 되면서 작곡을 시작했다는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처럼 본인도 주체할 수 없이 반짝이는 재능과 함께 태어나지 않은 이상, 어느 분야나 능력에 두각을 보이려면 자신의 시간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한다. 즉, 끝장을 보려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나의 경우,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하려고 이것저것 손대다 보니 하나에 집중하지 못했고 새롭고 흥미로운 무언가가 나타나면 지하철을 환승하듯 너무 쉽게 하고 있던 취미나 분야를 갈아타버렸다. 호기심이 많으면서 끈기까지 갖추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한순간 불같이 타오른 열정은 얼음처럼 금새 차가워지는 모양이다. '어느 정도 알았다' 혹은 '이 정도로 해본 걸로 족하다' 싶으면 또 다른 것을 할게 없나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나이가 전부는 아니라고는 하나 한국 나이로는 30대의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금, 슬쩍 고민이 된다. 지금이야 감사하게도 어렵다는 해외 취업에 성공한 직장인의 삶을 누리고 있으나 앞으로도 이렇게 얕은 지식과 능력으로 밥은 굶지않고 살 수 있을까. 아니, 앞으로 5년, 10년 후 나는 내가 자랑스러워 할 수 있을 만한 멋진 어른으로 성장해 있을까.
그들이 사는 세상
2000년대 초반, 지금은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과 공기관이 운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학생 대외활동이 막 시작되었던 시점, 내가 처음 시작했던 대외활동은 한 외국계 주류 회사의 파티 플래너였다. 홍대와 강남을 중심으로 자리잡았던 클럽 문화는 막 대학생이 된 20대 초반의 청춘들에게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 주었다. '잘 노는 20대'라면 음악이 괜찮은 클럽이 어딘지, 요즘 어떤 춤이 유행인지 망설임없이 척척 나와야 했고 매주 금요일 밤이면 술과 춤에 취해 밤을 꼴딱 새우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 첫 오리엔테이션에서 같이 활동할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났던 자리, 불타는 금요일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주워들은 말로 어떤 술이 맛있고 어떤 클럽이 핫한지 '꽤 잘 노는 클러버'인 척 나를 포장하려 했으나 금새 대화 주제가 바닥나 그 후 남은 시간을 어색하게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 활동은 마무리하지 못하고 담당자에게 연락해 그만두었다. 한번 시작한 일을 놓아버리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 생각해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을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민망함을 무릅쓰고 그렇게 결정했다.
그 후 대형 패션회사에서 마케터 활동을 한 적도 있다. 그 모임에서 만난 대다수가 패션과 브랜드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언젠가 늘 말쑥하게 모임에 등장하던 친구가 보여준 노트에는 패션 관련 용어와 정보가 그야말로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그저 내 눈에 마음에 드는 것을 괜찮게 입는 것이 그 당시의 나에게는 전부였는데 누군가에게는 패션은 탐구와 공부의 세상이었다. 6개월 동안의 활동을 꽉 채워서 마무리했지만 매달 있었던 정기 모임이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또다시 교훈을 얻었다. 밑천없는 관심은 금방 바닥을 보인다는 걸.
내용은 형식에 앞선다
런던에 와서 몇 개월 후에 있었던 일이다. 런던시 동물원 관련 보고서를 작성할 일이 생겨서 동물원에 갔다가 물어볼 것이 있어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백발의 남성분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지막에 그 신사가 했던 말. "You sound posh. Are you studying? 영어를 잘 쓰네요. 학생인가요?" 그 날은 내 인생 최초로 posh라는 단어를 들은 날이었다. 게다가 런던 도착 후 한창 영어라는 장벽 앞에서 고전하고 있던 나에게 그 말은 엄청난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약간은 우쭐하게 만들었다. 이제 나도 콜린 퍼스나 휴 그랜트처럼 말하게 되었구나! 한동안 그 우월감에 젖어있었으나 그것도 잠시. 그 후로 이상하게 말을 할 때마다 틀린 단어와 문법을 쓰고 간단한 인사와 일상적 표현조차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점점 혀가 꼬이고 말이 안되는 말을 하고 상대방이 재차 묻는 일이 반복되었다. 갑자기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영국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말하고 싶은 욕심에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보다 발음과 억양에 지나치게 집중한 탓이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당황스러운 경험을 수차례 겪은 후에야 원어민처럼 말하겠다는 욕심을 과감하게 버렸다. 나는 애초부터 영국사람이 아니며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이 나라의 사람처럼 100% 똑같이 영어를 구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허세와 부담감을 걷어내고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시작하니 오히려 긴 문장도 실수없이 말할 수 있었고 상대방도 한번에 내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다. '어떻게 말하는가'보다 '무엇을 말하는가'에 초점을 둔 결과였다.
긴 호흡으로 차곡차곡 쌓아가기
두서없이 나의 고민이 담긴 이야기를 써내려 가다 보니 내가 현재 집중하고 있는 인생의 목표가 '텅빈 채로 살지 않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깊은 전문성을 갖추는 것, 또한 꾸미지 않고 솔직하게 있는 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나답게 사는게 만만치 않은 세상 속에서 껍데기로 살지 않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 안에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꽉꽉 눌러 담아야 한다. 오늘도 내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