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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HWA Jan 20. 2023

변호사가 코딩을 하는 이유

알고리즘의 매력

변호사가 코딩을 하는지, 코딩을 하다가 변호사가 된 건지 정확한 선후는 모른다.

문과 중에서도 문과라고 칭하였던 변호사 집단에서 나는 찐문과는 아니었다. 이공계 출신도 간혹 로스쿨로 입학을 하면서 찐문과의 경계는 점점 없어졌지만, 나는 이과 출신은 아니었다.


처음 시작은 단순한 흥미였다. 초등학생 때 비주얼 베이직으로 알까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길래(당시에 나는 알까기 바둑 장기 이런 게임에 미쳐있었다), 무작정 컴퓨터 학원에 등록하여 프로그래밍 기초를 배웠다. 그냥 듣고자 하는 목적이 뚜렷했기에 기초 이론 이런거 다 생략하고 알까기와 테트리스 프로그램을 내 입맛대로 만들었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변호사가 되고 (수많은 이직처중 한 곳이었던) 한국은행에 입사하며 다시 컴퓨터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법무실로 갈 줄 알았던 나는 갑자기 금융시장을 분석하고 보고서를 쓰는 팀에 배치되었고..그것도 당장 인력이 필요했던 곳에 신입인 내가 들어갔다.


배치를 받은 나도, 나를 받아야 하는 팀도 서로 어리둥절 하며 쳐다보았던 그 장면은 아직까지도 뇌리에 생생하다. 


"변호사야?"
"..아.. 네.."
"근데 왜 우리 팀 왔대? 여기 맞아?"
"...아 네 그런 것 같은데요.."


서로 어쩔줄 몰라하며 공기가 무겁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그 공기도 내 몫이었다. 그 팀은 워낙 바빴고, 당장 보고서를 써야했기에 분석해야할 데이터가 산더미였다. 그냥 나에게 주어진 컴퓨터와 그전에 발간된 보고서를 보며 일주일은 시간을 보냈다.


도저히 심심해서 안되겠다 싶어 그냥 공유폴더에서 데이터를 다운받아 비슷하게 하나를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stata를 켰는데, 요즘은 네이버 블로거들이 아주 친절하게 잘 설명해두어서 익숙해지는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심심해서 (혹은 투명인간이 되기 싫어서) 시작한 검은색 바탕화면은 재밌었고, 내가 변호사인지 뭔지 기억도 안나게 해주었다.


스타타와 엑셀로 부채를 분석하고 금융기관의 신용을 파악하며 파이썬까지 넘어가며 슬슬 정체성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코딩으로 먹고살 것도 아닌데,, 이럴꺼면 변호사 안했지"

라는 생각이 들어 손을 들고 법무실로 이동하였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데는 한계가 있고, 나의 기회비용이 아까웠다.


 


"요즘은 뭐해?"

라고 내 지인이 질문을 한다면, 너는 요즘 무슨 일을 하냐는 것이 아니라 요즘 너의 취미 관심사 부캐는 무엇이냐는 소리이다.

연초가 되어 작년에 내가 무엇을 했나 살펴보았는데, 어플을 만들고 mbti 심리테스트를 만들고, 간단하게는 매크로까지.. 또 프로그래밍 언저리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였다.


정말 이질적인 두 영역인데 나는 왜 이걸 이렇게 좋아할까? 아니 자연스럽게 스위치를 할까?


알고리즘, algorithm


p -> q -> z; p->z


혹은 가끔은 거꾸로, z인지 알아보려면 q를, 그 전제로 p를 알아본다는 식의 논리가 그 공통점이다.

나는 유독 이해가 안되면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했고, 암기력이 엄청나게 좋은 스타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변호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니 그렇기에 내가 변호사를 했던 이유는 나노 단위로 단계별로 사건을 이해하고 법 구조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법률사실을 해석할 때도, 사건을 먼저 본 이후에 요건에 따라 '주시상목행'이 요건에 들어가는지 파악을 한다. 근거가 없고 뒷받침이 되지 않는다면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없다. 법은 철저히 알고리즘의 영역인 것이다.

법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걸 언제 다 외워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법은 정교하게 만들어져있다. 그걸 간결하게 적고자하여 해석의 여지가 생기는 것이지만, 어쨌든 우리가 게임을 할 때 퀘스트를 깨듯이 이루어져 있다.


나는 소위 말하는 파워문과가 아니다. 그렇다고 파워이과생도 아니다. 그냥 내가 이해해야만 한발짝 앞으로 갈 수 있는 정말 정직한 뇌를 가진 사람이다. 계획을 짤때도(참고로 나는 미친J이다ㅎㅎ) 내가 이걸 하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순서대로 나열한다. 인생은 어찌보면 내가 설계하는 것이고, 알고리즘이고, 도식화된 결과물ㅇ이다. 


가끔 막막할 때 내 인생도 알고리즘으로 짜보자는 생각으로 공책을 펼치곤 한다. 정말 막막한 일일수록 더 세분화하고 더 나노단위로 알고리즘을 짠다. 그래야 수정이 용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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