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를 버렸더니 작가가 되었습니다

트리플 라이선스 변호사의 뼈아픈 브런치 고시 낙방기

by 조의민 변호사

변호사, 변리사, 그리고 공인중개사.


30대 초까지의 나는 끊임없이 시험을 치르고 내 자격을 증명하며 살아왔다.

객관식과 주관식을 넘나드는 수많은 국가고시를 거쳐, 지금은 서초동 법무법인 필(PIL)의 변호사로서 매일같이 법리에 맞춰 기승전결을 짜내고 판사를 설득하는 서면을 쓴다.


어떤 복잡한 사실관계라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나의 본업이다 보니, 내심 나의 '글쓰기'와 '논리력'에는 꽤 단단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도, 나는 당연히 단번에 합격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명색이 세 개의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인데, 당연히 번듯하고 전문적인 법리 이야기를 써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나의 첫 번째 패착이었다.

나는 잔뜩 힘을 주고, 내가 아는 가장 고급스러운 어휘와 날카로운 논리로 무장한 글을 써서 브런치라는 법정에 첫 번째 작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제법 변호사태가 나는, 흠잡을 데 없는 글이었다.


며칠 뒤, 브런치팀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결과는 시원하고도 처참한 '낙방'이었다.


평생을 시험에 통과하고 나를 증명하며 살아온 나에게 브런치 고시 낙방은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 논리가 부족했던 걸까? 퇴근길 2호선 지하철 안에서 한참을 곱씹었다. 그리고 문득, 내가 그동안 직업이라는 무거운 갑옷을 입고 '진짜 내 이야기'가 아닌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멋진 이야기'만 꾸며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사실 24시간 내내 날카로운 사람이 아니다.

법정에서는 빈틈없는 척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아내의 눈치를 보며 리그 오브 레전드 승률에 집착하고, 플레이스테이션 결제창 앞에서 이성과 본능 사이를 오가며 치열하게 갈등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허술한 30대 남성일 뿐이다.


"이왕 낙방한 김에, 남들 보기 좋은 번듯한 글 말고 진짜 내가 쓰고 싶었던 허허실실한 내 일상이나 써보자."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어깨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을 빼고, 서초동 변호사 타이틀 뒤에 숨겨진 나의 찌질하고 시시한 일상들을 날것 그대로 적어 내려갔다. 법리적 해석 대신 아내와의 유치한 눈치싸움을 적었고, 거창한 승소 사례 대신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패소(주로 아내에게 지는)의 기록들을 두 번째 신청서로 제출했다.


그리고 며칠 뒤, 브런치는 나의 그 허술하고 시시한 일상 기록에 '작가 선정'이라는 승소 판결을 내려주었다.

합격 메일을 확인하던 순간, 솔직히 변호사나 변리사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을 때보다 입꼬리가 더 씰룩거렸다. 완벽한 척 꾸며낸 변호사 조의민이 아니라, 틈 많고 헐렁한 인간 조의민의 진짜 모습을 온전히 인정받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법정에서 논리로 승부하지만, 작가는 일상에서 공감으로 승부한다는 것을 브런치 고시 낙방을 통해 배웠다.


앞으로도 나는 이 공간에 거창한 법률 지식보다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마주한 헛웃음 나는 순간들과 아내 몰래 저지른 소소한 일탈에 대한 핑계들을 적어 내려갈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즐거운, 서초동 변호사의 허허실실한 일상 변론기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