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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리 Feb 10. 2021

늘어지는 전개에 반감된 기대,
<허쉬> 리뷰

드라마 리뷰 | JTBC <허쉬> (2020)

* 지극히 주관적인, 오로지 제 시선에서만 바라본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큐대 잡는 날이 많은 '고인물' 기자와 밥은 펜보다 강하다는 '생존형' 인턴의 쌍방 성장기이자, 월급쟁이 기자들의 밥벌이 라이프를 그린 드라마


    황정민 배우의 드라마 소식을 듣고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 영화관에서는 자주 본 얼굴이지만, 집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본다. 캐스팅만으로도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던 드라마지만 생각보다 시청률은 많이 저조했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나의 호기심에 불을 활활 지폈다.


    이 드라마는 소설 <침묵주의보>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요즘은 웹툰, 웹소설, 소설, 해외 드라마 등의 원작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가 잘 나간다. OCN 창사 이래 최초로 시청률 10%를 넘은 <경이로운 소문>도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지난해 JTBC에게 큰 영광을 안겨 주었던 <이태원 클라쓰>와 <부부의 세계>도 각각 웹툰과 해외 드라마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원작이 있는 모든 드라마가 잘 될 거라는 건 너무 섣부른 판단이다. 원작과의 싱크로율은 어떠한가, 얼마나 드라마 문법에 맞게 각색했는가, 드라마가 대중을 상대로 하는 매체인 만큼 얼마나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등등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굉장히 많다. 드라마에 원작이 있다는 건 원작의 인기와 팬들을 드라마로 끌고 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드라마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드라마 문법에 무리하게 맞추느라 원작의 색을 없앤다면 오히려 팬들에게 실망을 주고 반감을 살 수 있다. 그와 반대로 너무 원작에 치중할 경우,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하는 드라마 문법에 맞지 않아 지루해져 버리거나 대중이 아닌 소수의 마니아만을 만족시키는 드라마가 될 수도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허쉬>는 원작을 기반으로 했지만 잘 되지 않은 드라마의 예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원작의 장점도 살리지 못하고, 드라마 문법에도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뻔한 기자, 뻔한 인물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허쉬>의 로그라인을 짚어보고 싶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 '밥벌이 라이프'라는 단어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기자를 다룬 드라마에서 숱하게 보여줬던 정의감 넘치는 인물 말고,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 잡고 싶은 그런 바른 인물 말고. 기자도 결국은 직업 중 하나이고 돈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걸 보여주는 드라마인가 싶어서 너무 기대가 됐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스타일의 기자를 보는 걸까 싶었는데... 결국은 우리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기자였다.


    Cf) <하이에나>에서 정금자(김혜수) 같은 인물을 기대했다. 변호사임에도 자신에게 해를 가하려는 범죄자의 머리를 망설임 없이 벽돌로 내려 찍고, 가끔은 조폭들과 계약을 해 필요한 정보를 입수하고,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편 변호사 윤희재(주지훈)에게 접근해 애인인 척 연기를 하는. 돈을 벌기 위해 적당히 때 묻은 그런 캐릭터 말이다.



    언론사 인턴으로 지원한 지수(임윤아)는 면접장에서 매우 패기 넘치는 대답을 한다. "펜이 총보다 강하지만 밥은 펜보다 강하다"는 정말 웬만한 담력으로는 못할 대답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캐릭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가치관이 뚜렷한 것도, 그 가치관이 정말 현실적이고 평범하지만 드라마 인물로서는 신선한 것도 좋았다. 그러나 지수는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구보다 정의로운 인턴이 된다. 낮은 학벌로 번번이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했던 인턴 동기 수연(경수진)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 이후에 어쩐지 지수의 신념은 '밥보단 펜'으로 바뀐 것 같다.


    수연의 사건 이후에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 변한 기자는 한 명 더 있다. 바로 준혁(황정민)이다. 약 10년 전, 지수의 아버지 사건으로 인해 진실이 권력 앞에서 꺾이는 과정을 직접 겪은 준혁은 흔히 말하는 '기레기'로 변했다. 설렁설렁 기자의 윤리의식은 개나 줘 버린 것 같았던 준혁은 자신을 잘 따르던 수연이 죽은 이후 누구보다도 정의로운 기자가 됐다. 



    두 사람이 변한 계기는 명확해서 좋았지만, 변한 결과가 너무 뻔해서 오히려 재미를 떨어뜨렸다. 수연이 자살을 선택한 이유도, 수연이가 쓴 유서 속 글도 너무 공감돼서 감명 깊게 보고 있었는데, 수연의 죽음 이후에는 너무 진부한 이야기로 흘러가서 아쉬웠다. 인턴의 입장을 현실적으로 그려내어 많인 직장인과 사회 초년생의 공감을 샀던 <미생>이나 병원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의사로서의 주인공보다는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주인공을 그려낸 <슬기로운 의사생활> 느낌을 기대했는데, 결국은 많이 통용된 기자 이야기였다.






각색의 실패 : 단조롭다 못해 밋밋한 플롯


        <허쉬>는 드라마 초반부에 나왔던 '수연의 죽음'과 '고수도 의원의 비리'를 16부까지 끌고 간다. 이것부터 드라마에 맞지 않는 각색이라고 생각했다. 드라마는 보통 16부작으로 호흡이 매우 길기 때문에 원작을 기반으로 할 경우 원작에는 없던 새로운 이야기나 인물을 넣어 플롯을 풍부하게 해 주어야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Cf) 8부작이었던 <스위트홈>의 경우에도 원작에는 없던 캐릭터를 넣어 새로운 서브플롯을 만들어냈다. 더불어 몇몇 캐릭터의 설정을 바꾸어 드라마 내에서 또 다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바꾸었다.


    그러나 <허쉬>는 원작에 너무 충실했다. 보통 한두 가지의 사건으로 책 한 권을 끌고 가는 소설처럼, 16부작의 드라마를 한두 가지의 사건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남는 분량을 기자들끼리 술집에서 토론을 하거나 준혁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얻는 장면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서브플롯으로 인한 다른 사건이 없으니 '수연의 죽음'과 '고수도 의원 비리'의 외적 갈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준혁의 내적 갈등이다. 뭐가 그렇게도 고민이 많은지... 차라리 준혁의 내적 갈등에 할애한 시간을 줄이고, 새로운 사건을 서브플롯으로 넣어서 외적 갈등을 더 늘리는 게 몰입감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내적 갈등에만 치중하다 보니 지루하다.


    같은 장면의 반복, 외적 갈등의 부족, 혼자서만 괴로워하며 고민하는 주인공. 심지어 '기자'로서의 고민이기 때문에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도 없다. 8주 동안 16시간이라는 분량을 끌고 가기엔 극적 긴장감이 떨어지고 오히려 지루했다.






허쉬팀의 능력은 뭔가요?


    4화 이전까지는 매일한국의 전반적인 상황과 인물 관계를 보여주고, 그 안에서의 주인공이 극적인 사건을 겪으며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4화 엔딩, 각성한 준혁이 'hush'가 적힌 종이를 내밀면서 카메라와 눈을 맞추며 검지 손가락으로 입을 막는 장면까지는 좋았다. 준혁을 필두로 한 새로운 팀이 꾸려져 엄청난 사건들에 뛰어들 것 같은 벅참도 느껴졌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앞서 언급했던 '수연의 죽음'과 '고수도 의원 비리'의 반복, 또 반복. 그러다 보니 이 과정에서 허쉬팀의 매력이 떨어졌다. 보통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도와주는 다수의 조연 인물이 있을 경우, 조연들은 저마다의 능력을 갖고 있어 다양한 상황에서 주인공에게 힘이 되어 준다. 또 이들의 다 다른 성격과 특색은 드라마에 감초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두 개의 사건이 반복되다 보니 이들이 능력을 펼칠 기회는 없어졌고, 허쉬팀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한준혁, 양윤경(유선), 정세준(김원해), 김기하(이승준). 이 네 명이 모여 결성된 허쉬팀. 그러나 이들이 가진 특출 난 능력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네 명이 모였을 때 어떤 시너지를 내고 어떤 방식으로 사건을 헤쳐나갈 것인지 크게 기대가 되지 않았다.






신경을 많이 쓴 듯한 비유적인 연출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유적인 연출만큼은 눈에 띄었다. 정말 많은 비유가 등장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수수화'다. 고층의 콘크리트 빌딩, 갈라진 좁은 틈 사이에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운 것을 본 수연과 지수는 그 꽃에 '수수화'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지'수'와 '수'연이 발견한 '꽃'이라는 뜻이다. 이 꽃을 보며 지수는 한 마디 거든다. "이 꽃이 언니를 닮았다"는 말을.


    지수가 시청자에게 알려준 것처럼 이 꽃은 수연과 닮았다. 저 아래 땅바닥에서만 피는 꽃은 기어코 건물의 높은 곳까지 올라왔고 척박한 콘크리트에 뿌리를 내렸다. 학벌로는 저 아래 바닥에 있었던 수연이 기어코 매일한국 건물의 고층에 올라와 인턴으로 입사했다. 이런 비유는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또한 매 회마다 '밥'이 소재가 된다는 점도 독특했다. 1회는 밥, 2회는 곰탕 등등 하나의 음식이 그 회의 메인 에피소드와 연결되어 있다. <허쉬>의 감독님이 <식샤를 합시다>, <혼술남녀>도 연출했던데 그래서 그런지 음식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또한 독특한 시청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들의 '밥벌이' 라이프를 노리고 일부러 밥을 소재로 잡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결국 드라마는 '밥벌이 라이프'가 아니라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 잡는 '히어로 기자' 느낌으로 전개되어 밥에 대한 연출이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비유적인 연출에 신경을 많이 쓴 느낌이었고, 보는 내내 문학적인 소설을 보는 느낌이 들어서 나름 새로웠다. 그러나 비유적인 연출 때문에 전개가 더 느려지고 지루해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 소품이 어떤 식으로 비유가 되었는지 한 번 더 생각해야 했고, 주인공의 행동이 사건을 진행시키는 게 아니라 비유를 알려주는 데에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루즈해지는 느낌이었다. 소설이라면 모를까, 갈등과 긴장을 주어 초반부에 눈길을 끌어야 하는 드라마에는 조금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정말 많은 드라마다. 사회적인 메시지는 담았으나 크게 와 닿지 않았고, 초반의 캐릭터 설정은 좋았으나 각성한 캐릭터가 사건을 진행해 나가는 과정은 진부했다. 이들이 진행하는 게 허쉬 프로젝트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시청자한테만큼은 알려줬어야 하지 않을까..? 정말 아무도 모르게 '쉿'했다.




JTBC <허쉬>
2020.12.11~2021.02.06 / 16부작
최고 시청률 3.4%
제작사 키이스트, JTBC스튜디오 / 연출 최규식 / 극본 김정민

* 티빙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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