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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리 Mar 21. 2021

고구마가 적은 청춘사극
<암행어사> 리뷰

드라마 리뷰 | KBS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2020)

* 지극히 주관적인, 오로지 제 시선에서만 바라본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비리에 맞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조선시대 왕실의 비밀 수사관 암행어사와 어사단의 통쾌한 코믹 미스터리 수사물
출처 KBS 인스타그램

    사진만 봐도 KBS가 신난 게 느껴진다. 얼마나 신났으면 시청률 그래프까지 만들어서 올렸을까 (ㅋㅋ). 드라마 평균 시청률 3~4% 대를 웃돌던 KBS가 무려 14%의 드라마를 배출해냈다. 5%로 시작한 이 드라마는 가파르게 상승세를 타더니 2배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도대체 <암행어사>의 어떤 매력이 시청자를 TV 앞에 앉게 했을까?






짧은 고구마 구간, 득일까 실일까


    <암행어사>는 고구마 구간이 정말 짧다. 에피소드 형식을 표방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한 사건의 기승전결을 2회 이내에 모두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각 에피소드마다 백성을 힘들게 하는 빌런이 뚜렷해서 선과 악의 분명한 대립마저 잡았다. 주인공 성이겸(김명수)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확실하고, 조력자와 적대자도 항상 존재한다. '암행어사 출두요!'를 외치며 악을 척결하는 권선징악까지 완벽하다. 이렇듯 모든 것이 명확한 이 드라마의 전개는 고구마보단 사이다에 집중하여 요즘 시청자들의 취향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확실히 요즘 시청자들은 주인공이 위기에 빠지고 빌런에게 당하는 '답답한 고구마 구간'을 잘 못 견디는 것 같다. 시원한 한 방이 없으면 사이다를 달라고 아우성이다. 짧은 러닝타임 안에 위기와 해결을 모두 담은 숏폼 콘텐츠에 익숙해져서 그런 걸까. TV 드라마처럼 긴 호흡으로 가는 콘텐츠에서 위기가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하차를 운운한다. 그런 면에서 <암행어사>는 잦은 위기와 빠른 해결을 통해 요즘 드라마의 추세를 따라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빛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통쾌한 사이다를 맛보고 싶다면 고구마 구간이 그만큼 탄탄하고 답답해야 한다. 온갖 위기와 고난을 겪으면서 고통에 빠져 살던 주인공이 빌런을 이기고 문제를 해결해야 통쾌하지, 평탄하고 순조로운 인생을 살던 주인공이 빌런을 해치우면 별 감흥이 없다. 한 마디로 사이다의 시원함은 고구마의 답답함과 비례한다는 말이다. 고구마가 답답하면 할수록 사이다는 커지기 마련이다.



    '유쾌, 상쾌, 통쾌'를 지향한다는 <암행어사>는 고구마 구간이 짧은 대신 통쾌를 잃었다. 1차원적인 얕은 위기는 흥미진진함과 몰입감을 불러오지 못했고, 사건을 엉성하게 해결하는 전개는 미적지근함만 남겨줬다. 주인공이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도 긴장되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가볍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지만, 다르게 말하면 탄탄한 서사와 감정의 몰입은 부족한 드라마다.





사건의 스케일에 비해 허술한 해결 방식


    앞서 말했듯 <암행어사>는 에피소드 형식이다. 하나의 사건이 해결되면 또 다른 사건이 터진다. 암행어사 성이겸은 자신을 도와주는 다모 홍다인(권나라), 몸종 박춘삼(이이경)과 함께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면서 부정부패를 척결한다. 따라서 이 드라마에서는 '각 에피소드가 얼마나 참신하고 임팩트 있는가'가 관건이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에피소드 자체는 재미있었다. 동굴에 일꾼을 가두고 채광을 하여 사또가 금을 챙기는 고을, 투전을 운영하여 그 수익을 영의정에게 바치며 사또가 자리를 꿰차고 있는 고을 등 각 에피소드가 개별적 특성이 뚜렷했다. 에피소드가 진행될수록 이겸과 다인의 과거 서사가 조금씩 밝혀지는데, 클리셰적이긴 했지만 다음 화를 계속 보게 할 만큼의 재미는 있었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에피소드의 해결 방식이 너무 허술했던 게 흠이었다. '암행어사 성이겸'만의 독특한 관점에서 접근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클리셰적이거나 우연에 기대어 문제를 풀어 나간다. 


    특히 두 번째 에피소드였던 '투전 고을'에서의 문제 해결 방식은 오로지 우연에만 의존하고 있다. 집주인의 가족이 모두 숙청을 당해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에서 잠을 청하는 이겸 일행. 그런데 그 집은 '하필' 사또의 부정부패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사람의 집이었고, 거기서 '우연찮게' 혼자만 살아남은 집주인의 자식을 만난다. 그 자식은 '때마침' 사또가 아버지를 죽일 때 그 집에 있었다. 그러나 사또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는 상황. 이겸은 자식이 살인 장면을 모두 목격한 척 속였고, 투전을 운영하며 뒷돈을 움직일 만큼 머리가 좋은 사또는 '이상하게도' 그 허술한 계략에 넘어가 순순히 자신의 죄를 분다.


    엉성하게 해결되어 버린 에피소드는 통쾌함이 아닌 허무함만 남겨주었다. 암행어사 성이겸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갔다면, '유쾌 상쾌 통쾌'를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뻔하고 선한 등장인물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은 '매력 있는 인물의 부재'다. <철인왕후>,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듯이 요즘 드라마에서는 캐릭터도 매우 중요해졌다. 캐릭터가 얼마나 입체적인지, 얼마나 독특한지 또한 드라마의 흥행 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암행어사>에서의 등장인물은 우리가 너무 많이 봐왔던 뻔한 캐릭터이며, 개인적인 욕망보다는 사회적인 정의를 우선시하는 비현실적인 캐릭터이다.



    주인공 성이겸은 사랑하는 여인과 동생에게 배신을 당한 후, 망나니니로 사는 캐릭터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암행어사의 명을 받든다. 초반에 망나니 성이겸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첫 에피소드에서는 정의로운 모습보다는 나밖에 모르고 일을 대충대충 하는 모습을 보여줘도 좋았을 텐데. 성이겸은 암행어사 명패를 받자마자 언제 망나니였냐는 듯 갑작스럽게 세상 제일가는 선인으로 바뀐다. 그 후로도 개인의 욕망보다는 사회의 정의를 위해 고을을 돌아다니는 착하기만 한 암행어사가 된다.


    홍다인도 뻔하기는 매한가지다. 아무것도 모르는 기생인 척 하지만, 사실 다인은 술자리에서 들은 중요한 정보를 장태승 도승지(안내상)에게 전달하는 첩자다. 아버지의 죽음을 밝히리라는 원대한 야망도 갖고 있다. 어디선가 많이 본 설정이 아닌가. 다인 또한 이겸과 함께 고을에 내려갔다 하면 정의로운 인물이 된다. 한 번쯤은 다인이 '선함을 잃어야만 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알 수 있다'는 딜레마적인 설정을 넣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지금의 두 캐릭터는 너무나도 정의롭고, 너무나도 클리셰적이다.






그렇다면 시청률은 왜?


    나는 이 드라마가 엄청난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볍게 보기는 좋았지만, 뻔한 등장인물에 허술한 전개 방식을 고려하면 정말 아쉬움이 많이 남는 드라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도대체 왜 그렇게 높게 나왔을까? 나는 이것을 '중장년층'과 '운', 이 두 가지 이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중장년층'이다. 서사가 탄탄한 추리 드라마를 많이 접한 2030 세대에게 <암행어사>는 밍밍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드라마는 중장년층을 공략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다. 사건의 전개가 복잡하지 않은 데다가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유머 코드는 잠에 들기 직전 가볍게 보고 자기 딱 좋다. '시청률이 잘 나오기 위해서는 TV를 주로 시청하는 중장년층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 있는 만큼, 이 드라마는 중장년층을 제대로 공략한 드라마였다.


    다음은 '운'이다. 5~6%대의 시청률을 유지하던 <암행어사>는 7회(21.01.11)에서 8%로 껑충 뛰면서 이 물살을 타고 14%에 안착한다. 7회가 획기적이게 재미있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동안 <암행어사>에게는 너무나도 강력한 적이 있었다. 바로 시청률 28.8%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보여준 <펜트하우스>다. 1월 5일, <펜트하우스>가 종영한 후 처음 방송한 <암행어사>의 회차가 7회다. <펜트하우스> 덕분에(?) 월요일과 화요일 저녁 TV 앞에 앉는 게 익숙해진 시청자들이 <암행어사>로 넘어왔을 확률도 있다. 때 마침 운이 좋게도 <암행어사>는 내용을 이해하기가 쉬워서 중간 유입자를 늘리기에 적절했다. 굳이 처음부터 드라마를 다 보지 않고 중간 회차부터 틀어도 내용을 따라가는 데에 전혀 무리가 없다.






    * 고구마가 별로 없는 드라마, 쉬운 드라마, 킬링타임용 드라마, 감정 소모가 크지 않은 드라마를 찾고 있다면 <암행어사>를 추천한다.


KBS <암행어사:조선 비밀 수사단>
2020.12.21~2021.02.09 / 16부작
최고 시청률 14%
제작사 아이윌미디어 / 연출 김정민, 이민수 / 극본 박성훈, 강민선

* 웨이브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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