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
현관문을 열자 센서등이 반짝 켜지면서 익숙한 향이 날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퇴근길에 마주쳤던 사람들의 얼굴과 눈빛이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잘 벗겨지지 않는 신발을 벗고 불도 켜지 않은 채 거실로 천천히 걸아가 쇼파에 누웠다. 푹 꺼진 쇼파보다 더 깊숙하게 몸이 꺼져갔다.
‘내가 사람이 싫을 수도 있구나.’
끊이지 않는 생각으로 두통이 생길 때쯤 퇴근이 늦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퇴근했어? 어디야? 얼른 집으로 와줘. 나 너무 우울해……”
“무슨 일이야? 괜찮아? 얼른 갈게!”
퇴근길에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집으로 온 남편은 나를 보자마자 안아주었다. 눈물만 뚝뚝 떨구다 어느새 엉엉 소리를 내며 오열하였다. 속이 풀어질 때까지 줄줄 쏟아냈다. 울음이 잦아들자 남편에게 퇴근길에 겪었던 낯선 경험을 얘기하였다.
“한 번도 사람 얼굴이 무섭다고 느낀 적이 없었어. 갑자기 내가 서 있는 공간이 너무나 이상하게 보여서 도망치고 싶었는데 도망칠 곳이 없었어.”
어릴 때 술래에게 잡히고 싶지 않아 도망 다녔던 것이 전부인데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도망치고 싶었다니. 내 마음 어딘가에 금이 생긴 것 같다.
가만히 듣던 남편은 회사생활이 힘들면 그만두는 것이 어떠냐고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일 욕심이 있던 나는 아직은 괜찮다고 하며 말 끝을 흐렸다. 사실 욕심보다 용납이 안 되었다. 나는 그렇게 나약하지 않으니까. 기분이 조금 나아지고 나서야 서둘러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는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기다리고 기다렸던 채취일이었다.
어제의 속상함은 넣어두고 남편과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 기다리던 채취일, 다행히 토요일이라 출근에 대한 부담은 없었지만 첫 토익시험을 보러 온 것처럼 떨렸다.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어떡하지?’
시험도 아닌데 모르는 문제들이 많을까 하는 긴장된 마음으로 채취실로 향했다. 대기실 앞에는 남편들이 의자에 앉아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조함과 무료함이 묘하게 섞여있는 표정들이었다. 내 이름이 호명되고 그들 사이에 남편을 남겨두고 채취실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 남편도 함께 채취를 해야 했기에 서로 잘해보자는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우리 잘해보자!
채취실 안에는 10개 정도의 베드가 있었고 이미 시술 후 회복 중인 사람들도 있었다. 시술시간은 10여분 남짓이라 짧지만 사전 준비시간과 회복시간 때문에 2시간 정도는 소요된다고 했다. 환복하고 진통제를 맞으며 누워 있자니 몇 년 전 아산병원에 누워있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는 수술이고 지금은 시술이니 덜 아프고 회복도 빠르겠지. 마취가 안 되면 어쩌지? 쓸데없는 생각이 맴돌았다.
내 차례가 되었고 담당 선생님은 편안한 미소를 건네며 말했다.
"잘해봅시다!"
선생님 격려와 함께 시술대로 안내를 받으니 긴장을 내려놓고 빙긋 웃으며 시술대에 누울 수 있었다. 천장에는 손으로 아기 발을 감싸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내 손도 저 손이 될 수 있겠지? 첫 시술이라 긴장되어 쉽사리 눈이 감기지 않았다.
‘유능하신 선생님이니까 잘 될 거야. 1차에 끝나는 행운이 올지도 몰라. 저 아기 발 예쁘네. 나도 곧 저런 아기를 만날 수 있을 거야. 시술이 잘 되려면 내가 얼른 잠들어야 할 텐데.’
“OO님, 일어나세요. 시술 끝났습니다! 일어나세요!”
좀처럼 끊기지 않는 생각에 언제 잠드나 싶었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며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수면마취가 아주 잘 되어 천장을 바라보며 눈 깜빡이는 사이에 끝나버린 것이었다. 베드에 실려 회복실로 가는데 어이가 없으면서도 무서웠다. 잠들지 말고 숨 쉬라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얼른 마취에서 깨려고 큰 숨을 들이고 쉬기를 반복하였다. 마취가 깨는 과정은 좀 멍 하면서 지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난자가 채취되다니. 허망하게 뺏긴 기분이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되어서 그런 지 빼앗긴 기분이 들어 못내 서운했다. 내 심보가 이리도 못났다. 1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고 채취된 난자의 수와 복용약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5개 난포 중에 2개의 난자만 얻었다. 2개라도 얻어 감사할 일이지만 옆 환자는 나보다 많이 채취되었는지 식은땀과 함께 복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처음 하는 시술이라 이게 맞는 건가 싶었지만, 어쨌든 무사히 채취가 되었다.
이식 날짜는 전화로 안내받았다. 3일간 배양한 배아를 화요일에 이식한다고 했다. 날짜를 헤아려보니 이식날이 박람회 바로 전날이었다. 오후에 박람회장으로 바로 출근하는 일정이라 이식에는 무리가 없겠지만 이식 당일날 부스를 꾸며야 한다는 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식날에는 혼자 병원으로 갔다. 남편과 함께 가면 더 좋았겠지만 여기까지는 사회적 배려가 닿지 못했다. 남편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기에 씩씩하게 도착했다. 이식은 채취하는 것과 비슷했지만 마취를 하지 않았다. 시술대 옆에는 이식할 배아가 모니터에 띄워져 있었다. 우리의 첫 배아였다. 난할이 진행되고 있어 여러 개의 동그라미들이 아주 얇은 껍질 안에서 교집합을 이루고 있었다.
‘저 작은 세포가 사람이 된다니…… 참 신기하다.’
모니터에 홀로 있는 배아를 보며 ‘왜 너는 혼자니?’라는 생각을 할 때쯤 이식 준비 중인 담당 선생님이 말을 꺼냈다. 채취된 난자 2개 중 1개만 수정되었고 배아 등급은 중급 정도 된다는 안내였다. 숫자가 자꾸 줄어드니 내 자신감도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이식은 10분도 안돼서 끝났고 1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뒤에 나갈 수 있었다. 휴식을 취하는 동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녀석이 잘 붙어있으면 나는 엄마가 되는 것이다.
‘잘 붙어 있으렴. 모자란 것이 많은 우리지만 좋은 엄마, 아빠가 되도록 노력할게.’
조심스레 아랫배에 손을 얹으며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뭉클한 마음이 들면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주책맞은 감성을 얼른 손으로 훔치고 휴식에 집중했다. 1시간이 지나자 배아 이식 결과지와 함께 시간대별 난할 캡쳐본과 이식 직전의 배아 사진을 함께 받았다. 그리고 수면양말과 샌드위치 그리고 두유를 받았다. 따뜻한 배려에 신이 났다. 시계를 보니 얼른 박람회장으로 가야 했기에 부랴부랴 병원을 나왔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도착한 박람회장엔 다른 직원도 와 있었다. 둘이서 부스를 꾸며야 하는 상황이라 금방 끝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차근히 준비해 갔다. 시트지를 자르고 붙이고, 의자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은근히 아랫배가 신경 쓰였다. 바닥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차가운 기운도 걸리고 쭈그리고 앉을 수밖에 없는 모든 상황들이 신경 쓰였다. 일상생활해도 문제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일상은 아닌 것 같았다.
‘이 정도도 못 버티면 나약한 녀석일 거야!’
걱정은 날 더 예민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식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기로 했다. 밤 9시가 돼서야 일은 끝났고, 나의 1차 난임시술은 그렇게 얼레벌레 지나갔다.
내게 꼭 붙어있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