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에겐 너무 어려운 교실

by 안녕별

시훈이는 지금의 학교가 아닌 바로 직전 학교에서 근무할 때 만난 일곱 살 친구이다. 시훈이와 떠오르는 첫 만남의 장면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입학식 날 마술 공연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모습이고 하나는 교실 카펫 위에 혼자 앉아서 공룡 놀이를 하는 모습이다.

입학식에서 마술 공연을 볼 때 시훈이는 유치원 가방을 그대로 메고 있었다. 유치원 아이들이 앉는 나무 의자는 아이들 몸에 맞게 제작되어 크기가 작아 가방을 메고 앉으면 엉덩이 끝부분을 의자에 살짝 걸터앉아야 하므로 어린 아이라 하더라도 다소 불편하다. 이에 나는 시훈이가 조금은 편히 관람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방이 불편하면 가방을 내려놓을 수 있게 도와주겠노라고 시훈이에게 조용히 다가가 이야기하며 가방 어깨끈 쪽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시훈이는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거절했다. 단호한 시훈이 거절을 듣고 나는 뻗었던 손을 빠르게 거둬들였다. 시훈이 바로 뒤에 시훈이 어머님이 앉아 계셨는데 교사에게 단호히 거절하는 시훈이의 행동이 무례하진 않았을까 염려하는 눈초리로 살짝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속으로는 당황했으나 어머님께 괜찮다고 웃어 보이며 어머님의 민망한 마음을 덜어드리려 애썼다. 잠깐이었지만 시훈이가 보인 작은 행동에서 시훈이의 심정이 느껴지는 것 같아 나는 그 이후 시훈이 표정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시훈이는 마술사의 행동에 집중하는 동안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이 입장에서 마술사의 행동은 충분히 놀랄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손으로 묘기를 부리던 공이 어느 순간 사라져 갑자기 마술사의 입을 통해 나오는 장면은 성인인 내가 봐도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시훈이가 어떤 아이일까 매우 궁금하면서도 뭔가 본능적으로 시훈이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면 열심히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입학식을 마친 바로 다음 날 교실에서 첫 놀이가 시작되었을 때 시훈이는 여러 가지 블록들이 모여 있는 구역으로 가서 가장 먼저 공룡 모형이 들어 있는 바구니를 꺼냈다. 바닥에 바구니를 내려놓자마자 앉아서 익숙한 듯 공룡 두 마리를 꺼내어 “크아악.”하며 서로 공격하는 놀이를 이어갔다. 나는 시훈이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가 시훈이 옆에 다가가 앉았다.

“시훈아, 선생님은 유치원에서 네가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도와주는 사람이야. 그리고 함께 놀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함께 놀이할 수도 있어.”

시훈이가 낯선 유치원에 처음 와서 혹시라도 불편하거나 어려우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도록 나를 소개했다.

하지만 시훈이는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공룡 놀이를 하며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혼자 놀이하는 게 좋아요.”라고 빠르게 대답했다. 나는 시훈이의 말에 “그래. 알았어. 그럼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라고 이야기하며 태연한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훈이는 나의 이런 감정과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 없이 공룡 놀이에 푹 빠져 놀이를 이어갔다.

그날은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는 첫날이었기 때문에 오전 자유 놀이 시간이 끝나고 아이들과 모여 각자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반은 작년에 내가 여섯 살을 가르쳤던 아이들이 80% 정도였고 새로 들어온 친구들이 20% 정도 되었다. 내가 시훈이를 만날 때 근무했던 유치원은 초등학교 안에 병설되어있는 유치원으로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 반이 한 반씩 있는 총 3 학급 병설 유치원이었다. 병설 유치원은 초등학교와 같은 건물에 있으며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이 유치원의 원장 선생님과 원감 선생님으로 겸직하고 있는 유치원을 말한다. 학급이 3개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작년에 가르쳤던 아이들을 연임해서 가르치는 일은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여섯 살 때 가르쳤던 아이들을 일곱 살 때에도 가르치게 되었는데 우리 반에는 기존 재학하는 아이들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다른 유치원에서 전학 온 아이들은 소수였다. 시훈이는 그 소수중에 한 명이었다. 대부분은 서로를 알고 있지만 그래도 새 학년이 된 첫날이니 서로에 대한 소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익숙한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곁들여 조금은 장난스럽게 소개를 이어갔다. 나는 아이들이 장난스럽게 소개하는 과정에서도 자기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말을 조금씩 완전한 문장으로 만들어 다시 들려주었다. 이후 시훈이 차례가 되었다. 앞의 두 가지 사건으로 나는 시훈이가 어떻게 자기를 소개할까 궁금했고 친구들도 새로 온 시훈이에 대해 기대하는 마음을 갖고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일곱 살이고 강시훈이라고 해. 나는 사랑유치원을 다녔어.”

시훈이는 매우 낭랑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사실 글로 전달했을 때는 그 내용이 간단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일곱 살의 아이가 그것도 대부분이 재학생인 낯선 공간에서 매우 분명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전 출신 학교를 밝히며 분명히 이야기하는 것은 유치원에서는 조금은 보기 드문 광경이다. 나는 시훈이의 소개를 듣고 시훈이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한 것 같아 놀라운 마음과 반가운 마음이 함께 들었다. 놀라운 마음은 어쩜 저렇게 똑 부러지게 말을 잘하지라는 생각과 반가운 마음은 조용히 혼자 놀이하는 아이의 성향과는 다르게 자기표현은 확실해서 소통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반가웠다.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이 지나고 나는 매일 하교 시간에 시훈이를 교문까지 데려다주면서 시훈이 어머님과 시훈이의 유치원 생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훈이 어머님은 아이가 유치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모습을 늘 주의 깊게 살피는 모습이었다. 오늘은 별일이 없었는지, 친구들과는 잘 지냈는지, 유치원 적응을 잘하고 있는지 염려가 되면서도 유치원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가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감정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나는 시훈이의 어머님께서 하교 시간에 간간이 들려주시는 시훈이에 대한 정보를 들으며 시훈이의 삶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시훈이 어머님에 의하면 시훈이는 이전 유치원에서 지내다 중간에 쉬는 기간이 있었다고 한다. 정확히 어떤 이유로 쉬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으셨지만 아마도 교육기관을 다니는 것보다 쉬는 것이 더 낫겠다고 판단한 어머님의 어떤 결단이 있었으리라 예측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코로나로 인해 전체 학교가 원격 수업을 이어가는 등 집단 교육활동에 제한도 많고 유치원의 경우에는 의무교육이 아니기에 가정에서 교육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유치원에 오기 전까지 시훈이는 가족과 함께 다니는 교회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도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소리를 지르거나 그 자리를 벗어나는 등 엄마의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 되었고 또래와 어울리는 것에 어려움이 있어 친구를 사귀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어머님은 시훈이의 성향을 잘 알고는 있으나 어떻게 도와야 할지 고민이 많아 보였고 그래서 시훈이가 새롭게 다니기 시작하는 유치원에서는 친구들과 어떻게 지낼지, 자신과 함께 있을 때처럼 소리를 지르고 울거나 하진 않을지 하교 시간에 그녀의 모습은 걱정과 안도가 뒤섞인 모습이었다. 나는 어머님의 정보를 기반으로 시훈이의 놀이 행동을 더욱 주의 깊게 관찰했으며 이를 성실하고 솔직하게 전달했다. 학기 초였기 때문에 전달하는 내용은 대부분 친구들과의 관계, 집단생활의 적응 정도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했고 친구들과 함께 놀이하는 것을 아직까진 좋아하지만 자기 의사 표현은 매우 분명하다는 것, 친구들의 놀이를 주의 깊게 살피고 웃기도 하는 등 친구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 그러니 친구와 함께 놀고 싶으면 친구에게 다가가는 것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것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루는 시훈이가 친구들이 놀이하는 모습을 주의 깊게 보고 있길래 시훈이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시훈이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함께 놀고 싶은 친구가 있는지 다시 한번 더 물어보았다. 시훈이는 이번에는 바로 거절하지 않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얼른 한 가지 꿀팁을 더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훈이의 성향과 잘 맞을 법한 친구 현우를 추천했다. 우리 반 현우는 놀이 소재가 매우 다양하고 창의적이면서도 친구들을 잘 배려하며 놀이할 수 있는 아이였기에 시훈이가 우리 반에서 첫 친구를 사귄다면 현우가 잘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훈아, 저기 놀고 있는 현우 있지. 현우가 너랑 성향이 잘 맞을 것 같아. 현우는 친절하고 재밌거든. 나중에 현우랑 놀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네가 현우랑 놀고 싶다면 선생님이 도와줄게.”라고 이야기하며 시훈이의 표정을 살폈다.

“네.”라고 짧게 대답했지만 그 안에 긍정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앞으로 시훈이가 어떤 시도를 할까 기대가 되었다.

그날 저녁 퇴근길에 키즈노트로 알림이 울렸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는 담임 선생님과 학부모가 간단하게 상담하거나 소통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스마트폰 앱을 활용하는데 우리 학교에서는 키즈노트라는 앱으로 알림장을 주고받았다. 퇴근길에 울리는 키즈노트 알림은 교사 입장에서 아이에게 무슨 일 있나? 오늘 내가 전달을 놓친 부분이 있을까? 등 짧은 순간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알림을 살짝 열어보니 시훈이 어머님이었다.

“선생님, 오늘 시훈이가 처음으로 같이 놀고 싶은 친구가 생겼다고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그런데 아마 그 무리에 끼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누군가와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게 너무 기특해요.”

시훈이 어머님의 짧은 글에서도 그녀의 기쁨과 감동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오늘 나와 나눈 이야기가 시훈이의 생각을 조금은 흔들었을까? 시훈이가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다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내일 시훈이가 오면 누구랑 놀고 싶은지 물어봐야지. 내가 추천한 현우일까? 아니면 다른 친구일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시훈이를 만나자마자 나는 반갑고 급한 마음에 시훈이에게 누구랑 놀고 싶었던 건지 물었는데 역시 나의 예상이 적중했다. 시훈이는 망설임 없이 ‘현우’라고 이야기했다.

그래. 그렇구나. 현우.

나는 뭔가 내가 짜 놓은 각본대로 흘러가는 듯해서 내가 잘 시도했구나. 현우를 추천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어제 시훈이에게 건넨 이야기가 시훈이 생각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아 왠지 모를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시훈이가 현우랑 즐겁게 놀이하면서 유치원 모든 활동에 잘 적응해 나갈 수 있겠다는 내 나름의 기대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럼. 오늘은 현우랑 놀아볼 거야?”라며 조금은 흥분된 목소리로 반갑게 물으니 돌아온 대답은

“아니요. 지금은 로켓 만들고 싶어요.”라는 시훈이의 간단한 대답.

그렇지. 하하하. 나는 마음속으로 성급했던 내 모습이 들킨 것 같아 민망하면서도 겸연쩍어 짧게 웃었다. 자기 생각이 확실한 시훈이는 아침에 유치원에 와서 하고 싶은 놀이가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친구와 놀이하고 싶은 마음은 생겼지만 좀 더 용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내가 아이의 어려움을 잘 알고 도왔구나라는 생각에 도취되어 내 마음대로 시나리오를 쓰고 다음 단계로 안내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훈이가 어렵게 친구와 놀아보겠노라 생각했던 마음은 너무 중요한 교육적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시훈이가 친구와 함께 놀아보는 경험을 하면 분명 혼자 놀기보다는 친구와 함께 노는 것을 선택할 것이라 확신했다.

나는 잠시 시훈이가 되어보는 상상을 했다.

시훈이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낯선 유치원, 낯선 선생님, 낯선 아이들.

내가 생각하는 것들과 조금은 다르게 움직이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

나는 이런 것이 어렵고 두려워.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

잠깐의 상상이었지만 순간 시훈이가 예측가능하지 않은 새로운 상황에서 도전하는 것이 망설여지고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 끝에 나는 시훈이에게 현우와 놀이를 시작할 때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알려주었다. 그러면서도 어떤 새로운 시도는 내가 준비되었을 때 시도할 수 있다고 함께 덧붙여 주었다.

“지금은 네가 로켓 만들고 싶으면 당연히 로켓을 만들면 되지. 어떤 일은 네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 더 잘 되기도 하거든. 그런데 나중에 네가 현우랑 놀고 싶어지면 그때는 현우가 하는 놀이를 주의 깊게 살피다가 네가 하고 싶은 놀이 말고 현우가 하는 놀이를 같이하면 조금은 편안하게 놀이를 시작할 수 있어.”

나는 시훈이에게 친구와 놀이할 수 있는 꿀팁을 하나 더 덧붙였다. 그것은 친구가 하는 놀이를 주의 깊게 살피고 친구가 하는 놀이를 따라 해 보라는 것.

시훈이는 그동안 늘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를 선택하며 놀았을 것이다. 혼자 놀이를 선택하는 아이들은 또래와 함께 놀이하며 발생하는 갈등이 어려워 회피하고 싶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가 매우 분명하여 친구와 놀이하는 것보다 혼자 놀이하는 것이 더 편안해서 혼자 놀이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시훈이가 혼자 놀이를 선호하는 데에는 이와 같은 이유도 있으리라 추측했다. 그동안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만을 고집했다면 친구의 요구와 나의 요구가 상충되었을 것이고 이러한 의견 대립으로 인해 친구와의 놀이가 부담스럽고 불편했을 것이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의 갈등을 중재하다 보면 대부분 서로 하고 싶은 것이 다르거나 서로 의도한 바가 달라서인 경우가 많다. 특히 시훈이처럼 신중하고 조심스러우면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가 분명한 아이는 친구와의 놀이 시도에서 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제안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 과정에서 의견 조율이 어려웠을 경우 불편을 느껴 점점 친구와 놀지 않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관계라는 것은 나의 요구만으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요구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알아가고 각자의 요구를 맞춰가며 함께 맺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현우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시훈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놀고 싶은 현우가 어떤 아이인지, 어떤 놀이를 좋아하는지 현우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상대의 요구를 아는 것에서 놀이가 출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친구와 놀고 싶다면 내가 놀고 싶어 하는 상대 친구의 요구를 살펴보는 기술은 매우 중요하며 이 과정은 나의 요구를 조절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시훈이처럼 혼자 놀이에 익숙하고 나의 요구에 집중되어 있는 아이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

나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있던 시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로켓을 만들기 위해 블록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능숙하게 로켓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교실에서 놀이를 이어가다 바깥 놀이 시간이 되었다. 교실에서 놀이를 하다가도 바깥 놀이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후다닥 정리를 마치고 전날 바깥에서 놀았던 패턴을 기억하고 약속한 듯이 자신이 해왔던 놀이를 이어간다. 바깥에 나가서 잡기 놀이를 했던 아이들은 비슷한 멤버를 소집해서 잡기 놀이를 이어가고 모래 놀이터에서 땅을 팠던 아이들은 삽부터 찾아서 땅을 파러 간다. 시훈이의 바깥 놀이 패턴은 주로 아이스크림 고깔 모양을 이용해 로켓이 발사하는 장면을 시연하고 상상 놀이를 이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각자 어떤 놀이를 하러 갔는지 눈으로 빠르게 동선을 파악했다. 그 과정에서 뛰어가다 넘어지는 아이들은 없는지, 놀잇감을 소유하는 과정에서 다툼이 발생하진 않는지, 잡기 놀이 술래를 정하는 과정에서 갈등은 없는지 아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중에 시훈이가 눈에 들어왔다. 시훈이는 늘 찾았던 아이스크림 고깔을 찾는 대신 긴 삽을 찾아들었다. 오늘은 무언가 새로운 놀이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시훈이가 왜 삽을 들었을까 궁금해하며 시훈이 움직임을 따라가 보았다. 시훈이가 도착한 곳은 현우가 놀이하고 있는 모래 놀이터였다. 시훈이는 현우가 모래 놀이터에서 땅을 파는 것을 보고 적당한 거리에서 똑같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아까 교실에서 시훈이에게 전했던 나의 말이 생각났다. 시훈이가 내 말을 듣고 한 번 시도해 보는 것일까? 나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현우 옆에서 땅을 파고 있는 시훈이 모습을 관찰했다. 시훈이와 현우는 내가 보고 있는지도 모른 채 땅파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두 아이의 모습을 촬영했다. 그러면서 시훈이의 용기 있는 시도가 갑자기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스스로 용기를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내면의 갈등이 있었을까. 나는 시훈이가 되어 상상해 보려고 애썼지만 시훈이가 얼마만큼 어렵고 용기를 냈어야 했는지 정확히 가늠하진 못한다. 다만 시훈이가 그동안의 자기 삶의 패턴을 깨고 새로운 친구와의 만남을 위해 다짐하고 도전했을 것이라 생각했고 이 부분이 매우 대견스러웠다. 옆에 누구라도 있었다면 시훈이의 놀라운 용기와 시도를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대며 기뻐했을 터인데 나는 누가 보면 아무 의미도 없을 법한 두 아이가 삽으로 땅을 파는 장면을 조용히 스마트폰에 남겼다. 스마트폰에 담긴 시훈이 사진을 수업 마치고 시훈이 어머님께 전송해야지 생각하며 기뻐하실 시훈이 어머님 모습을 떠올렸다.

시훈이와 현우는 말없이 땅을 팠고 시훈이는 현우가 중간중간 하는 말들을 귀 기울여 들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두 아이가 땅을 파는 동안 나는 아이들의 놀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현우는 매우 크게 만든 구덩이를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살펴보며 나에게 소개했다. 오늘은 시훈이와 함께 만들어 더 크게 만들어진 것 같다며 현우가 시훈이의 존재에 대해서도 인식해 볼 수 있도록 이야기를 덧붙였다. 놀이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놀잇감을 정리했다. 놀잇감을 정리하고 난 후에 나는 시훈이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오늘 현우와 함께 한 놀이가 어땠는지 살짝 물어보았다.

“좋았어요.”

시훈이의 말은 무뚝뚝하고 짧았다. 그렇지만 시훈이가 정말 좋았다는 마음을 담아 말하는 것이 느껴졌다. 시훈이가 좋았다고 하니 나 또한 너무 좋았다. 어찌 보면 오늘의 장면은 매우 평범하기 그지없다. 아이들은 단순하게 땅을 팠고 교사인 나는 이러한 아이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오늘의 평범한 일상은 시훈이와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우리는 종종 새롭고 낯선 곳에 놓여졌을 때 기존의 익숙한 방식대로 행동한다. 그것이 낯선 장소에서 느끼는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일 것이다. 시훈이도 자기만의 익숙한 방식대로 유치원에서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지속적으로 친구와 놀아볼 테냐 묻는 나의 말이 조금은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훈이는 그동안의 익숙했던 자기만의 방식을 조금은 깨고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건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도전이었지만 시훈이 개인에게는 매우 큰 용기였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유치원에는 아이들이 끊임없이 작은 도전을 이어나간다. 나는 비단 이러한 작은 도전이 유치원에만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네 삶에서는 끊임없는 도전이 무한 반복되고 있다. 나만 하더라도 자녀를 키우면서 마주하게 되는 작은 의사결정이 부모로서 매 순간 도전이며, 직장 상사가 가진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다를 때 이를 관철시키거나 조율하는 것 또한 도전이다. 이러한 도전은 별거 아닌 듯 보여도 개인에게는 매우 어럽고 중요한 일이며 아이들의 작은 도전들도 마찬가지이다. 성과가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아이들의 도전에 대해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친구들과 잘 지내기 위해 스스로 고민하고 실천하는 작은 도전은 잘 드러나지 않을뿐더러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발견하기도 어렵다. 설령 그 고뇌를 알아차린다고 하더라도 아이에게 뻔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 해결책을 실천하지 못하는 아이를 답답해하는 경우도 많다. 과거의 나도 아이들에게 자주 그랬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제시하는 해결책이 나를 위한 것인지 아이를 위한 것인지 모호했으며 심지어 아이를 위한답시고 나를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로 나는 종종 아이 속으로 들어가 아이 시선에서 사건을 보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는데 오늘 시훈이와의 사건도 그랬다. 시훈이의 시선에서 바라보았을 때 오늘 현우와 함께 땅을 판 사건은 작지만 매우 큰 도전이었다. 현우와의 시간이 좋았다는 시훈이의 한마디가 내가 시훈이 삶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의미로 들려 뿌듯했다. 철저히 내 중심에서 해석한다면 말이다. 이런 자의적인 해석을 동력 삼아 내가 교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잘 교육한다는 것에 대한 정답이 없는 교실 현장에서 아주 작게나마 아이들과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 또한 나의 작은 도전이다. 나의 작은 도전을 응원해 주는 이들은 바로 내가 응원해 주었던 바로 그 아이들이다. 시훈이의 눈빛과 말투에서 “선생님, 좋았어요.”라는 그 말이 나에게 “잘했다. 잘하고 있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나도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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