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탓하는 아이들
앞에 이야기했던 서희처럼 오늘 바깥 놀이시간에 나의 눈에 들어온 아이는 주아였다. 그날 주아는 슬프면서도 멍한 얼굴로 미끄럼틀 아래 서 있었고 주아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친구 가연이가 함께였다. 요즘 주아에 대해 종종 그의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친구인 하율이와의 관계가 순탄치 않다는 내용이 주된 내용이었다. 미끄럼틀 아래 주아 표정을 보는 순간 그의 담임 선생님이 내게 하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떨 때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해요. 하율이가 그렇게 싫다고 하는데 계속 같이 놀자고 하고, 하율이는 그러면 주아를 우습게 보니까 주아한테 자주 화를 내더라고요.”
주아가 따라다니는 하율이라는 아이는 여섯 살 반에서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여자아이였다. 키도 크고 늘씬한 데다 동작도 빠르고 민첩해서 어려운 줄넘기를 폴짝폴짝 잘도 넘었다. 또 언제나 “선생님! 이거 봐요. 저 어때요? 잘하죠. 제가 할게요.”라며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분명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하율이 앞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순한 양이 되었다. 그와는 반대로 주아는 늘 하율이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아이다. 하율이가 하는 놀이를 따라 하다가도 하율이가 싫증이 나서 다른 놀이를 하러 가면 주아는 하던 놀이도 던져버리고 하율이를 황급히 따라간다. 아침에 등교할 때도 가방을 내리기도 전에 하율이가 왔는지 살펴보며 하율이가 누구랑, 무슨 놀이를 하고 있는지 가장 관심 있게 살펴본다. 이러한 주아의 하루는 하율이의 기분에 따라 정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율이가 주아와 잘 놀아주면 기쁘고 행복한 하루이며 하율이 심기가 불편하면 주아는 하율이 기분을 살피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날도 주아는 하율이의 감정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지배당한다는 의미가 너무 강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으나 주아의 모습은 정말 하율이에게 지배당하는 것 같았다. 직감적으로 주아에게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주아야, 무슨 일이야?”
“하율이가 나한테 따라오지 말라고 화내고 갔어요.”
평소 주아를 향한 하율이의 행동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지라 하율이가 주아에게 어떻게 화를 냈을지 짐작이 되었다. 순간 주아에게 벌어진 일들이 마치 나의 일이라도 된 것처럼 화가 났다. 하율이를 불러서 한마디 해야겠다 하고 생각하다가 그러면 오히려 하율이가 주아를 더 괘씸하게 생각할 것이라 생각되어 멈췄다. 대신에 주아를 설득해 평소 자기에게 무례하게 하는 하율이 행동을 주아가 스스로 인지하고 자기 권위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아야, 주아는 하율이가 너한테 그렇게 화를 내고 가면 어때?”
“속상해요.”
“그러면 주아는 하율이한테 화내면서 이야기한 적이 있어?”
(잠시 대답 없이 고민하다가) “아니요, 없는 것 같아요.”
“그렇구나. 그런데도 주아는 하율이랑 같이 놀고 싶어? 하율이가 계속 화를 내는데도?”
“네, 하율이가 좋아요.”
“ 그렇구나. 그러면 너랑 놀고 싶지 않다고 해서 계속 너한테 화를 내는 하율이 행동은 괜찮은 행동인 것 같니?”
(잠시 고민하다가) “모르겠어요.”
나의 다그치는 질문들이 어려웠을까? 아니면 듣기 거북했을까.
나는 그동안 하율이가 주아와 지극히 놀기 싫어하는 것 같으면서도 심심하거나 놀이할 친구가 없으면 같이 놀이하고, 놀이할 거리가 많거나 옆에서 놀 친구가 있으면 주아를 귀찮게 여기며 쉽게 화를 내는 등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하율이가 내심 괘씸했다. 필요할 때만 찾고 필요 없을 때는 치워버리는 듯한 행동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 이입된 것이다. 또한 이런 하율이의 행동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주아도 답답했다. 나뿐만 아니라 담임 선생님이나 다른 선생님들도 하율이에 대해서는 친구에게 못되게 구는 아이, 그리고 그 옆에서 늘 하율이에게 지배당하는 주아는 불쌍하고 안타깝기 짝이 없는 아이로 비치고 있었는데 이러한 장면들 또한 바로 잡고 싶었다.
사람들의 관계란 것이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 동등한 위치와 시선에서 존중하고 존중받아야 마땅한 것인데 하율이와 주아는 서로를 힘들어하고 있는 양상이었으므로 두 아이의 적정 거리가 필요해 보였다.
아직은 하율이에 대한 괘씸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기에 중립적이고 편견 없이 말할 자신이 없어 대신 주아에게 하율이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이야기를 이어갔다.
" 선생님은 좋은 친구는 서로 이야기할 때 화를 내기보다는 친절한 말로 이야기하는 거라고 생각해."
우리가 살면서 정의할 수 있는 좋은 친구의 의미는 훨씬 깊고 넓을 테지만 지금 이 순간 주아를 깨우치게 하기 위해선 아주 심플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절하게 말하는, 상대를 존중하며 소통하는 친구 관계의 기본 요건에 대해 먼저 이야기했다. 나의 이야기에 주아가 좀 더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옆에 있는 가연이를 끌어들여 물었다.
"가연이 생각은 어때?"
나의 예측대로 가연이도 같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힘 있게 끄덕였다.
가연이까지 가세해서 나의 이야기에 힘이 실리자 나는 다시 주아를 바라보며 좋은 친구에 대한 나의 생각을 덧붙여 전달했다.
"주아야, 화가 나는 상황이면 누구든 화를 낼 수는 있지. 그건 엄마도 아빠도 선생님도 큰 어른들도 화가 나면 화를 내기도 해. 그건 너희들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오늘 선생님이 주아와 하율이를 보니까 주아는 어떤 잘못을 했는지 잘 모르고 하율이는 마치 이유 없이 너에게 화를 내고 간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진 거지. 화가 나는 상황이면 화를 낼 수 있지만 이유 없이 너에게 화내는 행동을 반복하는 친구의 태도를 계속 참아내는 것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야. 주아 생각은 어떤 것 같아? “
나는 주아가 하율이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가질 수 있도록 나름 열심히 설명했다. 이내 주아는 좀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는데 마치 ‘그런 게 있었어?’라는 놀라는 표정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표정 같기도 했다.
마침 나와 주아가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하율이가 멀리서 다가왔다. 하율이는 해맑은 표정으로 “선생님, 무슨 얘기하고 있어요?”라고 이야기했다. 하율이는 이 상황이 자신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리라. 대체적으로 아이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면 겉으로는 숨기거나 외면할지라도 그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나는 하율이에게 느낀 나의 감정을 최대한 숨기고 하율이가 주아에게 했던 행동에 대해 질문을 이어갔다.
“하율아, 네가 주아에게 화를 냈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야?”
“네.”
하율이의 목소리는 당당했다.
“그런데 하율이는 왜 주아에게 화가 났어? 주아가 뭘 잘 못했어?”
“네, 내가 다른 친구랑 놀고 싶은데 주아가 자꾸 따라와요.”
주아를 속상하게 해 놓고 당당하고 힘 있게 이야기하는 하율이 모습에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개인감정으로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할 순 없는 노릇으로 터져 나오는 나의 감정을 꿀꺽 삼켰다. 더군다나 하율이에게 이런 나의 감정이 들킨다면 그것 또한 교사로서 부끄러울 노릇이었다.
“하율이는 주아가 싫다고 하는데 따라다니는 게 싫구나.”
“네.”
나는 하율이의 생각을 주아가 들을 수 있도록 하율이 생각을 정리해서 이야기했다. 왜냐하면 하율이가 어떤 부분을 불편하게 생각하는지 주아가 직접 듣는다면 오히려 주아의 판단이 더욱 명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도 아이들 문제에 나의 감정이 섞이지 않을 수 있으므로 나는 종종 아이들의 이야기를 서로가 들을 수 있도록 정리된 문장으로 되돌려준다. 사실 하율이의 당당한 목소리와 태도는 마치 그동안 하율이가 의도적으로 주아를 괴롭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싫다고 하는데 계속 따라다니는 주아의 행동은 괜찮은 걸까? 하율이 입장에서도 고민해 볼 부분이었다.
나는 교사가 되어서 정말 하지 말아야겠다고 늘 다짐하는 것이 있는데 아이들과의 갈등을 중재할 때 ‘잘잘못을 심판하는 판사가 되지 말자’라는 것이다. 이유는 교사라고 해서 늘 아이들의 갈등을 완벽하게 중재할 수 없으며 가끔 나에게 그런 권한이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들기도 하고 아이들 개개인의 삶에서 비춰보면 양쪽의 입장이 모두 이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의 갈등을 중재할 때 항상 갈등 당사자가 서로의 생각을 직접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는데 주로 모든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성인보다 유연하기에 서로의 생각을 말하고 듣고 이해하고 때로는 공감하며 생각보다 쉽게 갈등을 해결한다. 그래서 오늘도 주아와 하율이 문제를 그렇게 해결하려던 참이었지만 매 순간 어찌 해결해야 할까 고민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율이는 적어도 오늘은 주아와 그만 놀고 싶고 다른 친구랑 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주아가 계속 놀자고 하니 그 부분이 불편했으리라. 하율이의 어려움도 어느 정도 짐작이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하율이가 좀 더 따뜻한 태도를 보여준다면, 하율이가 그렇게 나쁜 아이로만 비춰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주아 또한 하율이에게 좀 더 독립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면, 주아도 덜 상처받고 당당하게 친구 관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오늘의 상황이 두 아이에게 중요한 사건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아이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같이 놀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최선일까?
주아 입장에서 나를 그렇게 싫다고 하는 친구가 정말 좋은 친구일까?
그렇다면 하율이는 자신의 불편함을 참고 친구와 함께 놀아야 하는 것일까?
주아가 자신에게 맞는 좋은 친구를 만나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주아가 맹목적으로 하율이를 따라다니기보다 하율이가 자신에게 하는 행동에 대해 조금은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율이와 놀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주아가 자신에게 반복적으로 화를 내는 친구의 행동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하율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싫다고 여러 번 이야기하는데도 계속 놀이를 방해하듯 따라다니는 주아의 모습도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하율이 기분을 살피며 조금은 조심스럽게 나의 생각을 이어 나갔다.
”하율이가 다른 친구랑 놀고 싶은 마음도 중요한 마음이지. 주아가 하율이를 좋아해서 같이 놀고 싶어 하는 마음도 중요한 마음이고. 그렇지만 하율이가 그 마음을 위해서 주아에게 화를 내는 방식으로 표현하면 주아도 하율이도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 “
”네, 알겠어요! “라고 이야기를 하며 하율이는 나의 이야기를 뒤로하고 친구들과 놀이하던 것을 이어가기 위해 큰 소리로 웃으며 놀이터 주변을 뛰어다닌다.
덩그러니 남겨진 주아 얼굴이 복잡해 보인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선생님이 개입했으니 하율이가 자신과 놀 것이라고 예측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하율이에게 ‘네가 아닌 다른 친구와 놀고 싶어.’라는 말이 마음에 새겨지는 일만 당했다.
"주아야, 지금은 하율이가 너랑 놀기는 좀 어려운 것 같은데, 오늘 선생님이 한 이야기를 잘 생각해 보고 주아가 앞으로 하율이와 어떻게 지내면 좋을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지금은 뭐 하고 놀이할래?"
"줄넘기요."
"그래, 가연이는?"
"줄넘기요."
"그럼 같이 할 거니?"
두 친구는 끄덕이고 줄넘기를 하러 간다. 내가 던진 질문에 복잡한 마음을 갖고 있을 주아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줄넘기를 하는 주아를 지켜보고 있었다.
주아가 갑자기 줄넘기를 하다 멈추고 "쟤 때문에 그래요."라고 혼잣말인 듯 아닌 듯 나를 향해 이야기한다.
"쟤? 쟤가 누구야?"
"나요. 나 때문이요." 나는 놀란 마음으로 주아를 바라본다.
"그게 왜 주아 때문이야?"
"내가 일찍 태어나서 그래요. 잘.. 못해서 그래요."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순간 나의 귀를 의심했다. 내가 예측하지 못했던 의외의 답이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반문했다. 그러면서 일찍 태어난 것과 지금 생각은 어떤 개연성이 있는 것인가 머릿속으로 빠르게 추측했다. 평소 주아 문제에 대해서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주아 엄마가 첫째인 주아보다 동생이 훨씬 영리하고 그에 비해 주아는 좀 느리다는 것, 어렸을 때 출산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나서 늘 염려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얼핏 들었던 기억과 연결되었다. 아마도 평소 주아는 자신이 또래, 혹은 동생보다 잘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 생각이 자신과 하율이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 원인이 자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게 도왔을 것이다.
나는 순간 주아가 너무 딱했다. 요 어린것도 이렇게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구나. 나는 주아 가까이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주아는 주아가 잘 못해서 하율이가 주아한테 화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렇지만 좋은 친구는 네가 잘 못할 때 화를 내지 않고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는 친구야. 그리고 일찍 태어나도 늦게 태어나도 누구나 다 잘하진 못하지. 또 잘 못한다고 해서 친구가 화를 내는 모습을 그대로 참아야 하는 건 아니야. “
나는 주아의 표정을 살피며 나의 생각을 천천히 전달했다. 나의 이야기를 통해 잘 못한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혼이 나고 배제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아 스스로의 생각에 조금은 의문을 가지길 바랐다. 그리고 그 의문이 주아가 나에게 좋은 친구는 어떤 친구인가를 고민해 보는 시작이 되길 바랐다. 주아는 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생각하는 듯했다. 어떤 생각을 이어갔는지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곧 점심시간이 다 되어 우리는 놀이를 정리하고 교실로 들어가야 했다. 주아가 걱정되는 마음,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지만 한 편에 주아가 이를 잘 딛고 일어나길 바라는 응원의 마음도 함께 있었다.
오늘 있었던 일들을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 주아와 하율이 사이에 대해 우리는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터라 주아를 도울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우리는 주아가 스스로 이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러기 위해서는 주아가 자신의 강점을 찾고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며칠 후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주아가 한글을 잘 읽는 것을 친구들 앞에서 소개하고 주아가 다른 친구들을 도울 수 있도록 했다고 이야기했다. 주아에게 도움을 받는 친구 중에는 하율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율이는 나를 보고 한글 쓰기를 주아 도움을 받아서 했다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은 아직 한글을 잘 못 쓴다고 이야기했다.
”아직은 한글이 어렵지. 누구나 처음은 어려워 하율아, 그래도 친구에게 잘 배우는 하율이가 참 대단하다. 선생님은. “
내가 하율이를, 주아에게 함부로 하는 아이라고, 나의 감정대로, 나의 기준대로 바라봤다면 어땠을까?
내가 주아를 딱하디 딱한 아이로, 그 아이의 삶이 마치 나의 삶인 것처럼 대변하고 대신 해결해 주었다면 그다음 장면은 어땠을까?
교실에서 만나는 많은 아이들의 갈등은 소재는 다르지만 성인인 우리가 삶에서 겪는 갈등과 그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종종 나는 아이들의 갈등이 나의 일인 양 빠르게 감정 이입이 되기도 하고 눈물도 나고, 화가 나기도 한다. 나는 그런 나의 모습을 너무 잘 알기에 교실에서 발생하는 갈등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거리를 두기 위해 애쓴다. 그러면서 한쪽으로 기울어진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닌지 경계하고, 내가 대신 해결해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아이의 연속되는 삶에서 스스로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한다.
어쩌면 주아는 오늘 자신이 겪은 일들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 주지 않는 나에게 답답한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주아가 오늘의 경험을 통해 그동안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친구와의 관계에 있어서 자기의 모습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더불어 시간이 흘러 모든 관계의 어긋남에서 ‘나 때문이야’라는 결론보다 나에게 좋은 사람은 누구인지, 또는 서로에게 건강한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를 고민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율이 또한 너무 가까이 있는 주아가 불편하고 흐릿한 존재였을 테지만 주아의 독립을 통해 온전히 주아를 바라보게 된다면 오히려 둘의 사이가 서로 존중하는 사이로 발전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아이들이 아주 작은 교사의 개입으로도 각자의 어려운 상황을 훌륭히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교사는 아이가 스스로 자책하고 있다면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다, 네가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진심 어린 눈으로 바라봐주는 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도 교실 교실마다 친구들과 고군분투하는 모든 여섯 살 아이들과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선생님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