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을 대하는 마음

본질은 사람을 향해 있다

by 안녕별

나의 두 딸은 어렸을 때부터 데리고 다니던 토끼 인형이 있다. 그 토끼 인형은 우리 아이들의 사진에 늘 등장하며 여행을 갈 때는 이미 짐으로 넘쳐나는 차 안에서 보란 듯이 한자리를 차지한다. 잘 때는 늘 우리 딸아이 옆에 혹은 품에 자리 잡고 함께 꿈을 꾼다. 내가 그 인형들을 빨아야겠다고 선언하면 세탁기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인사를 하거나 세탁기에서 나온 후에 찌그러진 모습에 마음 아파하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종종 장난기가 발동해서 토끼의 귀를 잡고 눈앞에서 흔들며 토끼탕을 해 먹겠다고 선언하며 깔깔 약을 올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우리 딸들은 나를 흘겨보며 얼른 토끼를 품에 안아 데려간다. 처음엔 아이들이 인형에 애착을 갖는 모습이 그냥 모든 아이들이 그러듯 우리 아이들도 그들이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지극히 평범한 유아적인 사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순한 유아적 사고라고 하기에 우리 딸들은 이미 중학생, 초등학교 고학년의 나이니 아직까지 그 인형이 소중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 두 딸만 그렇진 않을 듯한데 우리 딸들은 유난히 토끼인형에 마치 영혼이 있는 것처럼 그들을 대우(?)하고 있다. 베개를 마련해 소중히 눕히고 어쩌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아빠 발에 차이기라도 하면 인형이 아파할까 봐 빠르게 아빠 발을 치운다. 또 잠들기 전엔 잘 자라고 속삭이기도 하고 이제는 여행 때까지 데리고 다니진 않지만 긴 시간 자리를 비울 때면 더 각별히 그들의 자리를 정돈하고 인사한다. 아이들의 그런 모습이 이제는 익숙해져서 나도 침대 정리를 할 때 그들을 소중히 다루거나 잘 정돈해 주는 행동을 한다. 그럴 때면 묘하게도 그들이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건 무슨 느낌일까?


하루는 협의가 있어 원장실로 향하던 길에 유치원 복도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별 의미 없이 아이들의 놀이를 바라보며 이동하던 중에 어느 교실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이유는 교실 한 복판에 지퍼백으로 만든 링거를 맞고 누워있는 가오리 인형 때문이었다. 그 장면을 보니 그 과정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어떤 놀이를 했을지 상상이 되어 나도 모르게 교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실 안에서 아이들은 모두 평온하게 각자의 놀이를 하고 있었고 가오리만 덩그러니 링거를 맞고 있었는데 담임선생님께 여쭤보니 선우가 돌보는 인형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선우는 가오리를 돌보면서도 책상에 앉아서 이것저것 만드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나는 이 장면이 유치원의 교육을 모두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가오리를 살아있다고 가정하고 돌보는 것이 가능한 곳이 유치원이며 그 돌봄의 마음을 존중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교사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내가 그날의 장면을 만나면서 짧게 기록한 장면이다.

여기에서 드러난 모습은 살아있지 않는 동물 인형을 마치 살아있다는 듯이 대우해 주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바로 내가 집에서 매일 같이 만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럼 나는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연령대의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이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서로 다른 이 두 개의 장면, 내가 집에서 만나는 장면과 교실에서 만났던 장면이 하나의 생각으로 이어졌다. 선우는 가오리 인형을 어떤 마음으로 돌보았을까? 아마도 선우의 상상 세계에서 가오리가 아프다는 상황을 설정했을 테고 그 상상 속에서 가오리를 치료하기 위해 링거를 맞혔을 것이다. 우리 집에서 아이들이 아빠의 발에 차인 인형을 보았을 때 얼른 일으키는 마음. 인형이 아팠을까 봐 안타까워하고 돌봐주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마음. 그럼 이 두 가지의 마음은 서로 다른 것인가? 우리 아이들이 다치면 마치 내가 다친 것처럼 속상하고 아파하며 돌봐주는 엄마의 마음. 이 마음과 견주어 보았을 때 그 본질은 서로 다른 것인가? 나는 이 모든 마음들이 사람들에게 있는 연민의 마음. 돌봄의 마음. 따뜻함과 배려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인형을 돌보는 마음이 내가 우리 아이들을 돌보는 마음과 그 본질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사람을 향해 있는 이 마음은 단순한 유아적이고 유치한 행동으로 치부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고귀하게 길러져야 하고 보존되고 존중받아야 마땅한 마음이다. 유치원에서는 이러한 마음들이 보존될 수 있도록 장소와 시간을 제공하고 협력하고 지원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놀이는 존중받고 권장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나는 우리 딸들의 인형을 돌보는 마음이 사람에게 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어른,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는데 우리 딸들의 인형 돌봄 행동은 매우 중요한 행위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인형을 돌보는 마음에 공감한다. 또한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인형을, 동화 속 주인공을, 작은 개미들을 돌보는 마음을 기르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성장해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돌보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기여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러한 행동은 더 많이 권장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