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싫다고 말할 걸

남과 여 그 사이에 대하여

by 안녕별

내가 초등학교병설유치원에서 근무했을 때의 일이다. 이제 곧 있으면 초등학교 1학년으로 진학하는 일곱 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우리 반에는 남자 친구들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학기 초에는 심지어 여자 친구가 1명이었다가 이웃 유치원에서 전학 온 친구들 덕분에 4명으로 늘어났다.

하루는 그 4명 중에 한 명인 세희가 종이 박스로 놀이 집을 만들어 커다란 텐트 안에 박스 집을 넣어놓고 고양이 놀이를 하고 있다.

텐트 안에는 세희를 포함하여 우리 반에 있는 유일한 여자 친구들 4명이 함께 있다.

텐트 주변에서는 민학이와 시원이가 함께 놀고 싶은 마음에 세희를 비롯한 친구들의 놀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텐트 안에서 놀고 있던 지안이와 세희는 두 남자아이들을 향해 쏘아보며 적대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두 여자아이들의 적대적 감정은 시원이에게 좀 더 쏠려있는 듯했다.


“보지 마! 남자들은 안돼.”


사실 이러한 장면은 유치원에서 매우 흔한 놀이 장면이다.


여자들끼리만 할 수 있어. 이건 남자만 할 수 있는 놀이야.


늘 익숙했던 그 장면이지만 보기만 하는 것도 안된다고 하며 과민하게 반응하니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시원이를 쏘아보던 여자아이들의 눈빛이 맘에 걸렸다. 나는 세희가 굳게 닫아놓은 텐트 틈사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근데 세희야 왜 남자들은 안돼?”

“남자애들은 자꾸 방해해서 안 돼요.”


“그럼 그냥 보기만 해도 방해가 되는 거야?”


“네, 방해 돼요. 자꾸 장난치는 것 같아요.”


사실 나는 평소 세희가 시원이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몇 번 관찰했었다. 몇 번은 정말 시원으로 인해 놀이가 방해되고 불편했을 것이었다. 시원이는 인상에서도 얼마나 개구쟁이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시원이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였다(적어도 나에겐). 하지만 교실에서는 성인인 나의 시선에서 사랑스러운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도 늘 사랑받진 않는다. 나는 세희가 시원이에게 가진 부정적인 생각을 조금은 다른 시선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 혼자 고민하고 있는 동안에도 세희의 폭로는 이어졌다.


“시원이는 장난이 심해요.”


세희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던 시원이. 사실 개구쟁이 시원이는 친구들이 자신에 대해 비판적으로 하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평소에 겉으로는 담담해 보였다. 어쩌면 전혀 타격감이 없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오늘 세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시원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 보이기도 하고 무표정하지만 살짝은 슬퍼 보이기도 했다.


"시원아, 세희는 아마도 시원이가 방해하지 않는다면 같이 노는 것도 괜찮다고 할 거야. 세희한테 다시 물어볼까?"


“세희는 나를 싫다고 말할걸요.”


“그럼 물어보자, 정말 그런지. “


난 아이들을 여러 해 관찰하면서 느낀 것이 있는데 아이들은 행동을 싫어하는 것이지 그 아이 자체를 싫어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싫어하는 행동만 조금 개선하면 사이가 회복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오늘도 그 방향으로 이야기를 나눠볼 셈이었다.


“세희야 시원이가 싫으니?”


“시원이는 장난이 심해요.”


“시원이가 장난을 치지 않는다면 괜찮니?”


“네, 친절하면 괜찮아요.”


내가 세희랑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지켜보던 시원이는 더 이상 보기를 멈추고 자신의 놀이를 하러 갔다.

시원이가 그림을 그리는 사이에 평안이가 여자 친구들의 텐트로 들어갔다. 이를 발견한 시원이.


“어? 뭐야!”


시원이는 자기는 안되고 다른 녀석은 왜 되는 것일까 황당해하는 모습이었다.

이를 눈치채고 내가 얼른 세희에게 물었다.


“세희야, 평안이는 남잔데 놀이에 어떻게 들어갔어?”


“평안이는 친절해서 괜찮아요.”


“그럼 친절하면 들어갈 수 있는 거야?”


“네.”


사실 나는 친절하면 시원이가 함께 놀이할 수 있음을 알리기 위해 세희와의 대화를 좀 더 목청껏 이야기했다. 멀리서 시원이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지만 나와 세희의 대화를 모두 들었으리라. 잠시 멈칫하던 시원이는 세희와 나의 대화에 잠시 집중하는가 싶더니 다시 그림 그리기에 몰입했다.


놀이를 마치고 나서 오늘 세희와 시원이의 일을 떠올려 서로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서로 다른 성이기 때문에 편견을 갖고 있지는 않는지, 혹은 평소의 행동으로만 판단해서 친구에 대해 오해하고 있진 않은지 아이들이 한 번 더 고민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세희와 시원이가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 수 있도록 평소 시원이가 세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했다.


시원이는

“세희는 예쁘지만 나를 자꾸 혼내요.”라고 이야기하며 조금은 수줍게 웃었다.

자신이 내뱉은 말을 끝으로 세희 눈치를 보는 시원이.

세희는 시원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의 질문에 세희는

“시원이는 장난을 많이 치지만 재미있어요.”라고 이야기한다.

세희의 이야기를 긴장하며 듣고 있던 시원이.

장난을 치지만 재미있다는 세희의 평가에 시원이는 활짝 웃어 보이며 기쁜 마음을 표정에 담아 그대로 드러낸다.

나는 시원이에게 한 발 더 나아가 세희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그 마음을 전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시원이는 대답 없이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시원아, 지금 친하게 지내자고 이야기해 보자.”


“세희야, 친하게 지내자.”라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씩 웃는 시원.


세희도 이에 화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세희, 시원이 이외에도 모든 아이들이 서로 다른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 해 볼 수 있도록 하였는데 아이들은 평소 친구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매우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아이들과 흥미롭게 이야기를 마무리 하고 점심식사를 준비하려고 하는데 내 앞에서 우물쭈물 망설이던 민학이가 나에게 귓속말로 이야기 한다.


“선생님 세희는 예민하지만 따뜻해요.”


나는 민학이의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도 같은 생각이야. 세희를 잘 관찰했구나.”라고 이야기했다. 민학이가 생각한 세희의 모습에서 나도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민학이의 수상적은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시원이는 무슨 말을 했는지 나에게 되물었지만 나는 비밀이라며 그 내용을 알려주진 않았다.


식사를 다 마치고 바깥놀이 시간이 되었다.

저마다의 놀이가 시작되고 세희와 지안이는 종합놀이 놀이기구 위로 올라가 좀비놀이를 시작한다.

세희가 높은 곳에 올라가 시원이에게 소리친다.


“김시원! 네가 좀비해!”


다른 놀이를 하려고 모래놀이 도구를 손에 들고 있던 시원이. 세희 목소리에 멈칫하고 잠시 망설인다.

그러다 곧바로 좀비 모드로 돌변하는 시원이.

시원이는 최선을 다해 좀비 흉내를 내며 세희를 잡으러 간다.

세희는 소리를 지르며 즐겁게 웃는다.


아이들은 유연하다. 아이들은 솔직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오늘 세희와 시원이의 모습, 그리고 잠깐 지나갔던 민학이의 이야기에서 나는 왠지 모를 따뜻함을 느꼈다.


나는 어떤가

나도 나와 만나는 사람들을 편견 없이 대하고 있는가.

나의 시선이 편견인 줄 알고 난 후에 아이들처럼 유연하게 사고하는가

나는 나의 편견을 수정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가.


다시 돌아가야겠다. 아이처럼.

세희와 시원이가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니는 놀이터 속 장면이 나의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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