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우가 헷갈려

이빨이 빠져서 그런가

by 안녕별

지금의 학교가 아닌 이전 병설유치원에서 일곱 살 반 아이들을 가르칠 때였다. 나는 종종 아침에 아이들이 들어올 때의 표정을 살펴본다. 이유는 아이들이 아침에 어떤 일들을 겪고 오는지에 따라 그날 일과에서 얼마나 갈등이 일어나는지 등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과 아침에 기분을 묻고 스몰토크를 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날 나의 레이더 망에 들어온 아이는 도경이. 도경이는 매우 짓궂고 나의 다른 스토리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아이일 정도로 재미있는 일화가 많은 친구다(개인정보로 이름은 매번 바꿔 기록한다). 그는 아침에 종종 엄마한테 혼이 나서 등교하면 시무룩하게 등교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그런 날 중에 하나인가 라는 예측을 하며 도경이를 맞이했다. 아침에 가방 정리하는 것을 도우면서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내가 먼저 물었다. 도경이는 내 말을 듣자마자 엄마가 보고 싶다면 울상을 짓는다. 그래서 평소처럼 아침에 엄마에게 혼이 났는지, 아니면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이야기하는데 일단 자초지종을 모르니 혼이 난 상황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성인처럼 자신의 생각을 정교하게 표현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교사들은 언제나 생략된 아이들의 말을 찾아내는데 많은 에너지를 쓴다. 나는 생략된 말을 찾다가 어려울 때는 종종 부모님들께 도움을 요청하는데 그것인 아침 등교시간일 때는 더욱 그렇다. 도경이 어머님께 잠깐 전화를 걸어 도경이가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으니 도경이 어머님은 오후에 일찍 데리러 오라고 이야기했었는데 그래서 일수도 있고 그 외에는 별일이 없었다고 이야기를 하셨다. 그래서 나는 일단 교실에서 다시 이야기를 나눠보겠노라고 전하고 도경이를 돕기 위해 전화를 걸은 것이니 염려는 말라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이제 답을 도경이에게 듣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오후에 왜 유치원에서 일찍 가고 싶은지 질문했다. 이유는 같은 반 친구인 건우와 오후에 아파트 놀이터에서 함께 놀이하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를 하며 덧붙이는 말이 건우가 놀이터에서 놀이할 때는 건우 누나랑, 형아랑, 나랑 잘 놀지만 유치원에서는 거꾸로 인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거꾸로?'

잠깐 고민하다 도경이 말의 의미를 좀 더 분명하게 알아듣기 위해 다시 고쳐 물었다.


"건우가 놀이터에서는 너랑 잘 놀이하는 것 같은데 유치원에서는 너랑 잘 놀지 않는 것 같다는 뜻이야?."

"네.... 건우가 왜 그러냐. 헷갈려...."

혼자의 생각을 밖으로 말하는 도경이는 정말 건우의 행동이 헷갈리는 듯 보였다.

"그럼 건우가 왜 그런 거 같다고 생각해 너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 그럼 좀 더 고민을 해보자. 건우가 왜 그런지. 건우한테 물어볼 수도 있고."

잠깐 고민하던 도경이는 자기 생각을 이어 붙여 이야기한다.

"건우가 나보다 힘이 세서 그런가?"

"건우가 힘이 세서 너랑 놀 때도 있고 안 놀 때도 있는 거야?"

"그리고 건우는 한글도 잘 알아요."

"음.. 건우가 힘도 세고, 한글도 잘 알고 그래서 도경이랑 잘 놀 때도 있고 놀지 않을 때도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네.."

"건우만 잘하는 게 있는 건 아닌데. 그럼 너는 어떤 거 같아? 너는 뭘 잘하는 것 같아? 건우처럼?"

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도경이는 당황했는지 즉답하지 못하고 잠시 망설인다.

성인인 나도 아마 도경이와 같은 반응이지 않았을까 싶다.


"모르겠는데."


도경이의 짧은 대답이었지만 순간 도경이가 건우와 자기 자신을 비교할 때 스스로 부족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지점에 깜짝 놀랐다. 도경이는 워낙 짓궂고 목소리도 크고 누군가 잘하는 것이 있어 내가 관심을 보이면


"나도 잘하는데, 나도 해 본 적 있는데."


하며 순식간에 그 근처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던 터라 더 그랬다. 사실 도경이의 비교는 어떤 면에서는 정확한 부분도 있었다. 건우는 정말 줄넘기도 잘하고 한글도 잘하고 모든 면에서 모범적인 면이 많았기에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아이였다. 그래서 도경이는 건우가 책을 읽으면 책을 따라 읽고, 건우가 블록으로 만들기를 하면 하던 놀이도 팽개치고 블록 만들기를 하러 갔다. 건우는 도경이에게 우상 같은 존재였다. 도경이가 건우를 좋아하고 따르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도경이 스스로가 건우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다. 나는 순간 도경이가 건우 행동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도경이가 잘하는 것을 같이 찾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도경이가 점토로 만들기를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넌 어때?"

"아닌데. 건우가 더 잘 만드는데."

"그래?"

"선생님은 네가 건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럼 도경이가 잘하는 것은 뭔지 같이 찾아보자."


그래서 그날은 도경이를 따라다니며 도경이가 주로 하는 놀이는 무엇인지 도경이가 어제 보다 조금 더 발전한 부분은 무엇인지 꼼꼼하게 관찰했다. 도경이는 정말 점토 만들기에 재주가 있었는데 그동안은 잘 만든 점토 결과에 대해 스쳐 지나가는 칭찬은 했으나 그 점토의 결과가 도경이에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읽어주었던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점토를 만들고 있는 도경이에게 다가가 도경이가 만드는 점토에 관심을 보이고 어려운 것을 해내는 도경이를 진심으로 격려했다.


건우에 대한 도경이의 의문은 그날 바로 해결되진 않았다. 대신 건우에게 도경이가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이할 때 건우랑 친하게 지내는 것을 매우 좋아하더라는 이야기는 살짝 전했다. 똘똘한 건우는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건우는 유치원에서는 현준이와 놀이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데 아마도 현준이와 놀이하다 보면 도경이에게 소홀해지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건우의 상황도 있기 때문에 강요할 순 없는 노릇으로 도경이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내가 더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도경이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평가라는 생각이 들어 그날 이후로 나는 도경이가 평소 자신의 능력에 대해 스스로 인식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데 좀 더 집중했다. 또한 도경이의 어머님과 짧은 통화를 통해 내가 무엇을 주로 관찰하고 있는지, 가정에서는 어떤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한지 함께 안내드렸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도경이는 나에게 스스로 완성한 점토를 가져와서 소개했는데....

도경이 점토 완성 기록.png

도경이는 매일 무심코 만든 자신의 점토 결과물에 대해 자신의 가치를 찾아냈다.


우리의 일이 있은 후 한참이 지나고 도경이가 치아를 발치한 시기즈음이었던 것 같다. 도경이와의 짧은 대화가 너무 재미있어 기록으로 남겨놨었다. 이유는 그 시기에도 나는 도경이가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늘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루였다. 도경이가 평소에는 동생들에게 늘 인식이 각박했었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동생들에 대한 도경이의 태도가 매우 따뜻해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종종 나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전하기를 좋아하는데 그날도 그대로 도경이에게 요즘 왜 이렇게 동생들에게 따뜻해졌냐라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이빨이 빠져서 그런가?"


하하하.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대답. 하지만 도경이 표정은 사뭇 진지했기에 깔깔 웃지는 못했다. 다만 잊어버릴까 봐 얼른 기록해 놓았다.

도경이 이빨요정 기록.png

지금 도경이는 초등학교 시기를 지나고 있겠지. 나는 학교를 이동해서 도경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간혹 카카오톡에 올라오는 부모님의 프로필 사진으로 가늠하며 안부를 확인한다.


도경이 뿐만이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낮은 평가를 하고 있음을 발견하며 새삼 놀랄 때가 있다. 최근에 어떤 아이는 나의 발톱에 매니큐어가 칠해진 것을 보고 왜 칠했냐고 묻는 물음에 나는 자연스럽게 "선생님 발톱이 못 생겨서 칠했지."하고 농담처럼 대답했다. 그 아이는 저물어져 가는 목소리로 "내 발톱도 못생겼는데.."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 말에 나는 잠시 나보다 한참은 작은 아이를 내려다보았는데 요 작은 녀석도 자기 신체 일부에 대해 못생겼다고 평가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스치듯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의 스쳐가는 이야기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이 아이들의 삶과 연결되게 하는 것. 그것이 나는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도경이도, 발톱이 못생겼다고 하는 아이도, 스치듯 하는 한마디를 의미 있게 들어주는 한 사람이 내가 되도록 나는 늘 열려있기 위해 노력한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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