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책임감
죄책감은 나에게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건 끊임없이 떠오르는 목소리였고,
그 목소리는 하루 종일—밤낮 구분 없이—나를 공격했다.
처음 죄책감은 남편의 외도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남편이 바람난 건 나 때문이야.”
그 한 문장은 내 안에서 화살처럼 꽂혀 들어왔다.
내가 그 사람을 잘 보살피지 못해서
그 사람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못해서
내가 여자답지 않아서
내가 충분히 예쁘지 않아서
내가 피부병이 있어서…
(나는 아토피가 있다. 그런데 남편은 외도가 걸리자 변명으로 “네 피부 때문에 우리가 멀어졌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믿어버렸다.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내 성격이 너무 강해서
내가 여성스럽지 못해서
내가 사랑을 잘 표현하지 못해서
내가 돈 관리를 잘 못해서
나를 탓하는 이유는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도 스무 가지씩 더 만들어낼 수 있었다.
죄책감은 끝없이 돌아가는 공장 같았다.
나를 향한 비난을 계속 생산해 냈다.
그리고 묘하게도, 배신과 이혼 사이에서 내가 고통받고 있는데
그 시기 두 번째 죄책감이 밀려왔다.
이번에는 더 잔인한 형태였다.
“나는 엄마인데, 이혼을 결심했다.”
“아이들이 이렇게 어린데… 그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이혼을 감행하겠다고?”
“내 결정으로 우리 아이들의 가정을 내가 박살 내는 거다.”
“아이들은 아빠를 좋아하는데… 내가 떼어놓는 거다.”
가정을 지켜야 하고, 보호해야 할 엄마가
가정을 끝내는 선택을 한다는 사실이 나를 미치도록 괴롭게 했다.
나는 내가 책임지지 못한 삶의 대가를 아이들이 대신 짊어지게 만든다고 느꼈다.
“우리 아이들은 나 때문에 한부모 가정이 되었다.”
“아이들의 가장 큰 콤플렉스를 내가 만들어버렸다.”
이 생각들은 나를 거의 죽일 만큼 괴롭게 했다.
이건 단순한 죄책감이 아니었다. 완전한 자기 파괴였다.
내 안에서 나를 향해 휘둘러지는 칼이었다.
그 시기엔 신에게조차 나아갈 수 없었다.
기도하려고 눈을 감으면,
내 안에서 목소리가 올라왔다.
“네가 뭘 잘했다고 이제 와서 기도를 하니.”
“용서를 빌 자격도 없어.”
“너 때문에 모든 게 망가졌어.”
“넌 이걸 해결할 능력도 없다.”
밥을 먹으려고 하면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뭘 잘했다고 밥을 먹어. 너는 배고파도 싸.”
꽃을 볼 때면
“네가 뭘 잘했다고 웃어. 아이들의 인생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네가 무슨 자격으로 벚꽃을 좋아해.”
나는 벚꽃을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그해 벚꽃 아래에서
웃을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조차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졌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웃음이 나도
“네가 뭘 잘했다고 여유를 찾니.”
누군가 위로해 주면
“넌 위로받을 자격도 없어. 네가 다 망쳐놓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잔인한 목소리.
“넌 죽을 때까지 벌을 받아야 해.”
이 모든 것이 내 마음 안에서 끊임없이 울렸다.
보이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 목소리들.
하지만 나를 완전히 지배하던 목소리였다.
나는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내가 그렇게까지 미쳐버릴 만큼 죄책감에 시달렸던 이유는
단순한 “나는 잘못했다”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죄책감을 책임감이라고 착각하고 살았다.
특히 나처럼 책임감에 꽂힌 사람들은
이 둘을 더 구분하기 어렵다.
나같은 사람 말고도, 아래와 같은 특징의 사람들이 죄책감과 책임감 구분에 애를 먹을지 모르겠다.
착한 사람,
성실한 사람,
무조건 가정을 지키려는 사람,
리더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 둘을 거의 구분하지 못한다.
겉모습은 꽤 비슷하다.
하지만 내면의 성질은 완전히 반대다.
죄책감과 책임감은 묘하게 붙어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죄책감도 강하게 느끼고,
죄책감이 없는 사람은 무책임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둘이 연결되어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실제 성질은 완전히 반대다.
죄책감: 이미 지나간 일을 붙잡고 나를 계속 벌한다
책임감: 지금부터 무엇을 어떻게 바꿀지 미래로 나아간다
죄책감은 시간을 멈추게 하고,
책임감은 시간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
죄책감: “나 때문에 잘못됐으니 벌을 받아야 해.”
책임감: “나는 해결하고 바꿀 것이다.”
하나는 고통과 연결되고,
하나는 성장과 연결된다.
목적 자체가 다르다.
죄책감: “나는 잘못된 사람이다.”
책임감: “내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자.”
죄책감은 사람의 존재를 부정해 버리고,
책임감은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죄책감 → 몸과 마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책임감 → 추진력을 만들어낸다
둘은 정반대다.
죄책감: “나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책임감: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
죄책감은 삶의 운전대를 빼앗고 나를 뒷좌석에 던져놓는다.
책임감은 다시 운전대를 내 손에 돌려준다.
죄책감이 있을 때 사람은 숨고 고립된다.
“나는 잘못됐어… 이게 다 내 탓이야…”
하지만 책임감은 관계를 건강하게 만든다.
“내가 이 부분을 더 잘해볼게. 우리 같이 해결해 보자.”
책임감은 신뢰를 만들고,
죄책감은 관계를 끊는다.
죄책감과 책임감이 섞이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너진다.
‘나’라는 사람 자체.
내 삶의 운전대를 내가 잡지 못하고
죄책감이라는 악마가 핸들을 잡는다.
그 후 나는 버티고, 참아내고, 희생하고, 짐을 지고,
스스로를 끝없이 탓하면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스스로를 희생물처럼 바친다.
이건 책임감이 아니다. 진짜 아니다.
이건 악마다.
나는 이 죄책감을 ‘감정의 파편’으로 분류하지도 않는다.
이건 결이 완전히 다르다.
이건 나를 완전히 무능하게 만드는 악마 같은 감정이다.
나는 그 악마에게 오랫동안 잡혀 살았다.
그리고 나는 안다.
지금도 그 악마에게 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