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버리는 것이다.
세계가 깨지는 순간,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감정과 생각이
모두 중요한 것처럼 느껴진다.
슬픔, 분노, 수치심, 자기 비난, 공포…
이 모든 것이 ‘이건 붙잡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존의 조각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때의 마음은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이 감정 하나라도 놓치면
내가 완전히 무너져버릴 것 같아.”
그래서 심지어 나를 공격하고 파괴하는 조각들조차 (자기 비난, 죄책감, 공포, 집착)
생존에 필요한 조각처럼 착각된다.
그러나 회복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필요한 조각과 버려야 하는 조각을 구별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큰 조각을 먼저 잡았고,
그다음 작은 조각들을 정리했다.
그러면 이제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쓸모없는 조각을 버리는 일.
내 경험상,
회복은 “붙잡는 것”보다
“버리는 것”에서 더 많이 일어난다.
버려야 하는 조각은 크게 세 가지다.
이 조각은 처음엔 뭔가 분석하고 이해를 위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를 삼키는 심연'이다.
왜 그랬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도대체 언제부터였지
무엇이 진짜였고 무엇이 거짓이었지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이 질문들은
해결을 위한 질문이 아니라,
파괴를 재생산하는 질문이다.
아무리 답을 찾아도
당신의 세계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 조각은 사람을 과거에 가둔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계속 불을 켜는 것과 같다.
이 조각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이 조각은 가장 무겁고 가장 지독하다.
내가 이기적이라서
내가 잘못해서
내가 더 참았어야 했어
내가 더 예뻤다면
내가 더 노력했다면…
이 조각은 구조상
어디에도 끼워 넣을 수 없다.
세계의 지도를 다시 만드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조각은 퍼즐 조각처럼 생기지도 않았다.
모양 자체가 나를 향한 칼날이다.
이 조각을 쥐고 있는 한
다른 조각들(진짜 감정, 진짜 상처, 진짜 가치 - 이것들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하겠다)
모두가 왜곡된다.
그래서 이 조각은
“조각”이 아니라
버려야 하는 쓰레기이다.
버리는 순간
다른 조각들이 자리 잡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진다.
나는 이 죄책감 때문에 가장 많이 힘들었다.
모든 것이 내 잘못 같았고,
그 사람을 그런 사람으로 만든 것도 나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에게 큰 죄를 지은 것 같았고,
하늘이 나에게 인과응보로 벌을 내린 것 같았다.
죄책감이 너무 커서 하나님께 기도조차 할 수 없었다.
입을 열면 “죄송합니다”밖에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나 이 감정을 버리고 나서야 알았다.
필요 이상의 죄책감은
회복을 방해하는 가장 강력한 독이며
거의 악마와 같다.
죄책감과 수치심의 분해는 이후의 장에서 따로 다루겠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나는 끝났다
아이들은 괜찮을까
나는 혼자다
나는 다시는 행복할 수 없다
이 조각은 ‘미래’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공포가 만든 환상이다.
이 조각을 붙잡는 순간
미래 전체가 한순간에 어둠으로 가려진다.
미래가 공포로 덮일 때
사람은 현재의 감각을 모두 잃는다.
아이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공기의 온도도 느껴지지 않으며,
봄바람 속 벚꽃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공포는 모든 아름다운 감각을 차단해 버린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미래는 공포가 아니라
그저 빈 종이였다.
우리가 두려웠던 이유는
그 길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경험이 없으니 두려운 것이 당연하다.
진실은 단순하다.
미래는 아직 쓰이지 않은 종이,
그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 길이
어쩐지 조금 설렌다.”
공포의 조각을 버려야
우리는 미래를 다시 설렐 수 있고,
그 설렘을 위해
이성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버리라”는 말을 불편하게 느낀다.
“잊으라는 뜻인가?”
“없던 일처럼 하라는 뜻인가?”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기억은 버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버린다는 것은
기억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삶의 중심에서 치워두는 일이다.
“나는 이 기억이 내 삶을 지배하게 두지 않겠다.”
“나는 이 감정이 내 선택을 휘두르게 두지 않겠다.”
그 결단이 바로 버림이다.
다음 장에서는 버리는 과정에서 내가 가장 힘들어했던 죄책감을 분해하는 일에 대해서 써볼 것이다.
그 지독한 죄책감을 해체해야만 숨 쉴 수 있는 산소를 느낄 수 있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그리고 나처럼 세계가 한번 무너진 독자라면 힘내시길 바란다... 당신의 미래는 곧 설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