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의 에피소드 - 내 경계는 목소리로 만들어진다

by 서이든

침묵의 끝에 있는 것

이혼 후 나는 오랫동안 조용했다.
목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침묵한 것이 아니라,
말을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 관계가 끝난 뒤의 침묵은
강한 사람의 선택처럼 보일 때가 있다.
울지 않고, 따지지 않고,
“이미 끝난 일”이라고 스스로 설득하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내가 침묵하는 동안,
무언가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고,

전체 맥락과 관계는 뒤에서 왜곡됐으며,
침묵은 상처를 보호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침입할 더 넓은 공간을 내주고 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침묵을 좋아한다.

그러나 침묵은 가끔, 문을 닫는 게 아니라 열어두는 일이다.

그 문으로, 도덕 없이 웃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자신들이 해놓은 일에 책임을 지지 않은 채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침묵을 허락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나는 알고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앞으로 나와 아이들의 세계를 지켜야 할 사람이 되었고,
그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야만 했다.


경계의 날

오늘은 업계 행사에 초대를 받아 행사장에 다녀왔다.

업계 행사장은 원래 서로의 실력을 존중하는 자리였다.

자신이 만든 일, 준비해 온 상품, 노력의 시간으로 인사를 나누는 공간.
그날도 나는 그 자리의 공기를 믿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무너뜨린 것은 사건이 아니라, 태도였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낯선 얼굴이 둘 보였다.
한 사람은 내 가정을 깨뜨린 여자였고,
또 한 사람은 그 관계를 돕던 조력자였다.
그 둘을 데리고 온 사람은 불과 몇 년 전까지
나와 아이들을 책임져야 했던 존재였다.

그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인사하고 웃고, 건배하고 돌아다녔다.
가정이 무너진 일조차 한 번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업계 행사장에 서 있었다.


업계 행사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내가 전 남편과 이혼한 이유들을 가십처럼 알고 있었다.

우리는 10년 이상 부부로 함께 살며 회사 하나를 같이 운영했기 때문에 업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둘의 이야기가 흥미로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쪽에는 전 와이프가 있고, 한쪽에는 새로운 여자와 그들의 조력자가 함께 있으니 이 얼마나 재미있는 모습이었을까.. 나는 안 봐도 안다.


처음에는 무시하려 했다.
그러나 무시란 때때로 가장 약한 방어라는 것을 그들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침묵은 내가 그 상황을 받아들이겠다는 사인처럼 보였다.
심지어 앞으로 나의 아이들까지 자연스럽게 이 관계 속에
끌려갈 수 있는 여지를 줄 수도 있었다.

그건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올 수 없는 자리”라는 것을
나는 말로 알려야 했다.
그래서 나는 눈을 들고, 먼저 상간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는 눈을 피했다.
도망치듯, 그러나 당당한 척.

그 옆의 조력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었다.
그래서 조력자에게 물었다.


“당신이 도**회사 직원인가요?”


그녀는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말했다.


“아… 사장님이 월급은 제대로 주나 봐요?”


내가 누구인지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황한 표정은 말보다 먼저 진실을 드러냈다.

나는 조용한 톤으로 한마디 더했다.


“월급은 제대로 나오나보네..나는 양육비 1,200만 원을 아직 받지 못한 상태인데...”


그 자리의 공기가 달라졌다.
‘이혼했으니 끝’이라고 믿고 있던 사람들에게
법적 위자료가 도덕을 청산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직접 알려주었다.

그 조력자가 나에게 “이 자리에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라고 묻길래
나는 짧게 대답했다.


“얼굴을 보여주셨잖아요.
이런 곳까지 따라 나올 줄 몰랐네....”


그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순간, 누군가는 나가자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버티려 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여긴 당신들이 있을 자리가 아니니깐 그냥 나가세요.”


그 말은 욕이 아니었다.
경고도 아니었다.


경계였다.


전 남편이 와서는 소심한 말투로 중재하는 듯하였으나 내가 한 마디 하니.. 슬쩍 자리를 피했다.

"상간녀 소송비와 여자들 월급 줄 돈은 있는데 정작 아이들 양육비는 없구나... 거 참.. 신기하네.. 좀 그렇네."


전 남편과 그 두 사람은 결국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나는 모욕감을 복수로 돌려준 것이 아니라,
내 안녕을 내 목소리로 지켰다고 생각했다.


위자료는 손해를 보상하는 법적 최소치일 뿐,
가정이 파괴된 도덕적 책임을 치워 주지 않는다.
돈을 냈다고 상처가 복구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을 다치게 해 놓고, 치료비를 냈으니
이제 나는 떳떳하다는 태도는
그저 또 다른 폭력일 뿐이다.


침묵은 때때로 동의와 같다.
침묵은 때때로 권한을 넘긴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싸움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내 자리에 들어오지 말 것을.

나와 마주치는 것에 조심성을 보일 것을.


그날, 나는 비로소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경계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경계는 누가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

오늘 나는 알게 되었다.

경계는 눈물로 세워지지 않는다.

도덕도, 타인의 동정도, 법도
그 선을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


경계는 목소리로 세워진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내 책임이다.


오늘 나는 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언어로,
그들이 반박할 수 없을 만큼의 경계로.

말로 나의 세계와 가정의 경계를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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