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양분이 되는 과정
살다 보면 원치 않는 시련을 마주할 때가 있다. 내가 말하는 시련이란 막연한 어려움이 아닌, 살을 에는 듯한 실재하는 '고통'을 의미한다. 어느 누구도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랬다. 태어날 때부터 나를 괴롭힌 아토피는 남들보다 몇 배 예민한 감각을 강요했고, 그것은 어린 시절 나의 자존감과 직결되는 형벌 같았다. 정서적으로 불안했던 아버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와 나의 정서를 보호해주지 못한 엄마 사이에서 보낸 십 대와 이십 대는 우울한 집안의 공기로부터의 도피였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그 시절의 상처들은 '고통'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내 인생의 진짜 고통은 남편의 반복되는 배신, 그리고 이어진 이혼이었다.
결혼 1년 차 남편의 외도를 마주했을 때, 나는 내가 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전쟁터로 뛰어들었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해본 나만의 세계, 나의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내 영혼이 부서지는 소리를 외면했다. 홀로 조용히 걷다 보면 문득 기억의 파편들이 떠오른다. 그것은 단순한 아픔이라기보다 죽지 않기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버텼는지를 증명하는 흔적들이다.
직장에서 수시로 조퇴하며 방황했고, 아무도 없는 휴게실에 쪼그려 앉아 울던 기억. 일을 하다가도 눈물이 터져 화장실로 숨어들던 기억. 나는 나 자신이 엉망으로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그저 버텼다.
둘째가 채 돌이 되기 전 마주한 또 다른 배신 앞에서 나는 더 날 선 전투 모드가 되었다. 당시의 나는 심장에 총알을 여러 발 맞고도 적군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버티는 병사와 같았을 거다. 감정에 휩싸이면 무너질 것 같아 스스로 모든 감정을 차단했다. 나에겐 지켜야 할 어린 두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곳이 나만의 세계였다면 모든 것을 폭파하고 자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곳은 나만의 세계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자라는 곳이기에 나는 기어코 그 전쟁터를 지켜내려 했다.
만약 내 딸이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험한 꼴을 보지 않게 했을 것이다. 딸의 정신을 보호하고 조용히 내 딸과 아이들만 빼내 왔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누구의 보호도 조언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총알을 맞으며 서 있었다. 그때는 이혼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이 사실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 아이들의 가정을 지킬 사람은 나뿐이다, 그러니 내가 아프면 안 된다"라는 주문을 외우며 살기 위해 정신과 약을 난생처음 먹게 되었다.
그로부터 4년 뒤, 괜찮은가 싶을때즘 또다시 찾아온 배신 앞에서 나는 비로소 자각했다.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감각, 그리고 이 결혼은 지켜야 할 성이 아니라 탈출해야 할 전쟁터라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행복한 가족"이라는 허상에 대한 집착을 놓았다. 집착을 알게 되고 그것을 놓는 일은 배신 자체의 아픔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본질적인 고통이었다. 내가 지키려 했던 것이 신기루였음을, 나를 버리고 도망갈 준비가 된 사람을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내 손으로 이 세상을 끝내야만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다는 진실을 마주하는 고통이었다.
이혼 후, 사람들은 묻을 것이다. "그렇게 아플 거면 왜 이혼했느냐"라고, 혹은 "이혼했으면 행복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하지만 이혼은 실패이자 상실이며, 익숙했던 세계의 죽음이다. 실패가 어떻게 곧장 행복이 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만큼 나의 가정을 사랑했고, 살리고 싶었기에 그토록 아픈 것이다. 이 고통은 역설적으로 내가 얼마나 뜨겁게 내 세계를 사랑했는지를 증명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고통을 거부하지 않고 온몸으로 통과하기로 했다. 고통을 회피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진실에 직면하는 것은 수치스럽고 아프지만 한 번 죽어본 이상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피 흘리는 나를 외면했던 과거의 나에게 미안하다고, 정말 애썼다는 말을 건네며 엄마의 마음으로 스스로를 끌어안아 준다. 아이들의 웃음을 보며 감사함을 느끼다가도 다시 두려움이 밀려오는 과정, 그것이 고통을 통과하며 상처를 어루만지는 법이다.
나는 이 과정을 '고통의 심상 훈련'이라고 이름 지어봤다. 고통이라는 커라란 덩어리가 가슴을 꽉 채울 때 숨이 막히고 찢어지는듯한 통증을 느낀다. 시간이 흐르면 그 덩어리는 복부로, 다시 골반으로 내려간다. 여전히 아프지만 가슴은 조금씩 비워진다. 마지막으로 고통이 다리를 지나 발바닥 너머 뿌리로 내려갈 때, 나는 그것을 '양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무의 뿌리가 흡수한 양분이 나무를 자라게 하는 원동력이 되듯, 내 몸을 통과한 고통은 내 뿌리의 농도 짙은 양분이 된다. 이 고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말과 행동, 생각과 의지와 사랑 어딘가에 스며들어 나를 더 단단하고 깊게 만든다.
고통이 당신을 통과하게 내버려 두라. 아프지만 결국 지나간다. 그리고 그 고통은 당신만의 고유한 향기가 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향기. 화려하지 않아도 깊은 향기를 지닌 꽃을 우리가 오래 곁에 두고 싶어 하듯, 고통을 양분 삼아 피어난 사람은 다채롭고 깊은 인간의 향기를 풍긴다.
기억하라. 고통은 당신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더 강하고 더 향기로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생명의 핵이 될 것임을.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묵묵히 통과하고 있는 당신은, 이미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사람이다.
"혹시, 언제가 너희가 엄마의 기록을 보게 된다면 알아주렴, 엄마가 가장 힘든 시간에 엄마 곁에 있던 유일한 사람이 너희 둘이었다는 것을. 이 힘들고 고된 시간에 너희들의 웃음과 재잘거리는 소리는 정말 큰 힐링이었다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너희들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