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ye 지영 윤 Aug 14. 2024

       13인의 아해

   2003년 첫 직장, 홍콩에서 9개월간 근무하는 동안 사스(SARS)가 터졌다. 지금 생각하면 코로나 선행학습 편 같은 시기여서, 어디를 나다니기도 어렵고 '맛의 천국' 안에 있는데도 뭐 하나 사 먹는 게 무서웠다. 요리는 차치하고 조리라도 할 줄 아는 것이 계란후라이, 라면 또는 채소를 데쳐서 간장에 찍어 먹는 게 다였던 '어린' 시절이라 한 달 동안 5kg가 빠졌다. 할 일이 진짜 없어서 회사 일이 아니면 그 작은 방에서 그저 TV만 봤다. 그러던 어느 심심한 주말, 어디 한번 온종일 홍콩영화만 봐 보자고 정했다.      

   홍콩영화라면 자라면서 명절에 <영웅본색> 같은 액션 느와르물 몇 편 본 게 다였던 터였고, 그때까지 본 것 중에 딱히 내 취향에 맞는 건 없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몰아서 보기 시작하니 내가 좋아하는 로맨틱 코미디물에 드라마 등 장르가 다양했다. 그리고 또, 아무래도 홍콩을 조금 알게 되다 보니 이야기의 전개 및 감정선의 맥락 등이 더 잘 와 닿았다.

   그런데, 네 편째 정도였던가, 앞서 본 영화에서 봤던 배우들이 또 등장하는 게 아닌가! 지난번 편에서는 경찰이었던 배우는 형사로, 회사원인 배우는 전문직으로, 감초인 시장 상인 역할의 배우는 다른 업종의 자영업자인 식으로 말이다. 90년대 한국 순정만화의 전성기를 열혈독자로 함께 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이 기억났다. 다작하는 작가의 작품 여러 편을 몰아 읽을 때면 똑같은 얼굴을 하고 비슷한 역할을 하는 등장인물들로 인해 머리속에서 이야기들이 뒤죽박죽되기 일쑤여서 친구들과 웃었던 기억이.


  나는 한국과 해외에서 꽤 다양한 조직문화를 겪어봤는데, 우리들의 회사 생활도 한편으로는 홍콩영화나 순정만화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 또는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표현과도 일맥상통하는데, 조직 X에서 만난 사람 X는 조직 Y의 사람 Y로 만나지더라는 것.

  으레 그런 법이라 생각하고 웃고 지나가야 하는데, 그중 나를 오랫동안 괴롭힌 게 있었다. 모자란 건 얕보고 잘난 건 시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스스로 인품을 땅에 떨어뜨리는 사람을 생각보다 자주 마주친다는 거다. ‘리더십’에 대한 선망이 있어 롤모델을 찾아 헤매던 어린 시절에는 그런 이들에 대해 적잖이 실망하고 분노했고, 좀 더 나이 들면서는 환멸과 두려움을 느꼈다. 그런데 얼마 전, 글 선배님과 나누었던 이런저런 대화가 내가 만났던 사람 A(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볼 계기가 되었다. 미워하는 마음만 가득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들에 대해 안타까움과 함께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하는 경계의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상의 <오감도>가 생각났다. 왜 그런지 모르고 그저 서로가 무서워서 골목을 질주하는 아해들은 본인이 무서움의 대상이자 무서워하는 주체가 되어, 막힌 골목인지 막히지 않은 골목인지조차 중요하지 않고, 그저 끝도 없이 내달린다. 그 모습을 상상하면 어디서 오는 오지랖인지 ‘저렇게 내달리는 그 끝에 절벽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덜컥 걱정이 된다. 내가 호밀밭의 파수꾼은 아니지만, 문득, 오감도의 질주하는 아해들을 하나씩 잡아 따뜻한 모닥불가에 앉혀주고 싶다.

   그렇게 낭떠러지로 추락하기 직전에 아이들을 잡아 앉힐 수 있다면, 그 추운 손에는 코코아를 들려주고 긴장으로 굳은 등에는 따뜻한 담요를 둘러 줄 테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색한 공기를 헤적이는 모닥불을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겠지.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러다가도 아해들은 결국 마음속에 일렁이는 불안을 참지 못해 다시 골목으로 뛰어나갈 것이라는 걸. 그리고 나 또한 13인의 이해가 되어 함께 내달릴지도 모를 일이고.


[한국산문 2024년 2월 vol 214 수록]    

작가의 이전글 아저씨 때문에? 아니, 덕분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