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다
무더운 장마 중 하루, 반짝 맑았던 주말을 틈타 사촌 조카가 공군 파일럿인 청년과 결혼식을 올렸다. 열 명의 예도단이 긴 칼을 높이 들어 만든 축혼 아치 아래로 신랑신부가 양가 아버지와 함께 춤을 추며 입장했다. 예식 무대 위에서도 긴장한 기색 하나 없이 즐기는 모습이 신선하고 보기 좋았다. 뒤이어 등장한 화동은 귀여웠는데, 주례 대신 아버지들이 자녀를 키우며 있었던 엉뚱했던 일화 소개와 잘 살라는 덕담은 다소 길어 슬슬 배고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언제 끝나나 생각하는데 사회자가 신랑신부에게 어떤 점 때문에 결혼을 결심했는지 하객들 앞에서 이야기하라고 시켰다.
입이 귀에 걸린 신랑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신부가 너무 예뻐서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하는 모든 게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제 신부, 너무 예쁘지 않나요?"
함박웃음을 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새하얀 신부가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제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제 이상형이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인데요, 신랑이, 우리 오빠가 사회생활, 직장, 일상 모든 면에서 존경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순간 여러 생각들이 지나가며 머릿속이 간질간질했다. 무대 가까이 앉은 터라 마스크를 쓴 것도 잊고 신랑신부에게 내 표정을 들킬까 봐 고개를 돌리다 옆자리 사촌오빠의 부인과 눈이 마주쳤다. 마스크를 써서 입 모양은 보이지 않았지만 웃느라 반달눈이 된 걸 보니 나와 동갑내기인 언니도 같은 생각인 게 틀림없어 그만 둘이 테이블을 부여잡고 머리를 맞댄 채 큭큭거리며 웃었다. 맞은편에서 큰아버지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왜 웃느냐고 물으시는 데 대답은 안 하고 둘이 속닥거렸다.
“좋을 때다, 어디 몇 년만 살아봐라 싶죠?”
“그러니까요, 좀 있으면 존경은 무슨. 네가 내 아들이냐 싶어질 텐데.”
우리의 대화는 저녁 식사 후 언니가 사라졌다고 찾던 남편(사촌오빠)이 저 멀리 혼자서 엘리베이터에 타는 걸 보며 “식장 안의 두 사람과 여기 두 사람이 참 다르네요.”라며 속 좋게 웃는 걸로 마무리됐다.
그날 신랑신부의 고백은 깜짝 놀랄 만큼이나 성경의 에베소서 5장 33절에 나오는 말씀, ‘너희(남편)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먼저 내려가는 신랑과 남겨진 신부가 되었지만, 한창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해 결혼했던 당시의 우리 모습이기도 했다.
결혼식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와 다툰 후 ‘동굴’로 들어간 남편 때문에 서운해하며 속을 썩였던 때가 생각났다. ‘저런 남자를 어떻게 존경하나요?’를 수없이 되뇌었던 시기였다. 사이가 좋을 때는 몰랐는데 집이 세상에나 그렇게 좁을 수가 없고, 상대가 눈에 보이기만 해도, 움직이는 소리만 들려도 깊은 곳에서부터 부아가 치밀었다. 그 당시에 저 성경 문구를 접했을 때는 기가 찼다. ‘어떻게, 뭐를, 왜 존경하라고?’라는 생각이 절로 들며 나는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내가 왜?’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그러던 중, 문득 ‘남자한테는 한 여자를 평생 사랑하는 게, 여자한테는 한 남자를 평생 존경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여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게 사랑이고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존경인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유레카’, 부부 관계의 핵심을 깨달았다 싶었다.
그래, 부부는 내가 주기 가장 어려운 동시에 반대로 상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걸 정말 이를 악물고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거구나. 얼마나 힘든 일이면 명령으로 남기셨겠어!
그 후 나의 깨달은 바를 스스로에게도 가끔 상기시키고 어떤 날은 친구들에게도 공유하는데, 주말 아침이면 남편이 존경할 만한 사람이 아니고 되레 한참 ‘모자라’ 보인다. 남편은 주말이면 아홉 시 넘어서도 누워 있다. 자는지 마는지 모르겠지만 피곤하거나 아플 때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야 한다는데, 나는 그 모습이 그렇게 모자라 보일 수가 없다. 일어나서 나랑 밥 먹자, 놀자, 이거 하자, 저거 하자 들락날락하며 쳐다보고 가끔은 살아 있나 꾹꾹 찌른다.
나는 주말에도 아침 여섯 시 이전, 어쩌다 늦으면 일곱 시, 늘어지게 늦잠을 잤다 하면 여덟 시에 일어난다. 생체 시계가 그렇게 되어 있어 딱히 애쓰지 않아도 눈이 떠지고 거기서 더 누워 있으려면 오히려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다. 눈을 뜨고 일어나면 바로 끊임없이 뭔가를 한다. 내 딴에는 ‘사부작사부작’ 잘만 하는데 남편이 보기에는 부산스럽고 뭐를 하던 영 어설프단다. 보다 못해 일어나 마무리 투수 역할을 자처하며 한숨을 쉰다.
그러다 보니 '누가 모자란 사람인가'의 문제를 두고 함께 농담하다 가끔씩 다투기도 하는데, 함께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누구의 방식이 옳은가를 두고 부딪혔다. 나는 끊임없이 낫기 위한 이런저런 '방도'를 찾아봐 음식에, 건강식품에, 민간요법을 실행했다. 남편은 내내 누워있으며 아플 때는 그냥 쉬어야 한다고 했다. 방에 틀어박혀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남편을 걱정 반 못마땅함 반으로 지켜봤는데, 결과적으로 남편은 5일 만에 코로나 증세에서 벗어났고 나는 그 후로도 일주일을 더 아팠다. 남편이 혼자 빨리 나은 걸 두고 당신은 나의 극진한 간병을 받은 덕분에 빨리 나았던 거라 하니 남편은 자기 방식이 맞았던 거라고 한다.
결혼식을 보고 돌아온 그날, 나의 가장 좋은 술친구인 남편과 각자의 취향대로 와인과 맥주를 마시면서 결혼 앨범을 들춰보며 킬킬댔다. 그 안에는 내 기억보다도 더 빛나는 신랑신부가 있었다. 한 장 두 장 넘겨보다 부모님이 간직했다 넘겨주신 초등학교 성적표까지 꺼내어 어린 시절 사진부터 중고등학교, 대학교, 사회에 나온 후의 사진까지 함께 훑었다. 참 열심히 산 똘똘한 두 사람의 흔적들을 본 후 결혼 앨범을 마지막으로 다시 훑고 제자리인 수납함 제일 안쪽으로 밀어 넣어두었다.
새삼스러운 추억들을 보고 나니 웃음이 났다. 분명 빛나는 두 사람이 손깍지 끼고 들어왔는데, 지금 우리 집에는 어찌 된 일인지 ‘모자라 보이는 사람’과 ‘모자란 사람’ 두 명이 산다. 우리가 모자란 줄 세상은 아직 모르는 듯하니, 아직 들키지 않아서, 그리고 그 둘이 "우리"라서 다행이다.
[한국산문 2023년 8월 vol.208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