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백인 남자애들에게 플라스틱 공을 맞던 시절, 나는 열 살이었다. 생애 첫 인종차별이었다. 물리적 폭력은 그게 마지막이었지만 여행에서 자잘한 인종차별을 겪었다. 인종차별주의자란 무식한 사람. 인종 하나만으로 타인을 덮어놓고 혐오하는 야만인. 내가 내린 결론이었으며 그 앞에서 나는 결백했다. 아시안 걸이 가해자가 될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믿었다.
내가 인종차별주의자일 수도 있겠다는 인지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친구들과 짐바브웨 여행을 하던 중 생겼다. TV에서 올림픽 유도 경기가 나오고 있었는데 누군가 선수들이 멋있지 않느냐기에 얼굴을 찌푸렸다.
“장난해? 저거 일본 거잖아. 싫어.”
미국인 이바드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왜 그렇게 일본을 싫어하는 거야? 그제야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나를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는 각국의 친구들의 얼굴은 평소 내가 헛소리하는 사람들을 쳐다보던 시선과 닮아 있었다.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나는 왜 인상까지 구겨가며 불쾌하다는 듯 반응했을까.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했었으니까. 걔네는 나쁜 놈들이니까. 이렇게 말했다면 파키스탄 이민자 출신 이바드는 답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영국에게 지배당했었어. 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영국인들을 미워하진 않아. 다음 대답은 무엇이어야 할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어?
눈앞에 실존하는 일본 사람을 배척한 적은 없었다. 그저 일본이라는 나라에 막연한 거부감을 가질 뿐. 과거의 잘못이 엄연하게 존재하는 한, 내 생각에는 타당한 결론이었다. 이러한 관념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캄보디아 S21에서였다.
안경을 썼다, 글을 읽을 줄 안다, 손이 부드럽다... 똑똑하게 생겼다는 이유로도 잡혀갈 수 있으니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 척살의 대상에 해당되었다. 그렇게 캄보디아 내전에서 5분의 1의 사람들이 죽었다. 살인은 칼로 목을 찌르고, 갓난아기를 공중에 던져 사격연습으로 쓰는 모습을 보여준 뒤에야 살해하는 잔인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인권이라는 단어가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는 막막한 공간. 기적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절망적인 현실들. 내가 그런 사건들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그랬고, 베트남 꼰다오 감옥에서 그랬고, 남아공 6구역에서 그랬고...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기 뭣 같지만, 그런 일들은 자주 있었다.
모든 참혹함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나를 납득시켰다. 결국 이바드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일본이 못된 짓을 했지만 그건 ‘일본’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추악한 본성 중 하나였을 뿐이다. 악행은 어디서든 일어날 뿐이다. 예전처럼 일본을 맹목적으로 미워하고 싶지는 않아 졌다.
너무도 많은 부당함을 목격한 뒤에야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이해해 간다. 인간은 쉽게 비열해질 수 있음을, 내가 착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엔간히 먹고살만한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임을 인정했다. 물론 살인을 정당화할 생각은 없지만, 그런 미친 짓이 애초에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흑백논리로 무언가를 ‘혐오’ 영역에 가둬놓지는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