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성실한 사람이었을까?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던 아기의 피땀 어린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축구는 정말로 내 인생 스포츠였을까? 공 차는 애들을 친구로 두다 보니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것일 수도 있다. 진짜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죽기 전까지 발견할 수는 있는 걸까.
진정한 나를 알고 싶었다. 시작은 호불호 여부부터였다. 참치 김치찌개보다는 돼지고기 김치찌개가 더 맛있었다. 집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느니 혼자라도 맛집에 가서 밥 먹기를 선택했다. 그러다 예상보다 지출이 많아지면 극단적으로 밥과 김으로 밥을 먹는 편이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많이 알 수 있었다.
받아들이기 싫은 면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나는 그렇게까지 최악인 사람은 아닌듯했다. 적당히 활달하고 사교적인 사람. 전교 회장감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사람과 두루 어울리기를 즐겼다. 성인군자 같이 착하지는 않았으나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했다. 사회 생활하기에 괜찮은 사람이로군. 베트남만 오지 않았다면 계속 그렇게 생각하며 평온하게 살아갔을 것이다.
동학년 회의를 위해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예상 못한 숫자에 움찔했다. 다섯 반 밖에 안 되는데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당황스러웠다. 근무할 곳이 국제학교라는 사실이 확 와닿았다. 반마다 한국인, 영어 원어민, 베트남인 선생님이 있다 보니 열다섯 명이라는 인원이(한국이었으면 반 한 개 정도 수다) 한자리에 모였다.
분하지만 다양한 인종의 집합체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묘하게 다른 이목구비 생김새나 피부색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괜히 기가 죽었다. 첫 회의에 앞서 자기소개를 (영어로!) 하게 되었을 때, 생전 처음으로 소심한 전학생으로 둔갑해 쭈뼛거리며 인사를 했다.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외국인들과 마주쳤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으나 헤이~ 하며 10년 지기 친구처럼 반갑게 굴어야 할 것만 같은 압박이 느껴졌다(내가 드라마에서 본 서양인들은 모두 그랬기 때문이리라). 화장실 세면대에서 만났을 때가 특히 고역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손을 씻고 이빨을 닦고 있자니 스몰토크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데 어색하게 웃는 게 내가 하는 전부였다.
Jenny: 나 한국에서 3년 정도 살았어.
나: 아 그래? 하하하.”
Jenny: ...
진짜? 어디 살았는데? 무슨 일 했었어?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국말이었다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솜씨 좋게 긴 대화를 이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의 난 전혀 그러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소극적인 사람이었던가? 나름 위트 있고 친근한 사람이라고 여겨왔던 정체성이 마구 흔들렸다.
자아 혼란을 겪다가 새로운 나를 발견했다고 여기기로 했다. 마음에는 안 들지만 생소한 상황에서 위축되는 성향인 나를 받아들였다. 극단적인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그릇이 넓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람에게 관심이 많고 사랑하려 노력하는 특징만큼은 제발 내재된 본성이기를 바랐다.
문득 외계인을 만나고 싶어졌다. 얘네랑 지내다가 지구인을 맞닥뜨리면 인종, 외모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를 따스하게 대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다. 음, 나름 설득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일론 머스크, 힘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