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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비 Mar 08. 2019

네덜란드 사람들은 원리원칙을 좋아한다

퇴사 후의 소회를 드러낸 아래의 글 하나를 쓰고 나니 그제야 눈에 띄는 아직 발행하지 않았던 글 하나. 이게 2017년 10월의 일인데, 아마도 이때의 나는 이런 얘기를 (이 글을 몇 명이나 보겠냐만은) 굳이 하는 게 좋은 것인지에 대해 매우 망설였었나보다. 아마 내가 살고 있는, 앞으로도 좋은 마음으로만 살고 싶은 나라의 단점을 들춰내기가 싫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때의 감정 역시 내가 이곳 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느낄 수 밖에 없었던 느낌일 터. 다소 감정이 섞인 듯하지만, 나 스스로를 위한 기록삼아 공개해보려 한다.




네덜란드에 와서 처음으로 이 나라(의 일하는 방식)가 미워졌던 사건 하나.


다니던 회사의 계약이 끝나가던 어느 날, 재계약을 할 때가 되었으니 비자(정확히 말하면 '워크 퍼밋'이지만, 비자의 성격에 따라 워크 퍼밋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그냥 비자 정도로 통용)를 가져오라던 회사 매니저.

네덜란드에서 일하는 남편의 파트너 자격으로 비자를 받았던 나는,  올해도 마찬가지로 그의 회사에서 새로 내어 준 비자 갱신 절차가 완료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3주 정도면 처리가 완료되었던 것과는 달리, 석 달이 넘도록 함흥차사. 네덜란드 관공서 일 처리 속도가 한국만큼 빠릿빠릿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세월아 네월아'일 줄이야.

아무튼 그렇게 비자를 기다리다가 기존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회사에 제출하지 못했고, 이민국에서 온 '언제까지 처리될 거다'라는 우편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나와야만 했더랬다.


참 간사하게도 남의 일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르는 일이 내 일이 되니 이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일 처리를 늦게 하는 이민국도 밉고, '언제까지 처리될 거다'는 편지에도 융통성 없게 계약을 끝내버린 회사도 밉고(게다가 계약 초반에는 자기네가 직접 워크 퍼밋을 내줄 수도 있다고도 했었는데!), 어떻게든 대안을 찾아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저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던 그때의 나도 밉고.


아무튼 그렇게 백수가 되었고, 한참을 놀다가 뒤늦게 비자를 받아 다시 돌아갔다. 회사를 잘리고, 백수가 되었다가, 다시 돌아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4개월.


한국에 비하면 이곳 사람들은 원리원칙을 지켜 일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서로 믿고 함께 일해온 직원일지라도 원칙대로 칼같이 계약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며(비자가 안 나올 이유가 1도 없었음에도!), 치과를 가기 위해 예약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내면 예약은 전화로만 받는다며 답장이 오기도 하고 (답장해 주는 김에 예약도 받아줄 수도 있을 텐데). 어쨌거나 그것이 이들의 일하는 방식이라면, 익숙해져야겠지.



+ 그날의 사건에 대해 주위에서 여러 말이 오갔고, 신기하게도 이곳에 얼마나 오래 거주했느냐에 따라 반응이 완전히 달랐는데, 거주기간이 비교적 짧은 사람들은 '억울하겠다'라는 반면, 오래 거주하신 분들은 '너무 당연해서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느낌. 어쩌면 나는 융통성이라는 것을 앞세워 너무 무리한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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