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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파머 May 10. 2019

이미소가 쏘아올린 컬러감자


분홍색을 좋아하는 청년은 고향인 춘천으로 돌아왔다. “네가 분홍색 ‘세레스(대지와 농업을 관장하는 여신 데메테르의 라틴어 이름을 딴 소형 트럭)’ 끌고 다니면 정말 웃기겠다”는 사람들의 농담도 자양분 삼아 ‘핑크 세레스’라는 화려한 농장 카페를 열어낸 그는 농촌에 핑크빛 활력을 불어넣은 당찬 새내기 농부가 됐다. 농촌에서 농사짓고 카페를 운영하며 고군분투한 시간이 쌓이자 그가 지닌 에너지는 더욱 짙어지고, 응축돼 땅의 색을 닮아갔다. 그렇게 ‘카페, 감자밭’을 새롭게 오픈한 농부이자 기획자 이미소를 만났다.




애증의 감자 때문에



| 여러 종의 감자를 키운다고 알고 있어. 지금 키우는 감자가 몇 종이야?
열두 종. 참고로 전 세계에 감자가 3천종이 넘고, 우리나라 국립종자원에 등록된 감자가 100종 가까이 돼(국립종자원에 품종보호 출원한 감자는 89종이다).

| 여러가지 품종을 농사짓는 건 어렵지 않아?
감자도 조생종, 만생종이 있어서 심는 시기와 수확시기가 달라. 그리고 농사를 한 작물만 지어도 크기가 대, 중, 소로 나뉘잖아. 그런데 우리는 종류도 많으니 보관이 힘들어. 창고도 작은데 다양한 품종을 나누고 보관하는데 특히 어려움이 있어.


감자밭을 위한 카페이기 때문에 카페의 벽면에는 감자 농사를 기록한 사진으로 장식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종류의 감자를 키우는 이유가 뭐야?

품종의 다양성이 왜 중요한 지는 잘 알고있지? 보통 아일랜드 대기근이나 바나나 파나마병 같은 사례 들면서 이야기 하잖아. 그런 것도 말로만 들을 땐 사실 나도 잘 안 와 닿았어.

그런데 2016년에 춘천에 내려와서 미국 유기농감자학회 (Organic Potato Association)에 초청받아서 아빠랑 갔다 왔거든. 미국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감자가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는 마트에 가면 우스갯소리로 “세척된 것과 안된 것, 두 가지다” 이런 말 있을 정도로 품종의 다양성이 없어. 거기서 우리가 재배한 감자가 얼마나 우수한 지에 대해 듣고 나니 사명감이 생겼지.

그리고 어떤 쉐프를 만났는데 국산 감자로 뇨끼를 만들고 싶어도 분질이나 전분함량이 맞는 것이 없어서 우리나라 감자로는 만들 수 있는게 없대. 그래서 무조건 뇨끼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감자를 써야 한다는 거야. 그만큼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품종이 필요해.


쉐프들한테 특히 연락이 많이 와. “너무 좋은 감자 재배해줘서 고맙다”, “설탕 안 넣어도 맛있다.” 그 분들이 꾸준히 몇 년째 쓰시고, 오랫동안 농사 지어달라고 하지. 그걸 알아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이런 농사를 짓는 것 같아. 감자가 아니었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여기에서 살 이유가 없거든. (웃음)



| 감자에 대한 감정이 각별하게 들려.
감자 때문에 가족들이 같이 살게 되었고 감자 때문에 일어난 많은 일들이 있어. 그래서 감자로 돈 번 적 없지만 고마운 존재라 생각하고 있어.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애증있지. (웃음) 사랑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고. 그 두가지가 다 섞인 감정이랄까? 지금은 우리 가족같은 존재라고 할까? 우리의 일부분. 무엇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야.
 


이미소 농부의 1순위라는 가족. 감자농사는 가족들과 함께 짓고, TV를 비롯한 많은 미디어에 소개됐다.


| 가족 구성원에 감자가 포함돼 있는 느낌인데? (웃음)
응, 진짜 가족 구성원 중에 하나. (웃음) 우리는 평생 땅을 가져본 적이 없었어. 매번 빌려서 농사짓다 보니 땅을 만들어 놓으면 쫓겨나고 그러다 땅을 사게 됐거든. 정말 감자 때문에. (웃음)
사실 우리한테 감자는 수익적으로만 보면 안 해도 그만인 사업이야. 그런데 우리 아빠는 감자에 사명감 같은 게 있으셔. 뭐랄까. 그래, 숨 쉬듯이 하시는 말씀이 “그래도 우리는 감자 농사 지어야 한다.” 그냥 우리 가족한테는 (감자 농사를 짓는 것이) 밥 먹는 거랑 똑같은 거야.


| 정말 애증이 느껴진다. (웃음) 그런데 이런 감자농사를 그만둘 뻔 한 적도 있었다고 했잖아. 
2013년이었나, 아빠가 감자농사 그만두는 것에 대한 가족 회의를 연 적이 있었어. 가족 모두가 다같이 그만두자고 했었는데 아빠가 결국에는 본인이 너무 하고 싶으셨던 거야. 그래서 감자 농사를 계속 지으셨지.


| 그렇게 귀농하게 되었구나. 그럼 고향으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뭐야?
감자 30톤을 땅에 묻었어. (산지폐기?) 응, 그리고 감자 농사를 같이 지으면서 감자를 팔다보니 여기까지 왔네.

| 그것 뿐 아니라 감자를 보급까지 한다고 들었는데?
맞아. 개인이 원종부터 생산해서 보급하는 곳은 내가 알기로는 우리 뿐이야. 대학이나 연구기관이 아닌 개인이 하기에 쉬운 일은 아니지.
 


| 그중 ‘보라밸리’에 가장 애착이 많아 보여.
보라밸리가 모스크바 국제 감자박람회에서 1등상을 받았거든. 금상을 받았어. 내가 생각했을 땐 보라밸리가 가장 상품성이 있다고 생각해. 블루베리 보다 안토시아닌도 많고.
 

| 보라밸리로는 ‘예뻐보라’라는 간편식도 만들었잖아. 펀딩이 성공적으로 끝난 걸 확인했는데, 그걸 만들고 판매까지 해보니 어땠어?

가공이 쉬운게 아니더라고. 포기했어. 한번 최소 물량만 생산해서 시도해봤는데 어렵더라고. 내가 가공 시설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MOQ(Minimum Order Quantity최소구매수량)가 마트에 납품할 만큼 대량으로 생산이 가능한 자급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 두가지가 제일 컸어.

내가 직접 생산하거나 자급력이 있거나. 둘 중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공부를 그걸 통해서 했어. 내가 갖고있던 돈이 너무 적으니까.
이게 직접 부딪히며 공부를 해보니까 어떡해야 할지 다음 가공상품은 어떻게, 어떤 프로세스로 해야할지 보이더라. 식품이고 유통기한도 있고 나름 제약이 많아서 이번에는 화장품으로 해볼까, 팩으로 해볼까 기획 중이야.


이미소 농부가 예뻐보라로 만든 간편식. 크라우드 펀딩으로 가공비를 모았고,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 감자로 워낙 유명하니까, 다른 작물에 대한 이야기를 못 들었는데 다른 작물도 키우고 있어?
감자 끝나면 열무 농사 지어. 호박이나 다른 것도 키워봤는데, 다른 작물은 다른 농부들을 위해 사 먹으려고. 감자 농사 짓기도 힘든데 굳이 우리가 이것까지 지을 이유가 없지.



감자밭에 핑크빛 에너지를 불어넣다

이미소 농부가 손수 꾸민 농장 카페의 내부 인테리어 모습


| 감자도 있지만, 이미소 하면 연관되는 게 직접 운영하고 있는 카페지. 소셜미디어에서 이전 카페 이름인 핑크세레스가 정말 유명하더라. 여기를 오려고 춘천 여행코스를 짰다는 사람도 봤어. 이 카페는 어떻게 운영하게 된 거야?
뒤에 감자밭 보이지? 우리아빠가 평생 살면서 처음으로 소유하게 된 감자밭이 바로 저거야. 그 이후에 주변 필지랑 이 건물을 사셨지. 원래 이 건물은 닭갈비집이었어. 건물을 막상 사 놨는데 뭐 할게 없더라. 그래서 편의점을 하려고 계약서까지 다 썼어.
그런데 그때 내가 경남 거창에서 ‘이수미 팜베리’ 를 운영하는 이수미 씨 강연을 들었어. 나처럼 패션디자인과를 전공하고 일하다 부모님 때문에 한 분이야. 그분은 양계에 뛰어들어 돈을 모아서 팜 레스토랑을 하셨어. 그걸 듣고서 감명을 받아서 여기서 팜카페를 해보자 가족들한테 얘기했지. 그렇게 시작했어.
 

| 닭갈비집이 이렇게 변한 거야? 카페 인테리어도 직접 했다면서.
철거만 맡기고 대부분 가족, 친구들이랑 직접 시공했어. 바닥에 에폭시라도 시공하려면 견적이 최소 800만원이야. 그런데 친구랑 같이 시공해서 50만원 들었어. 액자도 내가 페인트로 칠해서 꾸몄고.


| 아무리 절약했다고 해도 이 정도로 꾸미려면 투입한 시간과 자본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노하우 좀 슬쩍 공유해 줘.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렸어. 4~5개월이나 들였지. 돈은 정말 거의 안 들었고, 핑크 세레스 상징인 세레스 트럭을 폐차장에서 80만원 주고 구했어. 정말 이걸 사려고 폐차장을 얼마나 다녔는지. 그런데 폐차장은 타이밍이더라고. 계속 전화해서 물어봐도 그냥 폐차시켜 버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느낌이 와서 가봤는데 딱 세레스가 있더라. 그걸 오픈 직전에 어렵게 구했어.
 

| 직접 인테리어를 했다니까 콘셉트를 물어봐도 될까?
내가 이 카페를 27살에 준비했어. 그때 당시에만 해도 핑크를 정말 좋아했지. 그런데 한해 한해 지나니까 취향이 바뀌더라. 그리고 2년이 지났지. 지금의 나는 지금 농부인 남자친구가 있고, 그 친구와 결혼도 계획하고 있어. 그 친구는 카키 같은 색감을 지닌 친구랄까? 그런 사람을 만나 관계 맺다보니 지금 내 색은 핑크가 아니구나 생각해. (웃음)
처음엔 내가 좋아하는 앨리스같은 요소를 넣어서 장식했지만, 농장 카페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농산물도 섞어서 많이 꾸몄어. 하지만 사람들한테 “도대체 콘셉트가 뭐냐” 이런 질문을 많이 들었지. 그래서 앨리스도 떼고 완전 농장 느낌으로 바꿨어.



이미소 농부는 최근 농장카페 핑크 세레스를 ‘카페, 감자밭’으로 리뉴얼 오픈했다.


| 핑크 세레스가 팬시한 느낌이라면, 더 팜카페 이미지를 지향한 카페로 만들겠다는 거지?
맞아. 인테리어만 바꾸는게 아니라 앞으로 농부들 커뮤니티, 농부들의 문화가 스며있는 공간으로 해보려고. 나는 여기서 감자 이야기도 하고 싶었고, 농사 이야기도 하고 싶었고,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았어. 그런데 그냥 예쁜 카페가 되어서 너무 아쉬워. 물론 카페에는 예쁜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하나씩 넣었는데 주객이 전도되어 버렸지.




농부 그리고 기획자,
혹은 그 이상을 꿈꾸는 사람


손수 꾸민 농장 카페 ‘카페, 감자밭’에서 일상을 보내는 이미소 농부


| 청년 농부 이미소는 어떤 계기를 만나 이렇게 성장했다고 생각해?
서울에서 매일 클럽에 다니던 생활이 사라지고 너무 우울한 거야. 여기 와서. 그런데 그로어스(강원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농부들의 커뮤니티)에 나가고 나서 사람들 보고 이렇게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 느꼈어. 매일 아빠만 만나다 주희 언니도 그때 처음 만났고, 가공에 대한 지원사업도 알게 되었지. 그래서 지원사업에 선정되고 3000만원 지원 받고 예뻐보라도 개발했어.
대학 다닐때 교수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이 비싼 학비, 수업듣는 것 보다 주변 친구들 만나려고 내는 거”라고. 처음엔 이게 무슨 헛소린가 싶었어. 그런데 6개월만 지나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게 돼. 처음에는 미친듯이 경쟁하다가도 같은 과제에도 저마다 다른 해석을 하는 걸 보면서 자극 받고, 또 어느순간이 지나면 서로 커뮤니케이션하고 협업해야한다는 걸 사람들이 본능으로 알아차리거든.
그로어스도 똑같아. 이런 다양하고 역량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걸 배우는 거야. 그래서 거기서 엄청나게 자극 받고 에너지를 얻지.
 

| 그로어스에서 특별히 친한 멤버가 있어?
그냥 다 친해. 새로운 사람에게 열려있고, 사람들 사이에서 정치를 하지 말자는 생각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어. 운영회의때 편가르지 말고 먼저 다가가자고 늘 이야기 해. 그래서 누구랑 더 친할 것도 없이 다 친해. 다 좋은 사람들이야.
 

| 전에 인터뷰를 보니, 농부보다는 기획자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
“너는 감자 농사나 짓지, 왜 카페하니?” 묻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내가 특별히 농부라고 생각하는 편은 아니야. 뭔가 작명을 해야 할 것 같아. 이를테면 채소 소믈리에처럼. 나는 기획자에 더 잘 맞는 것 같아. 새로운 농촌에서의 길을 찾는 라이프 기획자. 그 중에 농사가 하나 포함돼 있을 뿐이야. 어쨌든 농사 지을 때는 결국 농부일 거 아냐. 내가 부르는 이름보다는 남이 나를 부르기 편한 이름으로 농부라고 불러.
 

| 내 정체성은 내가 정한다?

그치. 뭐 농부라고 해도 내 주변을 보면 겨울에는 다 스키장 아르바이트 가고 그래. “농한기 때는 스키장에 가니까 농부 아니냐?” 이런 말이랑 똑같아. 농부가 어떻게 농사만 지어. 납품하려면 패키지 기획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럼 그 사람은 농부 아니야? 브랜더야? 기획자야?
 

| 최근에 소셜미디어에 귀농하게 된 계기를 길게 글로 정리했잖아. 그걸 보고 궁금했었어. 책을 낼 생각인가?
응 책도 낼 계획이고. 많이 궁금해하더라고. 나는 춘천 시내에서 살다 서울로 유학 갔어. 서울에서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니까 아빠는 농촌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계시고. 그런데 서울 생활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은 나의 사례를 많이 궁금해 해. 그런 사람들의 매개체 역할을 해보려고.
서울에 살면 서울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90%잖아 솔직히. 그런데 이런 삶을 궁금해 해. 이젠 뭐랄까. 말로 설명하면 너무 장황하고, 같은 말 하자니 지쳐. 그래서 기록으로 알려주고 싶어. 내가 이런 생각으로 왔고, 이런 경험과 고충이 있었다를 알려주고 싶어.
또 여태까지 많은 일이 있었는데 하나도 기록을 남기지 못했어. 이 기록을 남겨볼까 싶으면, 아 이전 이야기부터 해야하나?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겠더라고. 그런 거 알지? (웃음) 그러다보니 정리해야 할 기록들이 밀려있어. 그런 스토리 모아서 차근차근 아카이브 하려고. 이렇게 4년이 흐르더라고. 그런 생각하다가 지금은 조금씩 하고 있어.


| 앞으로의 계획이 뭐야?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렇다할 성과가 없는 것 같아. 그로어스, 예뻐보라, 핑크세레스 다 과정이었어. 본선을 위한 과정. (그 본선이 뭘까?) 농촌의 가치를 전달하는 공간. 사람들한테 불리는 이름은 카페지만 궁극적으로는 농부를 만나고, 농촌의 문화를 만나고, 크게는 내가 농촌이랑 맞는 사람인지 찾고, 다른 일을 상상해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원해. 농업과 관련된 아카데미는 정말 많지. 그런데 그런건 너무 학구적이고 뻔하잖아. 그런것 말고 재미도 있고, 진짜 농부의 생생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도움도 되는 그런 공간.
내가 처음에 춘천에 돌아왔을 때 만날 사람도 없고, 갈 곳도 없었을 때 참 힘들었어.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다들 그렇대. 그런데 내가 핑크 세레스를 오픈하고 갈 곳이 생겼다면서 매일 오거든. 농촌의 사람들과 가끔 농촌으로 오는 사람들에게 농촌의 문화를 느끼고 교류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어.


유기농펑크(이아롬) arom@hellofarmer.kr 

© 헬로파머 http://hellofarm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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