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일기 Intro,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by 지은호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교직생활 5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고향에서의 교직생활은 어느 날 갑자기 끝이 났다. 사직서는 생각보다 심플했다. 두 번의 서명으로 나의 오 년은 끝이 났다. 교감 선생님이 준비해 오신 서류에는 간략히 **초 5년의 경력 한 줄과 3월 1일 자로 의원면직한다라고 쓰인 서약서 내용이 물 위에 뜬 먼지처럼 달랑달랑 떠 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둥이, 너를 위해 나는 고향을 등지고 새로운 지역으로 시험까지 쳐가며 거주지와 아이들을 두고 떠났다. 다시는 보는 일 없을 거야! 했던 임용고시를 어찌저찌 끝내고(사실은 어찌저찌 네 글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어느 날 똑, 하고 새 집에서는 저 멀리 떨어진 강원도 한 학교에서 아이들을 마주하고 섰다. (강원도는 무척 넓고 크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넓은 지역은 홍천, 끝과 끝이 무려 차로 2시간 반이 걸린다!)


선생님, 선생님은 집이 어디예요? 하는데 나는 말문이 막혔다. 응 선생님 집은 여기서 300km 떨어진 곳이야 하자니 나의 집은 이제 그곳도 아니지 않던가. 둥이와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도 여기서는 130km는 가야 했다. 빌어먹을 교육과정은 지역화 사회화에 열정적이어서 나는 약 30년간 쌓아온 나의 지역 정보를 전혀 쓸 수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사회 교과서를 가르쳐야 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인지 배우는 것인지 무엇이 먼저인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새 학교에 적응해 가는데 갑자기 나는 형용할 수 없는 당혹의 늪에 빠졌다. 나 왜 여기 있지? 나 정말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차라리 학교를 때려치우고 공방을 차리거나, 새 보금자리 근처 바다에서 코스터와 파우치를 만들어 파는 것이 더 말이 되지 않을까. 너와 함께 있겠다고 단 한 번의 망설임 없이 나의 가족과 친구와 쌓아온 삶과 경력을 두고 온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왜 여기 있는 걸까. 도대체 여기에 있는 '나'는 누구일까.


우울과는 거리가 멀고, 스스로를 잘 안다고 자부하는 내가 나 자신에게 의문이 들었다. 너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뭐야? 아이들을 가르치는 거야, 둥이랑 함께 있는 거야? 둥이랑 같이 있으면 일은 안 해도 좋아? 직업과 가정이 한 공간에 있을 수 없게 되니 나는 패닉에 빠졌다. 교실에 앉아 멍하니 있는데 학교 일과 시간에는 나에게 말 한마디 걸지 않고 발표한 번 안 하던 아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선생님, 선생님 집 어디예요? 여기에 집 있어요? 아니 없어. 선생님은 퇴근 몇 시에 해요? 다섯 신데 어제는 여섯 시에 갔어. 아기 있어요? 아니 아직 없는 데에~ 왜 없어요, 없으면 둘이서 심심하지 않아요? 글쎄, 둘이 있으면 심심해야 할까?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아기가 있으면 행복하잖아요. 그래? 우리 **이는 가족이랑 있을 때 가장 행복한가 보다! 가족들이랑은 어디에 가니? 우리 아빠가 학교 앞에 000이 제일 맛있대요. 그래? 선생님도 가봐야겠다. 선생님도 남편 꼬셔서 꼭 가보세요.


기분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해맑은 얼굴로 남편을 꼬셔서 꼭 가보라니! 이 귀여운 어린이는 나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 친구가 놀자, 해도 놀지도 않고 나를 기다리며 칠판에 <아침에 책 읽기> 글씨를 써주고, 교실을 쓸어주었다. 학교는 그런 곳이었다. 나에게 이유 없는 사랑을 주는 아이들이 있는 곳. 끝없는 잡무와 말도 안 되는 사건 속에서도 저절로 웃음이 나와서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있는, 순수함이 있는 곳.


나는 다시 기분이 나아졌다. 사랑하는 남편은 조금은 멀지만 언제든 볼 수 있는 거리에 있고, 일주일의 반은 만날 수 있다. 나에게는 서른 명의 아이들이 있다.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고, 되돌아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아이들이 있다. 오늘부터 나는 나를 되돌아보기로 했다. 내가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놓치고 마는 찬란한 순간들을 되짚어보겠노라고. 이가 빠졌다며 웃으며 눈물을 흘리는 운이, 선생님이 바뀌는 줄 알고 교장실에 편지를 쓴 홍이, 졸업 후 이제 김영란법이랑 상관없죠 하며 작은 화분을 들고 온 태이, 교실에 매일 남아 나를 기다리던 원이. 수없이 많은 나의 순간들을 기억하며 삶이 고될 때 힘으로 삼겠노라고. 나는 누구이며 여기가 어디인지 혼란스러울 때 다시 한번 펼쳐보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