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는 월요일, 와글와글한 아이들 틈바구니에 휩싸여 고래고래 얘들아 얘들아, 소리를 지르다가 전쟁같은 하루가 드디어 끝난다. 인사가 얼마나 경쾌하고 기쁘게 들리는지 얘들아 잘가, 호랑이야 잘가, 사자야 잘가라 뛰쳐 나가는 아이들 뒷통수에 대고 이름을 부르며 안녕하고 보내고 간신히 자리에 앉았다. 아침에 한 학부모로부터 가정체험학습 보고서를 이제야 보냅니다 하고 온 문자에 답을 하지 않은 것이 생각나 핸드폰을 켜는데 아뿔싸. <선생님, 잘 지내시죠>라는 말을 시작으로 카톡이 하나 와 있었다. 심장이 쿵쿵댄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걸까, 민원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누를까말까 아주 잠깐 고민하고(어짜피 안누를 수는 없는 일이니) 누르는데 다른 의미로 심장이 쿵쿵대기 시작했다.
선생님, 잘 지내시죠.. 저는 2년전 1학년 코코아 엄마입니다. 얼마전 코코아와 학교생활 이야기 나누다가 선생님이 보고싶고 제일 좋았다고.. 앞으로도 코코아에게 많은 만남의 있겠지만..첫 선생님으로 선생님께서 잘 지도해주시고 좋은 추억주셔서 학부모로써 감사드립니다. 지금 계시는곳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생님되시길 기도합니다.
아. 눈앞에 코코아가 스쳐 지나갔다. 항상 부끄러워 몸을 배배 꼬면서도, 졸졸 내 뒤를 살그마니 쫓아오던 그 말간 얼굴. 선생님선생님 따라오는 아이들과는 달리 저 멀리서 눈빛을 발사해 눈 마주치기를 기다리며 나를 바로보던 코코아. 눈이 마주치면 나는 눈썹을 씰룩댔다. 불러도 다가오지 않고는 저 멀리서 꺄르르꺄르르 웃으며 뱅글뱅글 주변만 돌기 때문이다. 코코아의 눈빛에 적극적으로 대답하는 방법은 눈썹을 씰룩이며 아이에게 웃긴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그러면 코코아는 꺄르르꺄르르 웃다가 어느샌가 저멀리 돌봄교실로 사라졌다. 그러고선 집 가기 전 문을 똑똑 하고는 얼굴만 살그마니 보여주고 또 가버렸다.
어느날인가는 학교가 끝나면 돌봄교실에 가야하는데 저 교실에 있을래요, 했다. 그래? 왜? 하니 그냥요. 하는데 얼굴에 가득 여기 있고 싶어요, 했다. 당장 엄마에게 연락해서 코코아가 당분간 교실에 있고 싶다고 하네요, 학교끝나고 제가 데리고 있다가 학원 시간에 맞춰 보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코코아 어머니는 알겠다고 했다. 그 날부터 코코아는 학교가 끝나면 교실에서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썼다. 또래와 비교하면 말도 잘하고 똑부러지는 면이 있었는데 국어책에 글씨 쓰는 것이랑 받아쓰기 틀린 것 써오기를 그렇게 어려워 했기때문에 나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혹시 싫어하지는 않을까, 했는데 웬걸. 불타오르는 학구열에 휩싸여 문제지를 집에 가져가겠다고까지 했다.
그건 코코아의 애정이었다. 선생님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 학교 일과 중에 바글대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코코아의 부끄러움과 속도로 나에게 다가오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방과후에는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교실에 매일 남는 한 명의 친구만 있었고, 옳지 이거다 했나보다. 얼마 후에 코코아의 엄마에게 문자가 왔나 전화가 왔나 했다. 선생님, 코코아가 학교 끝나고 선생님이랑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가봐요. 나는 코끝이 찡했다. 내가 뭐라고. 6학년에서 1학년에서 내려온 그 해의 나는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많았다. 받아쓰기도 고쳐야 하고, 국어 활동도 다 해야하고, 줄도 잘 서야 하고, 안전도 지켜야 하고, 부진을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덧셈과 한글에도 집요하게 매달렸다. 아이들이 1학년이 처음인 것처럼, 나도 1학년 담임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나를 좋아해줬다. 나는 아이의 속도로는 벅찬 수업과 과제로 아이를 힘들게 한 것 같은데, 아이는 싫어하는 글씨를 남아서 즐겁게 쓸만큼 나를 좋아해줬다.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나는 그 해에 온 힘과 마음을 쏟았다. 1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나의 교직생활을 통째로 흔들어 놓는 영향력있는 시간이었다. 흔치않은 학부모의 문자로부터, 나는 오늘도 위안을 받고 나를 되돌아본다. 오늘 다그치지 말걸, 한 번 더 참을걸, 숙제 그까짓 거 안하면 어때서, 수업 시간에 수업 하나도 안들으면 어때서. 친구 좀 괴롭히면 어때서(?절대 안된다.). 나는 나를 아주 잘 알고 있다. 내일도 나는 아이들의 미성숙한 부분을 조금이라도 다듬어주고 싶어서 안달일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더 표현하자. 누군가에게 보고싶은 사람이고, 좋아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도록. 비록 그렇기는 어려워도, 상처주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마음이 맨질거리는 느낌이라, 자꾸만 문자를 들여다 본다. 누군가가 내가 아이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생님이 되길 바라주고 기도해 주는 것. 그 마음이 글자로 나에게로 온 것. 그야말로 과분한 일이, 오늘 나에게로 왔다.
*아이의 개인정보는 소중하니, 오늘의 학생 이름은 코코아다. 왜냐면 오늘부터 우유 급식이 시작되어서 아가들이 제티를 잔뜩 가져왔기 때문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