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르치는 아이들 말고, 과거의 아이들을 떠올리며 나는 나의 오 년을 반성키로 혹은 찬란한 아이들을 기억하기로 다짐하며 선생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당장 기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이 또한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과거의 아이를 가만히 기억하기란 <오늘 내 눈 앞의 아이> 앞에서는 참으로 힘든 일이다.
이 주 동안의 상담주간을 끝내며, 조금은 여유로운(그러나 엉망진창인 교실 청소가 남아있는) 상태로 나는 마지막 아이의 짐을 챙겨주며 고요해지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드디어 금요일이 아닌가! 그런데 다른 친구들 모두 할 일을 끝내고 가방을 싸고 책상 밑 까지 싹 비워 월요일을 준비하고 교실을 떠나는데 너는 아직 가방도 싸지 못했다. 그래, 천천히 하자. 오늘은 방과 후가 20분 뒤에 시작하니까. 하며 밀린 책도 챙겨 반납시키고, 자리도 몰래 조금 치워준다. 돌아온 네가 휴대폰을 붙들고 엄마와 통화하러 복도에 나간다.
"엄마 나야 제이."
"응 제이 어디야?"
"나 학교지. 나 학교인데 오늘 방과 후 하잖아, 방과 후 시간이 30분이어서 교실에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아직 문이 안 열렸거든. 시간이 되면 가려고."
어찌나 말도 잘하는지! 속으로는 얄미운 마음까지 든다. (문 안열 린지는 어떻게 아는 거니?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이놈 시키, 아무리 이게 뭐야 저게 뭘까 물어도 엉뚱하게 귀신 얘기만 하더니만 또박또박 제법 시간을 잊은 엄마를 깨우쳐주기까지 한다. 스피커 폰으로 통화를 하느라 활짝 열린 문을 지나 목소리가 내 귀에도 다 들리는데, 혹시나 무안할까 모른 척했더니만 계속해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제이야 그럼 끝나면 알려줘~~"
"엄마!!!"
사랑이 듬뿍 담긴 엄마의 목소리에 씩씩하게 얘기하던 제이가 끊으려는 엄마를 부른다. 마치 아주 중요한 것을 잊은 것처럼, 혹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힘 있는 목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집중했는데, 그다음 말이 아주 내 뒤통수를 세게 때려치웠다.
"엄마 사랑해!"
내가 울컥했으니 제이 엄마는 더 울컥하지 않았을까. 너무나도 당연하고 익숙한 듯한 아이의 목소리에 엄마도 사랑스럽게 대답해준다. 나도 우리 제이 사랑해! 하고. 아, 얼마나 확실한 사랑이던가. 나도 나의 둥이에게 저렇게 확실하고 당연한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있을까? 우리 엄마 아빠도 어린 나에게 저렇게 이야기해 주었을까? 우리 반 모든 어린이들이, 엄마 아빠의 저토록 확실한 사랑의 대상인 걸까? 제이는 질 수 없다는 듯이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어 엄마 진짜 사랑해!라고. 이 와중에 발표를 저렇게 한 번도 한 적 없는 저눔이 아주 약간 괘씸했다. 한편으로는 저런 모습을 학교에서 이끌어 낼 수 없는 것이 나 때문은 아닐까, 선생의 탓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제이야 끝나면 엄마한테 전화할 거지?"
"당연하지"
"아무 차나 따라가면 안 돼~"
"엄마, 당연하지!"
귀여운 제이야, 너는 이미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온 마음과 머릿속을 휘젓고는 그것도 모자라 내 일 년을 통째로 가져갈 것이 분명한 장난꾸러기, 울보, 부진, 집중 부족의 어린이가 확실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것은 너의 순수함 때문이기도 하고 미워할 수 없는 발랄함과 웃음 때문이기도 하고, 아직은 친구들보다 너무 작아 안쓰럽기 때문이기도 할 거야. 나는 너를 이미 사랑하고 있다고 확신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편협한 사고로 너를 보고 있지는 않았나 반성해본다. 네가 언제 어디서든 당연하게 사랑해요 엄마,라고 말할 수 있는 위대한 남자 어린이인데. 맨박스에 갇힌 어린 꼬마들이 으레 그렇듯 쑥스러워하지 않은 네가 얼마나 용감한지 알게 되는 이 순간 나는 참으로 부끄러워졌다. 너를 편협하게 바라보는 나에게, 반성하라고 반성하라고 주말 내내 되뇌리라.
왠지 모르게 이것 참 Cheesy 한 글이 되어 버린 것 같은데, 누구나 제이를 보면 나의 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긴 건 귀여운 밤톨 같은 것이 툭하면 소리 지르며 울며 엎드리고, 옆 짝꿍 머리를 통통 치지를 않나 1분도 못 앉아있는 이 어린 악동이 얼마나 웃기고 재미있는지. 나의 사랑스러운 제이야, 일 년 동안 너를 더욱더 사랑하고 더욱더 이해하고 북돋아 줄 수 있기를, 너를 가르치기 전에 나 스스로 나를 가르쳐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