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발의 동그라미

양말, 맨발, 털 실내화 같은 것들

by 지은호

양말. 양말을 보면 떠오르는 것들 몇 있다. 짧은 바지에 샛노랑 머스타드 색 양말을 신는 패션피플 친구, 재미나게 읽은 <아무튼 양말>, 맨날 엄지 발가락 쪽에만 구멍나는 그의 양말 등등…. 하지만 단연코 강렬하게 기억나는 것은 동그라미의 맨발이었다. 한 여름에야 답답하다고 양말을 신지 않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지만, 겨울철 새하얗게 얼어붙은 실내화 속에 더 새하얗게 자리 잡은 그 맨발을 볼 때 덜컥 가슴이 주저앉는 듯 했다. 동그라미야, 왜 양말 안신고 왔어? 발 안시려워? 묻자 예, 뭐…. 하고는 옆머리를 긁적였다. 무안할까 싶어 발시렵겠다 내일은 꼭 신고오자. 하고는 넘어갔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맨발로 온 아이에게 다시 물어야만 했다. 동그라미야, 왜 양말 안 신고 왔을까? 까먹었어요, 답답해서요, 그냥요 등등 으레 아이들에게 나올 법한 대답을 생각하며 물었는데 아이가 의외의 대답을 했다. 양말을 빨아야 하는데 깜빡했어요. 그렇다. 아이는 양말을 직접 빨아야했던 것이다. 동그라미에게는 돌봐야 하는 누나가 있었고, 바쁜 아빠가 있었다. 착하고 야무지지만 아직은 어린 아이에게 양말을 빨 정신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밥을 먹고,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 학교를 가야하고, 학교 가기 전 틀어져있는 텔레비전에 정신을 팔리지 않아야하는 동그라미.


동그라미는 월화수목금 매일 방과후를 했다. 사실 그건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동그라미는 방과후를 여러개 하는구나, 하니 집에 가면 혼자여서요 했다. 보호자가 아이가 학교가 끝나면 시간이 너무 많으니 요일에 맞춰 모든 방과후를 다 넣은 것이었다. 아이는 흥미에 맞지 않는 방과후를 하기 위해 어느날은 30분, 1시간을 기다리고 어느날은 아주 느즈막히 집에 갔다. 어느 날 시간이 애매한지 혼자 남은 아이에게 수업 시간에 어려운 것 없었니, 묻자 수학책을 들고 왔다. 전 학년에서는 수학이 쉬웠다고 했다. 그래? 그럼 한 번 같이 해 보자, 한 것이 시작이었다. 조금만 더 가르쳐줘도 금방 깨닫는 아이를 붙잡고 나는 오후에 시간이 날 때마다 매달렸다. 이것만 해 보자, 요기까지만 해 보자. 가르쳐 주는 대로 곰방곰방 이해하고 따라오는 아이를 보며 나는 절망했다. 아이는 분명하게 머리가 좋은 편이었고 수업이 어려운 것은 단지 복습을 시켜줄 사람이 없는 것 뿐이었다. 3학년이 끝나고 방학동안 혼자서 펴 볼리 없는 책을 두고 텔레비전만 보았기에 기억이 나지 않는 것 뿐이었다. 아이에게는 월-금의 방과후가 필요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매일 시간이 나는 것이 아닌 내가 선생님이 필요한 것을 가르쳐줄게 그만둬, 할 수 없었다. 내가 어디까지 아이를 책임질 수 있을까, 또 다시 방학이 오면 아이가 혼자 해 낼 수 있을까, 내년에는? 그 후에는? 확실한 가능성이 있는 아이에게 무기력이 쌓여가는 것을 생각하면 괴로웠다. 교사의 선이 어디까지인가를 고민했다. 아이의 보호자는 그 나름의 최선을 다 하고 있을 것이었다. 내가 과연 부족하다고 판단할 주제가 되는 것일까? 한 달에 한 번은 떡볶이를 사 주며 동그라미와 몇몇 아이들을 두고 나는 1학기 내내 방과후 시간을 아이들과 수학이나 받아쓰기 같은 것들을 하며 보냈다. 그러던 중 아이의 성적이 제법 오르자 아이의 보호자는 아이를 공부방에 보내기로 했다고 했다. 나는 물론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동그라미는 좋다고 했다. 학원에 가면 친구들이 있고, 스스로 공부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동그라미는 선했고, 자존심이 강했으며, 마음이 여렸고, 강단이 있었다. 방과후에 학교에 남는 아이들 중 많은 아이들이 학원에 갈 여유가 없거나, 부모로부터의 관심이 적거나 (또는 바쁘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자유로운 아이들이었다. 물론 부모의 교육관에 따라 방과후를 자유롭게 보내는 아이들도 있었으나 이런 아이들의 경우 자신의 위치 및 집에 갈 시간이 확실하게 집에 전달되어 있었다. 개중에는 도서관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사람이 없는 구석구석을 살피며 작은 장난거리를 일으키는 아이들도 있었다. 동그라미의 경우는 ‘집에 연락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장난은 싫어하는’아이었다. 동그라미는 자신이 생각할 때 ‘착하지 않은’ 아이들과 가까이 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다보니 학원을 다니기 전에는 학교가 끝나고 같이 시간을 보낼 친구의 폭이 아주 좁았다. 학원을 다니는 것이 아이는 더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는 방과후에 아이를 가르치는 것을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일임에도 어떤 죄책감 같은 것에 시달렸다.


그래서일까, 겨울이 오는 2학기 끝자락 쯤 나는 아이에게 안에 털이 달려 양말이 없어도 따뜻한 실내화 한 켤레를 사 주었다. 하지만 동그라미는 자존심이 아주 셌다. 내가 그냥 사줬다고 하면 절대 받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몇몇 아이들에게 평소에는 주지도 않는 보상 같은 것을 나눠 주고는 동그라미에게는 네가 깜빡 하는 것 같고 선생님으로서는 맨발이 걱정되니까 너에게는 실내화를 주겠다. 하고는 실내화를 주었다. 그런데 동그라미의 표정이 이상했다. 나는 들켜버린 것이었다. 아이에게 느낀 작은 연민 같은 것을, 동그라미는 눈치챘다. 다른 아이들이 왜 동그라미만 좋은 거 줘요 하고 물을까 나름 명분을 붙였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아이들에게는 통했지만 동그라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아이의 표정. 동정같은 것을 받았어 하는 그 표정. 차라리 몰래 줄걸. 아니면 이거 선생님 하나 남았는데 가질래? 하고 슬그머니 물어볼 걸, 그럴걸…. 맨발을 보면, 양말을 보면, 털 실내화를 보면 나는 매번 동그라미의 그 얼굴이 떠올라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지 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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