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에게는 여러명 중 한 명이겠지만,

아이에게는 단 한명의 선생님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by 지은호

2학기에 적응해 갈 쯤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것이 있다. 바로 교원능력개발평가다. 평가는 동료교사, 학부모, 학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평가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동료교사 평가는 대부분 만점 5점을 주는데, (물론 강요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점수를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보니 점수가 낮아지면 서로를 의심스레(?)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로 사이가 틀어지기도 부지기수이지만 5점 만점으로 들어온 점수를 보면 음, 우리 학년 사이 좋군 하게 되는 장점도 있다. 학생들은 선생님에 대해 문장으로 서술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저학년이다 보니 학생평가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학부모평가. 내가 가장 영향을 받는 것은 이 학부모 평가인데 익명성을 보장받다 보니 사실상 학부모가 교사에게 가장 솔직해 질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싶다. 매년 내 심장을 후벼파는 문장이 하나쯤은 있었는데 평생을 잊을 수 없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선생님에게는 여러명 중 한 명의 학생이겠지만 아이에게는 단 한명의 선생님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


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모두에게 시간과 관심을 주려면 서로가 도와야 한다를 자주 입에 올렸다. 수업시간은 40분이고, 아이들은 서른명에 가깝고, 한 사람당 1분씩 주기에도 빠듯했다. 모든 아이들에게 발표의 기회와 질문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장난치고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아이들에게 가끔 냉정하게 내 의견을 피력했다. 모두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선생님이 너 한명만 신경써 줄 수 없다고. 네가 장난치는 동안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을 불러줄 시간이 지나가 버린다고. 나는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했다. 물론 모두에게 균등하게 시간과 기회를 나누어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발표가 절실하게 하고 싶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발표하는 것이 숨막히게 떨리는 아이들에게는 억지로 시키는 것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든 아이에게 이름 한 번 불러주고, 말 한 번 더 거는 것이 최선을 다해 공정하게 나누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학부모의 문장이 나를 세게 때리고 지나간 것은 내가 틀렸기 때문이 아닐까. '명심'하라는 학부모의 말에 뼈가 있는 것 같았다. 아이가 내 말을 전달한 말을 듣고 속상한 마음이 들었을까? 아니면 정말 있는 그대로의 마음일까? 나에게 여러명의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 팩트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단 한 명의 담임선생님인데, 내가 아이들에게 한 말이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까. 결국 한 명 한 명 모두를 챙기고 싶다는 마음이 하나하나의 마음을 모른 체 한 것은 아닐까. 학교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선생님 선생님, 하고 부르는 아이들말고 가만히 있는 아이의 이름 한 번 부르지 못할 수도 있다. 하루가 끝나고 오늘 아이와 무엇을 이야기 했는지 하나하나 적다보면 어떤 아이와는 말 한 번 제대로 안 한 날도 있다. 번호 적힌 나무 스틱을 이용해 모든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시키지 않으면, 저요! 저요! 바들바들 손 들고 있는 아이를 시킬 수 밖에 없다. ( 그 절실한 눈망울을 보면 안 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으리라. ) 장난치며 온갖 시선을 가져가는 아이에게는 그 만큼의 관심이 필요한 것일텐데 내가 그 아이를 괴롭힌 것은 아닐까. 해 마다 이 즈음이 되면, 나는 이 문장을 되새기며 다시 한 번 고민하고 명심한다. 단 한 명의 선생님으로서, 아이의 온 마음을 알아주자고.


아, 올해는 심장을 후두려 패는 문장은 없었다. 매 해 나의 마음을 찰떡같이 알아주는 고마운 응원의 문장이 있었다. 문장이 모여 나를 반성하게 하고 마음놓게 하고 또 다시 가르치게 하는 힘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수와 줄세우기를 하는 점수평가에는 개인적으로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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