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배우 짐 캐리를 스타로 만든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영화 '마스크'(1994)였다. '마스크'는 소심한 은행원 스탠리 입키스(짐 캐리)가 우연히 얻은 마스크를 통해 180도 달라진 성격과 함께 초인적인 힘을 얻게 된다는 판타지적 설정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악당도 물리치고, 몰래 짝사랑하던 티나(카메론 디아즈)의 마음까지 얻게 되는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스토리다.
지난 18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에도 마스크가 등장한다. 물론 짐 캐리의 '마스크'와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고, 가공할 능력을 부여받는 형태의 판타지 장르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유사점이 있다면 '마스크걸' 주인공 역시 마스크를 쓰면 평소 성격과 180도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극심한 외모콤플렉스가 있는 김모미(이한별)가 마스크를 쓰는 것은 인터넷 방송 BJ로서 카메라 앞에 설 때뿐이다. 평소와 달리 자신감이 넘치고, 리듬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떠서 쉼 없이 들려줄 수 있는 순간도 오직 이때뿐이다.
에너지 가득하고 쾌활했던 김모미를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눅 들게 만든 것은, 그다지 특출 나지 않은 '외모'였다. 아니, 일단 작품 속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게끔 그려진다. 김모미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가 자신의 못 생긴 외모 탓이라고 되뇌면서 자학한다. 어른이 되고 회사원이 된 김모미는 직장에서도 별다른 존재감 없이 지냈지만, 퇴근 후 BJ '마스크걸'이 되면 완전히 돌변했다.
또 다른 인물 주오남(안재홍)도 김모미와 마찬가지로 외모 때문에 성장 과정에서 무언가 단단히 뒤틀렸고, 소심한 모습으로 삶을 일관했다. 주오남의 '마스크'는 가상의 인터넷 공간이었고, ID로 얼굴이 가려진 그곳에서 자신의 날것의 감정을 마음껏 분출하며 행복해했다.
비슷한 성장기를 거친 김모미와 주오남을 통해, 현대 사회의 '외모 지상주의'에 일침 할 것 같던 교훈적인 이야기는 어느 순간 예상 궤도를 완전히 벗어나 갑작스럽게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피가 흥건하게 화면을 가득 적시고, 서로 죽고 죽이는 잔혹한 장르로 숨 가쁘게 나아가게 된 것.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마스크걸'은 굉장히 파격적인 스토리와 고어하고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수시로 맞물리며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과 몰입을 한껏 안겨준다.
단순히 스토리와 화면뿐만이 아니다. '마스크걸'은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일단 주인공 '김모미' 캐릭터를 3인 1역으로 소화했다는 사실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성형 전 김모미를 소화한 이가 아직 대중에게 생소한 신인 배우인 이한별, 성형 후 달라진 외모를 갖게 된 김모미 역은 나나, 이후 시간이 흐른 뒤 교도소 안의 김모미를 연기하는 이가 고현정 배우다. 원작의 각색과 연출을 맡은 이는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김용훈 감독이다. 김 감독은 이러한 3인 1역 캐스팅에 대해 "작품을 하면서 내린 결정 중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7부작으로 구성된 '마스크걸'은 각 에피소드 타이틀을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구성했으며, 각자가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화 '아가씨', '암살', '박쥐' 류성희 미술감독은 인물의 성격과 상황에 맞는 공간을 디자인하고, '보건교사 안은영', '유령', '범죄도시' 주성림 촬영감독은 색, 조명, 카메라의 움직임, 렌즈, 화면의 질감 등을 통해 에피소드별로 다른 느낌을 완성했다. 화면이 흑백으로 전환되거나, 파격적인 스릴러에서 갑작스럽게 10대 성장물로 변모하는 모든 과정이 여기에 포함된다.
마무리는 2색(色)의 모성애다. 아들 주오남을 향한 어긋난 집착에서 비롯된 광기 어린 복수심은 김경자(염혜란)로, 얼굴도 모르는 딸 김미모(신예서)를 향한 격렬하고 저돌적인 모성애는 중년의 김모미(고현정)로 발현된다.
기구한 한 여성의 일생을 섬세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일본의 작품인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요즘의 시대상을 곳곳에 반영함은 물론 '외모'와 '모성애'라는 요소 등을 통해 분명한 차별점을 생성한다. 특히 김용훈 감독 특유의 멀티 플롯을 통해 여러 인물이 동시다발적 주인공으로 각개 활약하는 전개는 '마스크걸'의 뚜렷한 강점이 분명하다. 고어물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면, 7부작 410분이라는 다소 긴 러닝타임이 '순삭' 가능하다.
2023년 8월 30일자 국방일보 21면에 게재된 69번째 [박현민의 연구소] 연재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