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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민 Mar 08. 2021

평가도 마비시킨 김순옥표 파격

초강력 마라맛 '펜트하우스'

사진제공=SBS

"앞으로 웬만한 자극엔 감흥도 없을 것 같다."


김순옥 작가가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로 시청자 입맛을 송두리째 바꾸어놨다. 차용한 소재, 극 전개 방식,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까지 한데 버무려 끝도 없는 자극의 연속으로 점철시킨 문제작(?) '펜트하우스' 덕분이다. 무려 3개의 시즌으로 기획된 해당 작품은 이제 막 시즌1의 막을 내렸을 뿐이지만, 시청자의 감각 기관을 '얼얼하게' 마비시키기엔 그것으로 충분했다.


대한민국 상위 1%만 입주 가능한 헤라팰리스, 명문 예술고등학교 청아예고를 주된 배경으로 한 상류층의 추악한 민낯과 불륜, 그리고 민설아(조수민)의 죽음을 이끈 살인이라는 파격 전개로 시작된 '펜트하우스'는 방송 초반 JTBC 'SKY 캐슬'과 '부부의 세계' 등과 비교되기도 했다. 이는 초호화 상류층, 입시비리, 불륜, 살인 등의 소재와 1~2회부터 곧장 파격적으로 막을 연 구조적 유사성 탓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청자가 이를 엄청난 오판이라고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민설아의 죽음은 '펜트하우스'가 준비한 역대급 자극 파티에 비하면 그저 아주 미미한 애피타이저에 불과했다.


이 드라마는 확실히 미쳤다. '미쳤다'라는 표현 외에는 마땅한 평가나 설명은 애초에 무색할 정도다. 소재에 대한 비판, 작위적인 상황이나 캐릭터, 극의 만듦새에 대한 분석이나 토론은 어차피 무의미하다. 일반적 잣대에 기댄 여느 평범한 평가 따위는, 드라마 속 인물들이 종종 눈에 보이는 사물에 했던 것처럼, 모두 깡그리 바닥으로 밀어서 치워버리면 되는 분위기다. 김순옥 작가가 만들어 낸 이 '펜트하우스'의 월드에서는 그러한 상식적 판단은 애당초 초월해버렸기 때문이다.

사진제공=SBS


마라맛을 보면 혀가 얼얼하게 마비돼 이후 섭취하는 요리들에는 그 어떤 맛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곤 한다. '펜트하우스'가 딱 그러했다. '펜트하우스'를 한차례 경험하고 나면 과거 '막장'이라고 평가했던 웬만한 작품을 봐도 그저 밍밍할 지경이었다. 그런 점에서 '펜트하우스'를 평가하며 종종 '마라맛'이라는 표현을 많은 이들이 사용한 것은 몹시 탁월했다.


흔히 드라마 흥행의 잣대로 사용되는 시청률은 매회 고공행진이었다. 1회 9.2%(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시작된 '펜트하우스'는 2회에서 곧바로 10%를 넘더니 13회에서 20%를 가뿐하게 돌파했다. 오르고 오르고 또 올라 마치 헤라팰리스처럼 솟구친 시청률은 최종회인 21회에서 28.8%라는 기록적인 스코어로 마무리했다. 종편과 케이블, OTT까지 가세한 요즘 같은 세상에 지상파가 감히 받아들기 힘든 성적표였다. 이는 경쟁작 관계자들의 볼멘소리를 한낱 질투나 시샘으로 둔갑시킬 수 있는 수치였다.


'펜트하우스'는 그 기준점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서 명작도 망작도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준이 시청자의 관심과 기대라고 했을 때, '펜트하우스'는 확실히 성공작이다. "'펜트하우스'를 기다리느라 월요병이 깨끗하게 사라졌다"라는 반응이 잇따랐다. 자칫 과장된 연기로 보이기도 했던 출연 배우들을 겨눈 초반 반응도 회를 거듭할수록 '소름 돋는 연기'로 탈바꿈했다. 일부 배우들은 '펜트하우스'를 통해 그간의 연기력을 재평가받는 기회를 잡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의 상당한 지분이 김순옥 작가에게 있음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SBS '아내의 유혹'(2008), MBC '왔다! 장보리'(2014), SBS '황후의 품격'(2018)으로 줄줄이 이어진 김순옥 작가의 필모는 '펜트하우스'를 통해 공고해졌다. 비판도 비난도 모두 초월한 '김순옥 유니버스'의 구축이다. 오랜 시간 작품을 만들어오며 흥행한 전작을 지울 만큼 강한 차기작을 내놓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시즌제라는 새로운 시도의 첫 발을 이토록 성공적으로 내딛기는 더더욱 어렵다. SBS도, 김순옥 작가도, 출연 배우들도 모두 '펜트하우스' 시즌1의 성공에 적잖은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아주 기분 좋은 부담이지만.


김순옥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재평가됐다. 단순히 '막장 작가'로 폄하하는 일부의 날 선 평가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고, (아쉽거나 허술한 구석이 없지 않지만) K-드라마의 소재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한 트렌디한 작가로 분석되기도 했다. 이보다 중요한 것도 있다. '흥행작을 썼던 작가'가 아닌, '흥행작을 쓰고 있는 작가'로,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평가받게 된 점이다. 이는 여느 스타작가들이 결과적으로 과거 자신이 만든 벽을 넘지 못하는 모습과 사뭇 대조적이다. 그리고 하나 더. 아직도 얼얼함이 채 가시지 않은 이 '펜트하우스'가 무려 2개의 시즌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 이것이야말로 향후 김순옥 작가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든 요소로 꿈틀대고 있다.



* 이 글은 2021년 1월 7일 웹매거진 IZE에 실은 글입니다.

펜트하우스ㅣ비평이 무의미한 퀸 김순옥의 마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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