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받고자 하는 마음을 비웁니다.
비우고 내려놓기
이제 결혼 9년 차. 결혼 생활 동안 나는 망망대해에서 돛단배에 아이를 태우고 혼자 노를 저으며 가는 느낌이었다. 남편은 다정 다감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친정 아빠 같은 사람은 절대 안 만날 거라고 다짐했는 데 비슷한 사람과 결혼을 하였다. 더 황당한 것은 남편의 이런 성격을 최근에야 자각했다는 사실이다. 말이나 마음으로 남편에게 위로받거나 힘을 얻지 못한다고 심정적으로는 느껴왔지만 이성적으로 파악한 것은 최근이다. 둔해도 둔해도 이런 곰탱이가 따로 없다.
아이가 아파서 유치원도 못 보낸 유독 힘든 날이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땀을 뻘뻘 흘리며 청소기까지 돌렸더니 정신이 혼미하였다. 힘든 몸을 소파에 앉혀서 좀 쉬려고 하는데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왔다. 평소에도 퇴근맞이 인사를 잘하지 않았지만 이 날은 특히 인사할 기력이 없었다. 인사대신 이것저것 부탁을 하고 물어보는 질문에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였다. 힘들어 보이는 사람에게 "힘들어?"라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싫어진다. 딱 보면 힘든 게 보이지 않나? 남편은 나의 이런 반응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나 보다. 평소에도 가끔 퇴근맞이 인사를 빼먹고 축 늘어져서 대답도 안 할 때도 많지만 이 날따라 짜증 나게 반응을 하였다. 남편은 목소리가 크다. 크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모나게 이야기를 하면 말로 두들겨 맞는 느낌이다. 신혼 때 당부했던 게 큰 소리 내지 않기였다. 이런 남편과 결혼한 내가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그날, 그 뒤로도 몇 차례 짜증이 섞인 말다툼을 하였다. 남편이랑은 말이 정말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슬프지만 남편으로부터 공감받고 이해받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지적하고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 저렇게 해주면 좋겠다 이야기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이야기했는데도 바뀌는 게 없으면 포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그렇게 생각하나 보다.. 하고 서운하고 속상한 내 마음을 강물에 쓰레기봉투 속에 흘려보내야겠다. 화내는 것보다 이 방법이 더 현명한 것 같다. 오늘 폭발하지 않고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을 눈물로 흘려보낸 나 칭찬한다. 모든 것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으니까.. 이 사람에게도 장점이 있으니까.. 너무 속상한 마음에 빠져있지 않으려고 한다. 이만하면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덕분에 살까 말까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이케아 용품을 결재해 버렸다. 스트레스가 조금 해소되는 느낌이다.
나는 '오늘 고생했겠다. 많이 힘들지' 하는 진심의 마음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대충 건성이 아니라 마음이 꾹꾹 눌러 담긴 안부의 대화말이다. 부모님이라면 읽어주셨고 이해해 주셨을 걸 내 남편은 안되나 보다. 한숨 돌리고 남편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집에 오니 쳐다보지 않고 인사도 안 하고 티비 보는 나를 보니 짜증이 났을 것이다. 이전처럼 많은 고성으로 싸우지 않고 몇 차례 짜증과 화로 마무리되어 다행이다. 비록 나의 기분이 좋지 않아 아이와 같이 자지는 못하였지만 아이가 코피 났을 때 물 한잔 갖다주고 아이의 손하트를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아이의 손하트는 같이 자고 싶다는 의미인 것 같았지만 오늘은 아이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데로 놀고 싶었나 보다.